감정언어
아버지는 보리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시선의 끝에는 보리밥집이 있었다. “내가 돈 낼테니 보리밥 먹으러 가자. 저기 보리밥집 가자” 하던 아버지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날따라 피곤하여 어디로 가는 것도 귀찮았다. 아버지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좀더 고집을 부렸으면 갔을까? 모르겠다.
그날따라 보리밥을 먹자고 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그리고 함께 밥먹으러 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그깟 밥 한 끼 같이 못먹어주다니. 아버지가 밥을 사도록 기회를 드리지 않았던 것이 늘 후회가 된다.
보리밥 먹으러 가자는 말을 따라
같이 밥 먹으러 가고 싶은데
같이 먹자던 아버지가 안 계시네
"아버지"라는 글을 쓰고 폴더에 담긴 채 시간이 흘렀다. 다른 문서를 찾다가 몇 개의 글을 발견했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 적어두었던 글들이다. 잊었던 "아버지"라는 단어와 함께 찾아오는 감정들.
"후회" "먹먹함" "그리움"
이 감정들은 형제처럼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감정 언어들이다.
후회 - 지나간 일의 잘못을 깨우치고 두고두고 뉘우치는 행위.
먹먹함 - 체한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함
그리움 -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는 나는 후회의 감정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지만 글을 읽는 사람들은 먹먹함을 먼저 느낄 것이다. 글을 읽은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비슷한 사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자신의 가족일 수도 있고 가족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누군가를 떠올리며 후회하는 감정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세 감정, 후회, 먹먹함, 그리움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수도 없이 겪게 되는 감정들이다.
이 셋은 거의 동시에 오는 경우이거나 잠시 시차를 두고 오기도 한다. 그중에 부정적인 의미를 조금 더 내포하고 있는 감정이 후회다. 뭘 잘못했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을 때, 또는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했 을 때 가지게 되는 감정이다.
후회의 감정은 많이 만날수록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고, 후회를 만나 전보다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으니 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후회라는 감정을 좋은 감정으로 남길 수도 있고, 안 좋은 감정으로 남길 수도 있다. 오늘도 후회하고 있다. 내일을 기다린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