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오 꼰씰리에레 빈센조
비둘기 집사가 된 남자 이야기
나는 이탈리아어를 배울 것이다. 나는 사실 이탈리아어를 쓴 적이 있다. 중학교 다닐 때 음악 선생님께서 '비데오 마레 꽌떼 벨로(아름다운 바다를 보라)'라고 불러주시면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악보에 그대로 한글로 받아 적었다. 뜻도 모르고 그걸 외워서 시험도 쳤다. 또 로베르또 베니니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부온 주르노 프린치뻬사(공주님 안녕하세요)'라고 아내를 부르는 장면을 한동안 따라한 적도 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어를 잘 배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막연하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생계 때문에 어렵다. 그러고 보니 독일어도, 일본어도, 프랑스어도, 중국어도, 베트남어도 끝장을 못 봤다. 그래서 지금 완벽하게 하는 외국어는 없다. 하지만 드라마 '빈센조'를 봤기에 이탈리아어는 다를 것이다. 반드시 마스터하고 말겠다.
빈센조가 막을 내렸다. 재밌었다. 드라마 자체는 '강추'라는 말로 압축하고자 한다. 대신에 빈센조 까사노 변호사역을 맡은 송중기를 얘기하고 싶다. 말이 필요 없는 외모와 물오른 연기력, 거기다 나에게 학습동기를 부여한 이탈리아어까지 합세해 송중기는 빛났다. 내가 꼽은 송중기의 제일 빛나는 장면은 드라마 속에 없다. 출연진들과 함께 나온 예능프로그램 속에 있다. 대사는 아주 짧게 '가운데로 와!'이다. 함께 드라마를 찍은 '이달'이라는 다소 알려지지 않은 조연배우를 돋보이게 해 주려고 본인의 센터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송중기 본인의 무명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그런 공감과 배려의 미덕을 보여준 것에 대해 많이 칭찬하고 싶다.
배우 윤여정은 최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자신을 생계형 배우라 칭했다. 조연배우, 단역배우, 무명배우로서의 삶이 고단하다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녀를 일하도록 만들었다는 두 아들, 그들을 키우기 위해 그녀는 배우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예술이 잔인한 것이라고 했다. 배 고프고 돈이 급할 때 혼이 실린 연기를 하게 된다면서. 그녀도 그랬다고 한다. 무명배우들도 그런 심정일 것이다. 그 마음을 송중기가 이해하고 행동했다.
2017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는 좀 특별한 축하공연이 펼쳐졌다. 드라마 OST '꿈을 꾼다'라는 곡이 올랐는데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은 무명배우 33명이었다. 공연은 그들의 꿈인 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들려줬다. 시상식에 참석한 유명배우들도 본인의 무명시절이 떠오르는 듯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지금은 유명배우가 된 휴 잭맨이나 앤 헤서웨이도 브로드웨이에서 꿈을 키우던 무명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라라랜드에서 엠마 스톤이 연기한 미아 돌런도 무명의 배우 지망생에서 유명배우가 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녀의 오디션 장면에 나왔던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Here's to the fools who dream.' 나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바보처럼 나아가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물론 꿈만 쫓다 보면 미아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처럼 소중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100% 완벽한 꽃놀이패는 그렇게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무명의 설움을 겪었던 유재석도 어려운 개그맨 후배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유재석은 힘도 되어주지만 후배들에게 꿈 그 자체이기도 한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생계 때문에 어렵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또 어떻게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먼저 유재석만큼의 지위와 재력을 갖추어야 할 것도 같다. 내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도 꼭 유재석처럼 할 것이다. 뭐 그렇게 안된다면 그냥 조용히 나 하나라도 챙기면서 살 수 밖에 없겠다. 이탈리아어나 배우면서.
세상의 모든 꿈이 배고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빈센조에 출연한 모든 조연배우들도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정작 내 꿈은 뭐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당장 배가 고프진 않으니 꿈이 이루어진 것일까? 알 수가 없다. 역시 나 하나만 잘 챙기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