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알파벳 발음 말투 - "ani igun meoji..."
#1편이 궁금하다면 -> #1. 꾸벅, 시도를 시도, 악질.... 글 보러 가기
회사에서 말을 할 땐, 가끔은 고민이 된다.
하고 싶은 말을 했는데 괜히 정색한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진지하지 않은 상황인데 내가 너무 진지해 보이진 않을까?
그래서 나는, 말에 장치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먼저 생긴 게, 내가 '알파벳 발음 말투'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아니 이건 진짜 말이 안 되고 어이가 없다"는 말을
"ani igun jinja mari andego auiga upda…"처럼 읽는 식이다.
혹은 간단하게 "일단은 네..."라는 말을
"ildan은 ne...." 와 같이 말하는 식이다.
형식은 이상한데, 내용은 그대로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웃게 된다.
그리고 그 웃음은 대화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정색이나 불만처럼 보일 수 있는 말도, 더 가볍게 들린다.
사실 이 방식에 도달하기까지, 나는 꽤 여러 시도를 했다.
말끝을 올려보기도 하고, 문장을 짧게 끊어보기도 했다.
한 번은 귀여운 말투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나한텐 어울리지 않았다.
무언가 억지로 꾸미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내가 찾고 있던 건,
말의 본심은 그대로 전달하면서도
형식만 가볍게 바꿔주는 방법이었다.
그걸 만족시킨 게 알파벳 발음 말투였다.
웃기려고 무리할 필요도 없고,
짜증 섞인 말도 둥글게 표현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이 말투는 팀 안에서 은근히 퍼졌다.
처음엔 후배가 내 말투를 듣고 물었다.
"선배 혹시 외국에서 오래 사셨어요?"
아뇨.... ㅋㅋㅋ
하지 말라고 했던 동기도 어느 순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꾸벅이 말투에 스며들었다"는 뜻의 "꾸며들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금은 동기들 입에서도 "ildan은 ne…" 같은 말이 툭 튀어나온다.
확산된 게 아니라... 스며들었다는 게 더 정확하다.
이 말투가 내게 도움이 되는 건 웃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이 느려진다.
말이 느려지니까, 다음 말이 뭐가 될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덕분에 불쑥 튀어나오는 말실수도 줄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습관처럼, 말의 뾰족함을 다듬을 때 이 말투를 쓴다.
말투는 기술이다.
감정을 가공하고, 분위기를 다듬고,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나는,
짜증나는 순간에도 웃긴 사람이 되고 싶다.
말 한마디가 부드러워지면,
사람 사이도 조금 더 부드러워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