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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니왕 Sep 09. 2024

성스러운 사랑 16화

1-16화 무언의 사랑

 “누나 여기! 여기!”

 나는 멀리서 다가오는 혜영이 누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 많은 사람 속에서도 한눈에 알아본다.

 이쁘다.

 유난히 하얀 피부에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 이쁘다.

 “누나 우리 무슨 영화 볼까?”

 “미안해. 나 독서실 가서 공부해야 해! 영화는 다음에 보자.”

 “누나! 시험 끝났잖아?”

 누나는 갑자기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흔들며 택시를 탄다.

 나는 그 택시를 뒤따라 뛴다.

 뛰다가 정신을 차린다.

 ‘누나는 죽었는데 뭐지? 귀신인가?’ 나는 꿈속에서 꿈일 거라는 생각으로 애써 잠에서 깨어나려 한다.

 눈을 뜬다.

 목소리가 안 나온다.

 몸이 안 움직인다.

 나는 한참을 눈만 깜박인다.

 나도 모르게 무슨 이유인지 눈물이 나온다.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겨우 몸을 뒤척일 수가 있다.

 

 나는 그렇게 혜영이 누나와의 이별을 맞이하는 중이다.

 나는 어제도 그제도 매일 똑같은 꿈을 꾼다.

 잠드는 게 무서워서 안 자려고도 노력을 해보고 꿈에서라도 다시 혜영이 누나가 보고 싶고, 왜 그랬냐고 물어봐야겠다고 잠을 청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매번 똑같은 말과 똑같은 행동만 한다.

 나는 어디가 아픈지 모르지만 아픈 거 같다.

 엄마는 보약이라는 보약은 다 지어준다.

 나는 꿈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 못 한다.

 살이 10kg이 빠졌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겠다.

 씻다가 거울 보면 깜짝 놀란다.

 해골이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아 밥도 안 먹고, 물만 먹는다.

 엄마는 나를 억지로 끌고 병원을 데리고 간다.

 병원에서는 이상한 말만 하고 약을 지어준다.

 엄마는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나를 끌고 무섭게 생긴 장군을 모시는 분에게 데리고 간다.

 “귀신이 붙었네. 굿을 해야 해.”

 “그래예, 굿하면 괜찮아 질까예? 아이고 장군님 우리 아들 살려주이소.”

 나는 안 한다고 고집을 부려봤지만, 엄마가 매일 울면서 해보자고 하시니 나는 어쩔 수 없이 굿판에 누워 있게 된다.

 무섭다.

 무섭게 화장을 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아줌마가 한 손에는 방울과 한 손에는 빨간색 부채를 들고 내 주변을 요란하게 뛴다.

 “장군님! 장군님! 이 어린놈이 뭐를 잘못해서 이렇게 벌을 내리나요.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갑자기 꽹과리와 나팔소리가 내 귀를 찢는 것 같다.

 나는 눈을 감는다.

 한참을 못 알아듣는 풍악 소리에 맞혀 무슨 말을 하더니 조용하다.

 “잡 귀신이 붙었어~~. 애기야 너는 어디서 와서 여기 붙었니? 너그집 가거라.”

 그렇게 뭐라 하는지 모르는 소리와 소름 돋는 칼이 부딪친 소리를 한 시간 정도 듣고 있으니 끝이 난 것 같다.

 

 “니 괜찮나. 왜이라는데?”

 말자가 울면서 내 손을 꼭 잡는다.

 따뜻하다.

 “괜찮나?”

 쥐똥이가 물어본다.

 철수랑 차돌이는 멀뚱멀뚱 서 있다.

 얼마나 울었는지 애들 얼굴에 눈물 자국이 보인다.

 “병팔이는?”

 “병팔이가 오겠나? 그놈도 지금 힘들고 엉망이다.”


 그렇게 굿을 해도 아무런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내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천장만 보고 누워 있다.

 “자! 한 숟가락이라도 좀 먹어봐라.”

 말자가 언제 왔는지 죽을 들고 왔다.

 나는 병원에 있을 때가 생각이 난다.

 항상 말자는 내 옆에 있는 거 같다.

 “한 숟가락 먹어라. 먹어야 기운을 차리지 자~먹어라.”

 나는 못 이기는 척 받아먹는다.

 “말자야~ 고맙다. 미안하다.”

 말자는 운다.

 “니 왜 그라는데 진짜 귀신이 붙었나? 왜 그라는데 말을 해봐

 혜영이 언니 죽은 것 때문에 그라나? 왜 따라 죽을라고 그라나 정신 좀 차리라고!”

 말자는 울먹거리면서 나가버린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누나야 우리 억수로 오랜만에 노래방 온 것 같다. 그쟈? 뭐 부르지~~”

 “니 그거 불러 봐라. 이승환 노래 ‘기다린 날도’ 그게 듣고 싶다.”

 나는 온갖 폼을 잡고 부른다.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

 누나를 보는데 누나가 울고 있다.

 “누나 왜 우는데?”

 누나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쓰윽 사라진다.


 한 달을 넘게 혜영이 누나 꿈을 꾸며 꿈꾸는 게 무서워서 며칠을 안 잔 적도 있다.

 ‘그래, 오늘은 물어보자.’ 나는 눈을 감는다.


 “같이 가자.”

 독서실을 나오는데 혜영이 누나는 웃으며 내 팔짱을 낀다.

 우리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으며 집으로 간다.

 “누나 잘 가. 잘 자고 내일 보자.”

 나는 누나 집 골목 입구에서 손을 흔든다.

 누나는 손을 흔들며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던 길로 뛰어가는 거다.

 “누나. 어디 가노~”

 누나는 아무 말도 없이 독서실로 가는 것 같다.

 나는 뒤따라 뛰어간다.

 누나는 독서실로 들어간다.

 자리에 앉은 누나는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쓴다.

 그러더니 사라진다.

 나도 눈을 뜬다.

 똑같은 패턴이다.

 익숙하다.

 5분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꿈을 생각해 본다.

 노란 노트에 뭔가를 쓰는 혜영이 누나를 기억한다.     

 “괜찮나?”

 말자는 오늘도 죽을 들고 들어온다.

 말자는 물수건으로 내 얼굴과 팔다리를 닦아 준다.

 나는 말자를 본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온다.

 “말자야! 나 무섭다. 매일 혜영이 누나가 꿈에 나온다. 무섭기도 하고, 혜영이 누나가 불쌍하기도 하고. 내 이제 어쩌노?”

 말자는 나를 안아주면서 같이 울기 시작한다.

 너무 따뜻하고 편안하다.

 

 나는 말자에게 매일 꾸는 꿈 이야기를 한다.

 “내랑 독서실 가보자.”

 말자는 독서실에 나를 끌고 간다.

 “안녕하세요.”

 아줌마는 나를 한참 보더니 “아! 혜영이 사촌 동생! 얼굴이 왜 이렇노?”

 아줌마는 다른 뭔 말을 하려다 멈춘다.

 “혜영이 이야기는 들었어. 그날도 재수할 거라고 왔는데.. 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대로 있어.”

 “네~고맙습니다. 제가 가지고 갈게요.”

 나는 혜영이 누나 짐을 챙긴다.

 책 맨 밑에 노란 노트가 있다.

 나는 등에서 땀이 나는 걸 느낀다.

 온몸은 소름에 닭살이 덮는다.

 말자는 책이고 모든 짐을 태워서 버리자고 한다.

 나는 절대 안 된다고 방에 들고 들어와서 정리한다.

 노란 노트를 펼친다.

 누나는 나랑 처음 만난 날부터 일기가 적혀있다.

 “난 그 애가 좋다.

 어리지만 왠지 오빠처럼 좋다.”

 나는 하루하루 누나의 일기를 본다.

 나는 누나의 마음을 알게 된다.

 너무 미안하다.

 나는 벌 받아도 되는 것 같다.

 “오늘 수능을 쳤다.

 시험을 나는 망쳤다.

 친구들은 너무 잘 쳤다고 한다.

 다들 2차는 안 칠 거다고 한다.

 나도 잘 쳐서 매일 보고, 손도 잡고, 놀려가고 싶었는데...

 너무 보고 싶다.

 오늘은 너의 품에서 잠들고 싶다.

 정신 차리자.

 공부하자.

 12월에 치는 수능에 집중하자.”

 -8월 20일 1차 수능 치는 날-     

 나는 몰랐다.

 수능을 2번 쳤는지? 수능을 8월에 한번 12월에 한번 두 번 친 거다.

 그중 잘 나온 성적으로 대학 진학하는 거였다.

 ‘미친놈! 누나 미안해. 나는 그것도 모르고, 누나 몰래 다른 애들 만나고, 시험 치는 날도 나는 애들하고 놀고, 그 흔한 말 그 좋아하는 초콜릿 하나도 못 주고’ 나는 울다가 잠든다.

 개운하다.

 꿈도 꾸지 않았다. 그리고 기분이 좋다.

 ‘뭐지?’ 혼자 생각해 본다.

 나는 초콜릿 하나를 사서 누나가 있는 절에 간다.

 해맑게 웃고 있는 누나 사진이 들어가 있다.

 유리문을 좀 열어달라고 부탁해서 나는 누나 사진 옆에 초콜릿을 둔다.

 한참을 누나 앞에서 울고 이런저런 이야기 한다.

 “누나 내 또 올게.”

 나는 절을 나온다.

 눈이 내린다.

 나는 태어나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걸 처음 본다.


 그렇게 길고 어두웠던 추운 겨울은 가고 봄이 왔다.

달맞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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