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 의료, 삶의 의미 찾기
죽음이 의미 있어지는 건 삶이 의미 있을 때다.
고등학교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학교에서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에 기대어 소리 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았고 죽으면 다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10여 년 전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이제 어머니는 약간의 치매 증세를 보이고 외출도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까운 사람들이 죽음의 길로 가면서 점점 내 곁으로도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럴 때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죽음이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어떤 삶을 살았든 반드시 죽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하는 착각 중에 가장 큰 착각이 아닐까. 착각에서 벗어나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 죽음이 물었다에서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돌보는 완화의료 의사가 수많은 체험을 통해 터득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걸 말해주고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 인생의 마지막 길목에 서있는 사람들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점검하면서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자신의 삶이 좋게 느낄 때 대채로 죽음도 수용하게 되고 기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도 모든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병을 치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도 환자를 돌보는 것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을 갖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죽음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 달라진다. 내 삶을 존중하고 가치 있게 의미 있게 살았다면 내 죽음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의미 있어지는 건 삶이 의미 있을 때다. 죽음이 허무와 고통과 끝이 아니게 되는 건 삶이 의미 있고 소중했기 때문이다. 살아온 대로 죽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우울과 공허로 정신적으로 쳐지고 허무와 함께 무기력해지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고 여기며 왜 살아야 하는지 묻지만 그것은 그러한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살아야 할 이유를 못 찾는 것에 대한 외침이다. 죽음울 생각하는 시간에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애쓰는 게 도움이 된다. 우리는 삶의 중심에 있고 삶에는 죽음도 따라다닌다. 나의 의지와 상관 앖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삶이 주는 기회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확실히 보장돼 있다.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만큼의 시간이 이미 사라져 버린다. 점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삶에서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내는 순간들이 무의미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을 생각하며 괴로운 사간 속에 있으려 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죽이는 것이다.
완전한 행복이란 있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그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다만 완전한 행복이라는 것이 고통과 어려움을 겪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고 난 후 얻어지는 것이 더 많다고 말한다.
죽으면 우리는 이별을 하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슬프고 마음 아프다. 그랴도 우리의 육체는 볼 수 없지만 우리의 사랑은 남는다. 어디서 건 함께 했던 추억과 사랑은 기억할 수 있다. 시한부 인생처럼 살라는 말이 떠올랐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삶이 의미를 찾게 되고 행복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을 미워하면서 살거나, 싸우며 사는 것은 영원히 살 줄 알기 때문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좋은 삶이 좋은 죽음을 가져다준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마다 죽음이 던지는 질문에 답해볼 수 았는 여유를 지닌다면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을 것 같다.
모든 면에서 존엄과 의미와 가치를 지닌 삶을 살아왔다면 죽음을 생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죽음이 적당한 때에 찾아올 수 있다고 믿으며, 그것이 바로 자연스러운 죽음이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큰 야심을 갖고 완화의료를 수행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넘어 아름다운 죽음을 유도하고 보조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p77
사람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죽는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가망도 없다. p78
죽음보다 삶을 더 생각하고 의미있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다 책임감 있게 죽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죽음을 존중해야 한다. 두려움이나 용감함이 인간을 죽음에서 구해주지는 못하지만, 죽음에 대한 존중은 우리의 선택에 균형과 조화를 가져다준다. 죽음에 대한 존중은 신체적 불명성을 가져다주지는 못하지만 가치 있는 삶의 의식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 준다. p91
책임감 있게 죽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죽음을 존중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살아가는 모든 날들에 죽는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결여된 모든 날들에 더 빨리 죽는다. 우리는 죽음의 날에 앞서 버림받았을 때 죽는다. 죽음 후 잊혔을 때 죽는다. p92
죽음 후 잊혀을 때 죽는다.
“이 세상에서 당신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아껴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리석은 일에, 불필요한 고통에 시간을 써버린다. 대부분이 삶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다. ”P99
"많은 사람은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자신이 삶이라는 열차에서 내려야 할 차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즉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앞으로 몇 정거장을 더 가면 내가 내릴 정거장에 도착하게 될까? “ P106
“사랑을 원 없이 체험하고, 자신의 본질을 표현하고, 자신이 이 세상에 왜 왔는지를 보여주고 증명하는 복잡한 시기는 본격적인 죽음의 과정에서 가장 의식적인 시간이다. (중략) 자신의 본질과 진정으로 만나게 되는 과정이 마무리되면 마음 깊은 곳에 어떤 신성한 것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가장 깊고 가장 신성한 것 안에 숨이 있다. p132
"평생 당신의 선택이 고통이었다면 죽음과 만나는 순간에도 평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P146
평생 내 선택이 감사와 사랑이라면 죽음과 만나는 순간에도 평안과 기쁨과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