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앞 국화꽃 한 송이

by Kkuek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서울의 외곽 작은 회사에 첫 출근을 했다. 통근버스도 없는 외진 공단지대. 새벽 6시에 일어나 전철 두 번을 갈아탔고, 오후 7시 퇴근길엔 어김없이 지하철에선 깜빡 졸기도 했다. 지친 몸을 겨우 일으켜 집 앞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사 먹는 게 하루의 마무리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사회 초년생의 일상은 그저 버티는 것의 연속이었다.


엑셀 파일 하나를 실수 없이 만드는 것, 상사의 말에 즉시 반응하는 것, 정시에 맞춰 보고서를 올리는 것. 그 모든 게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말수 적은 선배들의 무심한 시선,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회사 시스템, 그리고 ‘왜 이걸 하는지도 모르겠는’ 업무들. 회사는 마치 거대한 퍼즐판 같았고, 나는 늘 조각이 안 맞는 퍼즐 한 조각 같았다.


처음엔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내가 유별나고, 부족하고, 버티는 힘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매일 저녁, 노트북 화면 앞에서 자격증 공부를 하며 ‘탈출’을 꿈꿨다. 커피도, 옷도, 친구의 연락도 줄였다. 월급은 그대로였고, 마음은 점점 가난해졌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기대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이었다. 지친 얼굴로 마트 앞을 지나는데, 길가에 작은 국화꽃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모양인지, 포장도 없이 길바닥에 누워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 꽃을 주워 들었다. 아마도 처음이었다. 출근길이든 퇴근길이든, 나는 단 한 번도 길 위의 것들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국화꽃을 집으로 가져가서 유리컵에 꽂아두고 멍하니 바라보던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겪는 고됨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실수도 좌절도 없었겠지만 그만큼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마주한 실패와 고통은 곧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흔적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버티는 법이 아니라 ‘기록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매일 하루에 한 줄씩이라도 내 마음을 적었다. 감정도, 실수도, 배움도. 그러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걸 잘하고, 어떤 순간에 웃고, 어떤 일엔 슬퍼지는지를. 마치 국화꽃을 발견했던 것처럼, 내 안의 작은 가능성과 온기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지금도 매일이 쉽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젠 안다. 이 길이 헛되지 않다는 걸.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내 자신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순간들이 모여 나만의 이야기가 될 거라는 걸.


그러니까, 오늘도 살아간다. 지하철 속 고개 숙인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그들과 함께. 묵묵히, 그러나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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