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스팀 게임으로 PC방 접수 완료. RN.
3월에 회사 동기들끼리 엠티를 갔을 때였다.
“우리끼리 회사 점심시간에 피시방 한 번 가면 재밌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처음엔 그냥 웃고 넘겼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거 진짜 재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기획을 시도를 시도해봤다.
사실 점심시간에 피시방 가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롤 같은 게임을 원래 하던 사람들이면
그냥 “롤 ㄱ?” 한 마디면 바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뭉친다.
근데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원래 게임을 잘 안 하는 동기들도 같이 껴서 할 수 있는 게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 같이 협력한다든가, 추억을 쌓는다든가, 그런 식의 ‘같이 논다’에 더 가까운 게임.
그리고 또 하나,
굳이 모두가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게임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임 한 판 하자고 스팀에 돈 쓰라고 하면 좀 그러니까....
마침 내가 스팀 게임을 이것저것 해본 편이라
머릿속에 후보 리스트도 좀 있었다.
피코파크, 폼멜 파티, Lovers in a Dangerous Spacetime, Overcooked, Unrailed ....
이런 협동 게임들 위주로 많이 찾아봤는데, 결론은 딱 하나였다.
8명까지 플레이 가능 + 게임패드 없이 가능 + 게임 카피 1개만 있어도 되는 건...
피코파크 뿐이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붙었다.
Steam Remote Play 라는 기능을 써야 했다.
(나도 이거 처음 써보는 기술이라 약간 긴장했음)
Steam Remote Play 기능은 간단히 말하면,
내 컴퓨터에서 실행 중인 게임을 다른 사람에게 스트리밍해주고,
그 사람들이 자기 키보드나 게임 패드로 조작하면
그 입력이 내 컴퓨터로 들어와서 같이 플레이할 수 있는 방식이다.
물론, 이 기능에도 단점은 있다.
이 시스템은 모든 입력을 '하나의 로컬 컴퓨터에서 동시에 조작하는 것처럼' 처리하기 때문에,
서로 같은 키(WASD 등)를 쓰면 입력이 충돌한다.
그래서 게임 내에서 각 플레이어마다 겹치지 않는 키를 할당해줘야 했다.
(예를 들어 1P는 QWER, 2P는 ASDF, 3P는 ZXCV 이런 식으로)
그리고 이게 나중에 혼돈의 키보드 셋팅 지옥으로 이어진다. (뒤에서 다시 얘기함)
어쨌든 말은 간단한데...
진짜 이게 되긴 되는건가? 싶어서
혼자 피시방에 가서 컴퓨터 두 대를 써서 테스트를 시도해봤다.
내 스팀 계정 1로 피코파크를 실행하고,
스팀 계정 2를 초대해서 접속한 다음
직접 키 입력도 해보고, 화면 반응도 체크하고,
혼자 피코파크 2인 협동 플레이를 실험해봤다.
(누가 보면 진짜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을 듯)
근데 진짜 생각보다 너무 잘 돼서 좀 놀랐다.
RN. Real Nice. :)
이제 남은 건 실전뿐이었다.
점심시간이 되고, 미리 짜둔 파티원 6명들과 함께
회사 근처에 답사까지 마친 피시방으로 향했다.
그저께 만든 디스코드 서버를 켜고,
내 스팀 계정에 전원 친구 추가 완료,
한 명씩 Remote Play 초대를 날렸다.
곧바로 혼돈의 키보드 셋팅 지옥이 시작됐다.
1P는 QWER, 2P는 ASDF, 3P는 ZXCV....
한 키보드로 7명을 커버해야 했기 때문에 진짜 키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사실 키보드 배치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전날 미리 다 시뮬레이션해뒀고,
겹치지 않는 키로 사람 수 딱 맞게 나눠놨다.
근데 문제는...
1P부터 7P까지 누가 어떤 플레이어가 될지를 정하지 않았다는 것.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어? 초록이는 누가 움직여?"
"이거 나 아님."
"이 퍼랭이는 누구지?"
"나도 아닌데ㅋㅋ"
다 같이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실시간 피코파크 실명제가 벌어졌다.
본 게임 들어가기 전에 5분은 추리게임부터 시작한 셈이다.
RB. Real Bad. :(
근데 막상 플레이에 들어가니까 진짜 재밌었다.
디스코드로 실시간으로 소리 지르면서
"야 거기 점프 타이밍 맞춰!!"
"아니 이 퍼랭이는 대체 누구야?"
“줄 잡아줘 ㅠㅠ 떨어진다!!”
이런 대사들이 쉴 새 없이 터졌다.
협동이 안 되면 전부 리셋,
한 명 삐끗하면 다 같이 낙사.
잘못 떨어져서 줄줄이 사망.
근데 그런 와중에도 다들 빵빵 터지면서 게임하고 있었다.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실수해도 비웃음 없이,
그냥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혼돈을 그대로 즐기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우리는 겨우 챕터 2쯤을 깼지만
서로의 표정엔 이상한 뿌듯함이 깔려있었다.
회사 일보다 더 힘든 협동 플레이를 해낸 사람들의 표정이랄까.
진짜 업무는 오후부터였지만,
진짜 팀워크는 점심에 생겼다.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 7명은 전부 다른 팀이다.
업무적으로는 엮일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날 입사한 동기들이다.
합숙 연수도 같이 했고,
그 짧고 강렬한 시간을 함께 버텨냈기에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점심시간마다 “ㄱ?” 한 마디면 바로 모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업무는 몰라도, 점프 타이밍은 맞출 수 있는 사이.
그게 지금 우리 점심시간의 분위기다.
꾸벅.
P.S. 글에 등장하는 '시도를 시도', '꾸벅' 같은 말투들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