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를 이해한다.

"밥 먹었어?"

by ranran

가족


가깝지만 잘 모르는 관계, 굳이 다 알려고 하지 않아도 으레 그러려니 이해하는 존재일 것이다.


어릴 때는 아빠의 술 먹는 모습이 싫었고 매번 집에 늦게 들어와서 다음날 일찍이 나가는 것도 싫었다. 게다가 엄마는 가게를 하는 상황이고 시어머니까지 모시는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집안일 하나 거들지 않고 그저 하숙생처럼 들락날락하는 속 편한 사람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6시 반 새벽 출근을 3년 넘게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알람을 끄고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가서 낯을 씻고 화장품 몇 개를 툭툭 바른다. 대충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짐을 챙겨 출근한다. 몇 시간 뒤 이내 밖이 어둑어둑해지고 하늘에 달까지 나타나면 그제야 퇴근을 한다.


어둠 속에 출근하고 어둠 속에 퇴근하기를 반복하면서 인생이란 게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다독이며 출근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가장으로서 아빠의 책임감과 고마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싫은 짓을 아빠는 몇십 년 간을 해왔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얼마 전 아빠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꿈에서 지각을 하면 나는 그게 너무 싫어서 얼른 깨려고 발버둥을 친다고 얘기했었다.

아빠는 부대에 비상이 걸리는 꿈이 가장 싫다고 하셨다. 퇴직 한 뒤에도 가끔 부대 비상이 걸리는 꿈을 꿀 때가 있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아직까지도 꿈에서조차 스트레스라고 하셨다.


참고로 아빠는 직업군인으로 30년 가까이 근무하시고 목디스크로 인해서 퇴직하셨다.


어릴 때 아빠는 새벽 6시에 기상해서 항상 아침운동을 하셨다. 늘 매일같이 똑같은 동작으로 아침을 깨웠고 아주 어릴 때는 그 장면을 자고 있느라 보지 못했으나 기상시간이 빨라진 중고등학생 때부터는 거의 매일 같은 동작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서야 나는 그 동작이 PT체조 8번 온몸 비틀기인걸 알았다.




정말이지 매일매일 같은 동작으로 한결같으셨다.

나는 아빠 배에 살이 쪄 있는 걸 보지 못했다. 늘 독수리 모양의 제법 묵직한 벨트를 허리춤에 딱 맞게 졸라 매고 약간의 살이 붙는 것도 허용하지 않으셨다.


내가 고3일 땐 아빠는 이라크 파병으로 집에 안 계셨다. 간간이 이메일로 수능 공부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었으나 부디 안전히 생활하시라는 안부로 모든 집안사를 갈음했다.


지금 아빠는 암환자다.

그러나 5년 전 대장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무슨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만 같았다.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3기를 지났다고 말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면 제발 살려달라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

지금 아빠는 누구보다도 강한 삶의 의지로 잘 버티고 이겨내고 계신다.


가끔 아빠가 가르쳤던 교육생들에게서 안부 전화가 오면 마치 누가 암환자야 싶을 정도로 목소리에 생기가 돋는다.

전화로라도 자주 안부를 물어주는 교육생분들이 고맙다. 교육할 때는 독사라는 별명처럼 엄한 사람이었을지라도 적어도 나에게 아빠는 무서운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어릴 땐 이따금 엄한 모습을 보이시긴 하셨지만 지금은 그냥 버지라고 별명처럼 친근하게 부른다.


아버지라고 하면 뭔가 거리감이 느껴지고 아빠라고 하면 또 애 같아 보이는 것 같아서 버지라고 부르거나 이름 끝자만 떼어 한이라고 다정하게 부른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우리 부모님이 나를 정말 가진 것 안에서 열심히 키우셨구나 더할 나위 없이 사랑을 부어주셨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가끔 아빠랑 통화를 하면 밥 먹었냐고 가장 먼저 물으신다. 평생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보진 못했으나 밥 먹었냐는 말은 그래도 제법 많이 들어왔다.


평상시 잘 챙겨 먹고 건강히 잘 지내라, 아빠가 항상 관심 갖고 있으니 뭐든 힘들 때 말하고 사랑해 우리 딸의 함축어일 것이다. 오랜 군대 생활에 표현이 서툰 사내에게 매번 묻는 밥의 의미가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난 너무 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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