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명언은 누구를 위한 좋은 글인가

연결되지 않을 권리

by alittlepicasso

오랜만에 공휴일이 겹쳐 모처럼만의 연휴로 신랑과 같이 보고 싶었던 밀린 영화를 늦게까지 보고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 6시가 되자 침대 옆 탁상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에 진동이 울려 눈을 떴다. 오늘도 여김 없이 카톡 아침편지가 온 것이다. 화면에 뜨는 카톡 미리 보기 창에는 [내 삶의 행복]으로 시작하는 좋은(?) 글귀였다. 신랑이 깰세라 급하게 핸드폰을 들고 거실로 나왔지만 신랑도 곧 따라 나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냐며 투덜거렸다. 몇 년 전 내가 몸이 안 좋아 몇 번 쓰러진 이후로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신랑도 나의 수면 문제에는 유독 예민하다. "사실은 당신 핸드폰 명언 카톡 때문에..."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평소에도 주말이고 새벽이고 밤이고 뭐고 없이 회사 단체방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카톡 메시지 때문에 머리는 늘 온전히 휴식하지 못하는 걸 안다. "당신 회사분들 도무지 왜 그러시는지 너무한다." 고 짜증을 부려봐야 본인은 얼마나 더 스트레스받을까 싶어 모르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확 차단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또 다른 분에게서는 새벽 5시 45분에 비슷한 명언 카톡이 와있었다. 지금은 같이 일하지 않은지 2년이 다 되었는데 여전히 매일 카톡 메시지가 왔던 것이다. 아무리 알람을 꺼도 읽지 않은 메시지로 빨갛게 뜨는 숫자 덕분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이건 정말이지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보낸 좋은 글귀라지만 새벽부터 떠지지도 않는 눈에 그게 보일 리 없고, 좋은 글도 나한테 좋아야 좋은 것인데 너무 발신자의 만족만 생각한 행동이 아닐까. 라이프스타일은 사람마다 다르고 어떤 사람은 꼭두새벽같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시 수신자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다른 개인의 상황이 있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이리도 수신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소통이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떤 사람은 회사 직무 특성상 관계자들이 많아져 카톡 친구만 천명에 육박한다. 근무연차가 늘어날수록 메신저 내 단체 채팅방도 많아지고 서른 개쯤 되는 카톡방에는 업무가 종료된 밤에도, 주말에도 수백 개의 카톡이 오간다. 아무리 일적인 문제라도 정말 급한 건이 아니라면 업무 시간 외에는 업무 연락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이다. 전 직장의 동료는 “정말 미치겠어요. 사이버 사무실에서 하루도 안 쉬고 일하고 있다니까요. 지금 처리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이건 그냥 자기들 주말에도 일한다고 티 내는 것 같아요. 그럼 혼자 조용히 하지...”라며 하소연을 했다. 윗사람이 큰 뜻 없이 보낸 카톡 메시지 하나에 후배들은 별의별 생각을 하고 쉬는 기분도 망치고 만다. 하지만 업무 관련 지시나 내용을 놓칠까 봐 알람을 끌 수도 없고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나의 사생활과 권리임에도 점점 반복되는 현상에 무덤덤해진다. 그렇게 또 당연한 일이 아닌 것이 당연하게 되고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있자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가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그때는 삶이 더 편리하진 않았어도 일과 개인생활의 경계는 분명했고 자유가 보장되었다. 비상연락망이 있었지만 정말 비상이 아닐 때는 연락하지 않았다.



아직도 회사일에 주말이 어디 있냐며 다 쉬면 일은 누가 하냐고 하는 상사들이 있는데 이건 정말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몇 년 전 프랑스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노동법에 추가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란 업무시간 외에 업무 관련 연락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사생활 보호와 자유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이 등장한 권리 개념으로 노동자들의 사생활과 여가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독일 또한 업무시간 외 연락을 하면 대기 업무로 간주해 일급의 25% 지급하도록 되어있다. 우리나라도 여러 번 언급되기는 했으나 개선되었다고 보기 힘든 실정이다. 오래도록 자리 잡은 조직문화와 사회분위기를 한 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겠지만 우리 스스로 계속 목소리를 높여야 가까운 미래에는 진정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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