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어요...."
"맛있으면 다행이네요"
재웅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예현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구름 요리라니. 근데 그걸 먹는 나라니. 아니 무엇보다 이게 뭐라고 맛있다니!
"아니 근데 당신 도대체 뭐예요?"
"어... 그게 사실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요. 말씀드릴게요"
재웅은 말을 이어갔다.
"예현 씨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좀 했어요?"
"말 돌릴 생각 말아요"
구름 샐러드는 정말 맛있게 먹긴 했어도 여전히 예현은 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다.
"아니 저.. 그게... 단군신화 기억하죠?"
"우리나라에 단군신화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단군 할아버지랑 웅녀야 모두다 알죠"
"아니 그거 말고 단군신화에 알아야 되는 게 또 있어요?"
"네, 풍백. 우사. 운사."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예현은 찬찬히 기억을 되돌려보기로 했다. 매년 새 학기면 마음 다잡고 공부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예현이었기에 1단원만큼은 누구보다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항상 새 학기의 마음이 멀리 못 가서 문제였지만. 국사 책 말머리에서 E.H. 카인가 하는 사람이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고 나면 그 뒤에서 단군신화가 짧게 다뤄졌었다. 아마 풍백, 우사, 운사는 그때 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단군신화를 보면 환웅이 세상에 내려올 때 친구들을 데려와요"
재웅은 계속 진지한 말투로 설명했다. 그 친구들이란 풍백, 우사, 운사를 말한다. 풍백은 바람을 관장하는 신, 우사는 비를 관장하는 신, 운사는 구름을 관장하는 신으로 아마도 농경사회에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신격화된 것으로 본다는 학계의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래서요?"
"그게 그냥 옛날 얘기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뭐라고요?"
"제가 운사가 될 거니까요. 지금은 운사준비생이긴 해도."
"공무원 준비한다는 게 고시가 아니고 이거였어요?"
"운사되는거도 고시급이에요!"
울컥하는 재웅을 보며 예현은 생각했다. 미쳤네. 미쳤어. 그냥 미친놈이었어. 예현은 말은 안 했지만 온갖 불신이 얼굴에 표정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미친 소리같이 들릴 거 알아요. 그래서 비밀로 해두고 싶었던 거고요"
"잘 아시네요"
"네, 지금 예현 씨 표정 보면 딱 알죠"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예현은 뜨끔했다. 예현은 다시 자세를 고쳐 잡으며 물었다.
"그래서, 재웅 씨가 그.. 단군신화에 나오는 운사? 그거라고요?"
"정확히 말하면 그 운사 직급에 지원하려고 하는 거죠"
"지원?"
재웅은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풍백, 우사, 운사는 모두 직급의 명칭일 뿐이다. 단군신화의 최초 등장했던 풍백, 우사, 운사는 자신의 먼 조상님이며 처음에는 신이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일반인의 피가 많이 섞여서 신이라고 불릴 정도의 특별한 능력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운사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은 조금만 훈련을 받으면 구름은 조금 다룰 수 있다고 했다. 그 덕분에 구름샐러드도 만들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초자연적인 일을 다루다 보니 일반 사람들에게는 정체를 잘 드러내지는 않는다. 마치 국정원처럼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다만, 이 업계도 공무(公務)를 다루는 지라 나름의 직업윤리가 존재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오용하지 않도록 한다. 예를 들면 농업 관련된 일을 한다거나 기상청에 근무한다거나. 특히 얼굴까지 팔리는 기상캐스터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고.
"사실, 이게 뭐 돈벌이가 크게 되는 것도 아니고 해서... 후손이라고 해서 다들 하려고 하진 않아요."
"그럼 재웅 씨는 왜 하고 싶은 건데요?"
처음에는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던 예현이 어느덧 빠져들어 듣고 있었다. 이게 진실이든 거짓이 든 간에 듣다 보니 꽤 재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멋있잖아요"
멋쩍은지 재웅은 대답하며 웃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예현은 바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덕에 예현은 시원하게 한바탕 웃었다. 그의 싱거운 대답. 멋쩍은 웃음, 그리고 진지한 말투는 예현이 알고 있던 재웅이 틀림없었다.
"좋아요. 재밌네요. 악마만 아니면 됐죠 뭐."
"옛날에는 그런 거로 의심받아서 많이들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뭐 도를 아십니까 취급받기도 하고. 근데 이게 사실 알고 보면 나름대로의 시스템이 있어요 시스템이."
예현의 대답을 듣고 신이 났는지 재웅은 다시 한번 신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운사라고해서 도사처럼 구름을 막 부리지는 못한다. 이쪽 세계에서도 카운터파트라는 게 존재해서 하늘계의 담당자와 연락을 하고 지내야 한다. 따지자면 본사에서 파견한 법인장쯤 되려나. 매년 높으신 분의 연간계획, 세계계획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우리나라에서 재량을 펼 수 있는 폭은 크지 않다. 또 높으신 분의 결정이 몇 시간 만에 급격하게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자기들도 야근하고 힘들 때가 너무 많다 하소연하듯 그는 말을 쏟아냈다.
"아직 준비생이라면서 잘 아네요?"
"할아버지가... 운사셨거든요"
"아버지도요?"
"아버지는 *하기 싫다고 하셨어요. 할아버지가 너무 힘들어하시는 걸 봐서"
재웅은 말끝을 흐렸다. 뭔가 그 안에도 다양한 내막이 있나 보다고 생각하며 예현은 주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왜 저한테 운사라는 걸.. 아, 아니지 운사준비생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예요? 제가 어디 가서 얘기하면 어쩌려고?"
"좋아... 하니까요"
갑작스러운 그의 고백에 예현은 멈칫하다가도 내심 기분은 좋았다. 억지로 미소를 숨기려고 노력하는 예현을 아랑곳하지 않고 재웅이 말을 이어갔다.
"예현 씨 위대한 개츠비 봤어요?"
"그럼요 당연하죠. 영화도 봤어요 두 번이나"
"개츠비에 보면 초록빛(green light)이 굉장히 중요한 상징으로 나오잖아요. 지금까지는 그냥 소설 속에 나오는 장치였는데 저한테는 그게 예현 씨 같아요. 손을 최대한 뻗어서 닿아보려고 노력해도 쉽게 닿지 않는. 그래서 더 갈망하게 만드는 그 초록빛이요"
예현도 속으로 재웅을 좋아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갑자기 쏟아진 재웅의 고백에 예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버지가 운사를 안 하셨던 이유 중에 가장 큰 건 어머니였어요. 아버지는 자기가 좀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가 떠나가실까 봐 항상 걱정하셨거든요. 그래서 어머니께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고 거짓말했고.... "
안 그래도 진지하던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더 진지한 목소리가 됐다.
"예현 씨에게 굳이 내가 운사준비생이라는 말 안 해도 될지 몰라요. 근데 저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요. 한 번을 만났든 두 번을 만났든 제가 좋아한다고 확신이 드는 사람한테는 별로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구름 샐러드는 아무리 봐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고 이건 아무나 만들 수 없거든요."
재웅은 시시한 농담을 할 때처럼 싱긋 웃어 보였다. 예현은 그의 웃음이 머쓱하지 않도록 이번에도 함께 웃어주었다. 아니 사실은 그가 말을 하는 내내 이미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날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참 많이 웃었고 서로에게 참 많은 고백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 뉘엿 넘어가는 시간이 됐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곽 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이 됐어도 바람은 차갑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겨울이 다 가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고 햇볕이 사라져도 귀 끝을 스치는 바람은 이토록 포근하기만 했기에.
이미 봄은 와 있었다.
* 이 글은 Random Restaurant 기획 글입니다.
Random Restaurant, Weekly cuisine 프로젝트란?
그 주에 인기가 있었던 단어들을 무작위로 조합한 제시어를 공통으로 활용하여 산출물을 만들고 주 1회씩 공유하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