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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Aug 13. 2019

원고는 어떻게 책이 되는가

앞에서 브런치 작가가 되는 법을 얘기했으니 순서상으로는 이번에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가 이어지는 게 맞지만 어떤 소재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훌륭한 분들이 써주신 글이 많이 있으니 이 곳에서는 그 부분을 건너뛰고 '어떻게 원고가 책이 되는지'에 대해서 집중하기로 한다. 절대로 내가 피곤하고 힘들어서 막 건너뛰는 건 아니다. 궁금한 분이 계시다면, 책임 A/S 하겠다.


원고만 있으면 책은 금방 나오는 거 아냐?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이 되고 내 글이 책이 나온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물어봤다. 


'그럼 책은 바로 나와?'

'아니, 아마 한 5개월쯤 뒤에 나올 거 같아'

'헐, 뭐가 그리 오래 걸려?'


나 또한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원고는 이미 다 쓴 거고 책 그까짓 거 표지하고 제목만 정하면 금방 뚝딱뚝딱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 뭐 대충 만들겠다면 그렇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책을 만들어보니 알겠다. 원고는 절대로 바로 책이 될 수 없다. 실제 원고가 책으로 다듬어 지기까지는 꽤 많은 편집 작업이 필요하다.


편집자의 역할은 뭔가요?

1개의 원고가 100명의 편집자를 만나면 100개의 책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같은 원고도 어떤 편집자가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서 전체적인 맥락과 분위기가 바뀐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쓰는 일은 보통 작가만의 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편집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첫 번째 독자 혹은 책의 전체 방향을 잡는 기획자 등 여러 가지 말로 편집자를 표현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편집자의 역할은 저자에게 확성기를 쥐어주는 역할이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핵심을 드러내며 원고를 가장 본질에 맞게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더 뚜렷하게 전달해 주는 그런 역할. 그것이 편집자의 역할이다.


참고) 에디터는 뭐하는 사람일까요? 에 대한 왓어북 안유정대표의 대답.

https://brunch.co.kr/@youjungahn/1

내게는 편집자가 아주 중요했다. 원고가 책이 되는 과정을 100% 편집자에게 위임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집자가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같은 질감으로 나의 원고를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꼭 필요했다. 북 프로젝트 대상작으로 발표되기 전, 편집자를 직접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에 하나 편집자가 나와 보는 방향이 다르다면, 정말 아쉽지만 다시 못 올 기회라도 출판은 미루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이런 미친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내 원고를 좋게 봐 준 사람이라면 나와 보는 시각이 비슷할 거라는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편집자를 직접 만나보고 얘기를 나눠본 결과, 보고 있는 방향, 질감이 동일하다고 판단했고 내 원고를 맡겨도 엉뚱한 책이 나오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게 3월이었다. 


출판계약서를 쓰고 출판사에서 조금 더 채웠으면 하는 주제들을 제안주셨다. 나 또한 필요성을 느끼는 주제들이 많았고 그 글들이 있어야만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추가집필을 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지금까지 썼던 모든 글을 긁어 출판사로 보냈다. 그게 6월이었다.


그리고 7월, 처음으로 1차 편집된 원고를 받아봤다.

(좀 더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출판사 편집자와 주고받았던 메일 내용을 그대로 공개한다.)

편집자가 살려야 할 것은 작가의 사상, 철학, 가치,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지, 작가의 평소 말투나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한 유머, 주제의식을 흐리는 사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경욱님이 이렇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노노...절대) 평소에 편집할 때 제가 가진 원칙이에요. 경욱님은 정말 흔치 않은 좋은 작가입니다..:) ) 

정리하지면,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집약적으로 쫀쫀하게 만들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편집자의 역할이니, 제가 원고를 심하게 곡해해서 편집했다면 원상복구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정도로 편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7월 1일, 원고에 대한 첫 편집본을 받으며

글을 쓰다 보면 그런 욕심이 든다. 여기서 한 번 웃겨보고 싶은데...? 혹은 이런 얘기도 좀 더 하고 싶은데...? 무리하다 보면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한 유머를 던지기도 하고 별 쓸모없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욕심들은 글의 주제의식을 흐리게 하고 본질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쓴 사람은 재밌다고 생각하며 썼기 때문에 아무리 퇴고해도 이 부분을 빼기는 어렵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편집자가 역할해야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어떻게 고쳐지는데?

내게 편집은 어미나 조사를 바꾸거나 문단이나 문장의 순서만을 조금씩 수정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편집자가 책을 편집하는 것은 어떤 한 글 안에서 일어나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관점에서 책 한 권을 관통하는 높이에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이 과정에서 내 손가락 같은 원고가 썰려 나가기도 한다. 글 하나가 해체되어 여기저기 붙어 아예 새로운 글이 되기도 한다. 처음 보면 내 글 같긴 한데 좀 어색할 때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차분히 읽어보면 내가 썼던 초고가 중언부언인 경우가 많다. 기획이 뾰족하지 못해 겹쳐지는 부분 혹은 비약이 있는 부분도 많다. 결국엔 편집자의 결정을 인정하게 되고 그 결정이 더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미 위대한 작가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
세상의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이렇게만 말하면 뜬구름 잡는 얘기 같으실 테니까 구체적인 사례를 첨부한다.

처음 글을 쓰던 그 당시에는 '손에 잡히는 일'이면 충분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또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일을 하던 친구들과 '손에 잡히는 일'이라고만 얘기하면 서로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시금 글을 차분히 객관적으로 읽다 보니 빈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 손에 잡히는 일에 물음표를 느끼게 됐는지 이해가 됐다. 부족한 부분엔 살을 덧붙이고 불명확한 단어들은 보다 명확해질 수 있는 단어로 바꿨다. 이처럼 불명확하고 뭉뚝한 부분을 명확하고 뾰족하게 만드는 작업들이 시작됐다. 아예 꼭지를 새로 써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글의 큰 줄기가 되는 문단을 통으로 삭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글을 쓰는 게 인간의 일이라면 편집은 신의 일이다

7월 한 달 내내 편집하는 작업을 함께했다. 편집자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덧붙이고 빼는 작업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편집을 우습게 봤는데 편집은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큰 줄기를 어떻게 잡고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부터, 세부적인 각각의 문장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며 새롭게 전체적인 구성을 잡았다. 뿐만 아니라 출처 표기 같은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혹시나 오역한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도 검증했다. 그 과정 과정을 거치며 역시 글을 쓰는 게 인간의 일이라면 편집은 신의 일이라던 말을 실감했다.


나중에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신 분이라면, 반드시 브런치에 올라온 내 초고와 나중에 출간된 책의 차이점을 비교해보시길 부탁드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편집자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저자와 편집자는 어떻게 바꿔나갔는지를 상상해보시길 바란다. 쉐도우복싱을 하듯 그 작업을 한 번만이라도 함께 따라오면 분명히 나중에 책을 작업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혼자서 저자와 편집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하는 독립출판을 생각하는 분이라면 더더욱 필요하고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드디어 8월, 뾰족하고 색을 분명히 하는 정제된 글들이 책답게 엮였다.  


오늘은 에필로그와 작가 소개를 출판사에 넘겼다. 후반부 작업들이 열심히 진행 중이다. 

정말로 이제 곧 내 이름이 박힌 책이 나온다.


브런치에서만 만나던 독자님들을 실제 서점에서 만날 생각 하니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잊고 있던 설렘이 다시 살아나는 요즘이다.


금방 만납시다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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