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꾸물 Oct 29. 2019

포기와 끝말잇기하는 기대만 주는 사람

나한테는 이미 오목교랑 너랑 묶여서


오늘 종일 생각한 사람이 있다. 생각하며 연락을 기다렸고, 온갖 상상을 하며 그를 뜯어먹었다.

그렇다고 떠올리는 시간에 애절함이 묻은 건 아니었다.

그는 포기와 끝말잇기 하는 기대만 가지게 하는 사람,

익숙한 듯 하루 중 연락 올 만한 시간을, 반짝이며 떠오를 하나의 카톡이나 일정한 진동을 기다렸지만 그 신경은 나를 슬프게 하거나 못 견디게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게 디폴트가 되어 일상에 무의식적으로 전제되어 있었다.


평소 모르다가 흥미를 가지게 된 단어라든지 신경도 안 쓰다가 빠져버린 존재가 생기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것에 초점을 잡는다.

비슷한 음절을 끼워 넣어 기어코 특정 단어를 완성하고 그가 함께 가자고 했던 곳을 우연히 발견해 낸다.

이 흔한 경험을 오늘도 여러 번 했는데 개중 n 번째에서 못 버티고 메모장을 켠 것이다.


이른 아침에 깨서 남자의 sns를 확인하는 바람에 다시 잠들지 못했다.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 게 피곤하게 느껴져 편 책에서 오목교를 발견했다.

오목교. 내게 입력되지 않은 단어를 처음 들은 건 그에게서였다.


남자는 자주 오목교에 맛있는 스시집이 있다고 했다.

내가 사는 이십 수년 동안, 아니 적어도 서울에 있는 5년 동안 오목교는 계속 존재했을 텐데 참 이상하지. 왜 오목교는 전에 없다가 최근 생겨난 예쁜 이름처럼 걔 입 밖으로 나온 이제야 내 뇌리에 박혔을까?

아마 머릿속에 그에 관한 전구만 죄다 밝게 켜놔서 생각이 그쪽으로만 발달한 거겠지.


오늘 오전은 남자와 오목교의 스위치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하여튼 계속 나는 잊고 혼자 신나게 놀면 네가 가자던 오목교 스시집도 같이 보고 싶다 생각했던 영화도 다 혼자 해치워 버려야지.


좋아하는 마음에는 만약과 별 수 없는 기대와 심술의 인심이 후해 자주 양손과 머리가 무겁다.






매거진의 이전글 만남에는 능숙하고 연애에는 서툴러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