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밥국이라는 말이 친숙하다. 어릴 때부터 우리집에서 쓰던 말이고 먹던 음식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요즘은 국밥의 전성시대다. 돼지, 순대, 소고기, 소머리, 선지, 굴, 시래기, 콩나물 등의 다양한 재료들로 먼저 국을 끓이고 거기에 밥을 말면 국밥이 된다. 부를 때는 조리 순서대로 재료들이 앞에 오고 국과 밥이 그 뒤를 따르면 자연스레 '뭐뭐 국밥'으로 부를 수 있다.
국과 밥이 한 그릇에 나와야 국밥이 되는데, 일하는 사람의 수고보다는 돈 내고 사 먹는 사람의 기호가 절대우위인 요즘 세상이라 국은 뚝배기에, 밥은 공기에 따로 나오는 추세다. 청포장수 전봉준이나 의적 임꺽정이 주막집 평상에 앉아 "주모, 여기 국밥 한 그릇 말아주오."라고 했다 치면 "밥 말기는 셀프라우."라는 겸연쩍은 대답을 듣게 된다는 말이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이었다면 "밥은 니가 말아 처먹어라." 정도였겠다. 욕 들으며 밥 사 먹을 사람이 이제는 없어 보이지만.
심지어 국밥은 표준어인데 반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밥국이라는 말은 없다. 다만, 국민 참여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에서 사투리로 분류하며 '식은 밥에 김치를 넣어서 간단하게 끓인 국(경북)'이라고 그 뜻을 알려줄 뿐이다. 언어학적으로는 그렇다 해도, 인류학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추억 속에서 이 음식을 기억하고 있다. 검색창에 밥국이라고 쳐보면 알 수 있다.
우리집 밥국은 내가 옆에서 지켜본 기억에 따르면 이렇게 끓인다. 끓는 물에 멸치를 우려 내고, 묵은 김치를 썰어 넣고, 찬밥을 넣어 함께 끓인다. 간단하다. 조금 기교를 부린다면 처음에 마늘이나 콩나물을 넣을 수도 있겠고, 끝에 대파나 계란을 더할 수도 있겠으며, 담은 그릇에 김가루나 참기름을 뿌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기교들이 동시에 한꺼번에 부려지는 일은 거의 없고, 그중 일부가 선택되거나 또는 전체가 생략된다.
<가족이 모일 때까지 못 기다리고 직접 만들어 먹었다. 커버사진은 결과물이다. 맛있었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여운 멸치들에게 돌고래 포즈를 요구한 점 사과한다.>
모양새는 사실 차려 낸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아무렇지도 않다. 조리과정에 정성을 담으려 해도 좀처럼 담을 대목을 찾을 수가 없다. 마른 멸치의 배를 가르고 소화기를 적출하는 섬세한 수의학적 해부 과정을 통해 쓴 맛을 줄이려는 노력이나, 육수를 내는 임무를 마친 그 작은 생선들을 인양하는 수고 조차도 생략된다. 그래서 돌고래쇼의 한 장면처럼 밥국의 표면 위에 멸치의 꼬리나 대가리가 역동적으로 드러나있기 마련이다.
또, 이것은 별다른 반찬 없이 가족이 작은 밥상에 머리를 맞대고 먹어야 제맛이다. 어머니는 고장 난 전기밥통에서 흘러나온 고물 솥에 밥국을 끓였다. 버려도 좋을 것을 요강단지 모시듯 들고 다닌 데는 아마 밥국을 끓일 궁리가 있었을 것이다. 국자를 척 걸친 솥을 밥상 중간에 내려놓으면 가족 서열에 따라 각자 그릇에 퍼 담는다.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과 그 안에 담긴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란 말을 기억한다. 현진건의 소설 '빈처'에서 아내가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마련한 밥 한 그릇은 '왕의 밥, 걸인의 찬'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집 밥국에 이르러서는 '왕가의 맛, 걸인의 밥'으로 응용될 수 있겠다. 등장하는 밥은 모두 남편이 아내를 위하는, 아내가 남편을 위하는,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차린 밥이다. 재료는 없지만 가족의 시장기를 최대한 빨리 달래주려는 어머니의 사랑이 빛나는, 그런 음식이 밥국이다.
어머니는 왕년에 공작 깃털 모양의 김밥을 말고, 카스텔라를 굽고, 돈가스를 튀기고, 과일 펀치를 만들던 사람이었다. 밥국은 그런 그녀가 제대로 된 밥을 차리기 어려울 때 꺼내 든 히든카드 같은 음식이다. 풀칠이라도 해야 하는 입들. 풀칠만 겨우 시키는 미안함. 밥국은 때로 슬프고 애처로운 맛이다. 그것은 어머니가 맞닥뜨린 인생의 막막함이다. 그래서 먹기 싫고, 또 그래서 생각이 난다.
나는 밥국에 둘러앉은 어린 두 자식과 그걸 만든 어머니와 말 없는 아버지를 기억한다. 세상이 가난으로 내몰았든, 실수로 가난으로 내몰렸든, 어떤 가족이나 본의 아니게 가난해질 수 있다. 피해 가면 좋겠지만 삶이 우리에게 느닷없이 등을 돌릴 때도 있는 것이다. 우리 보통 사람의 밥은 그런 상황에서도 유대를 만드는 따뜻함이 있다. 단순하고 평범할 때, 함께 먹을 때 더 그렇다.
한식,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 참 애매한 단어다. 기간으로는 천 년 전부터인지, 오백 년 전부터인지, 주체로는 귀족이 먹던 것인지, 평민이 먹던 것인지, 지역으로는 서울에서 먹던 것인지, 전국에서 먹던 것인지 명쾌한 기준이 없다. 그래도 흔히들 자랑스러워 하는 한식의 의미는 '조선시대 궁궐을 중심으로 한 서울에서 먹던 음식'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그 원인이 드라마 '대장금' 때문인지, 과거 한 정권의 '한식 세계화'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런 한식을 외국인들이 이국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실제로 먹기 좋아하는 것은 달고 짠 양념에 재워 상 위에서 바로 구워 먹는 육류나, 나물을 넣고 고추장에 비벼먹는 밥이다. 우리와 그들의 유대도 보통 사람의 단순하고 평범한 밥일 때 더 잘 형성되는 것은 아닐까?
철마다 차를 몰고 산해진미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시대가 왔다. 사람들은 혀를 즐겁게 하는 식감으로, 북소리 나는 포만감으로, 값에 연연하지 않는 자신감으로 음식을 섭취하고,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우월감으로 그 과정을 마무리한다. 넘쳐나는 음식들은 가격의 정당성을 구축하기 위해 밀어내기 식으로 상에 올랐다가 위생이라는 명분으로 쉽게 버려진다.
이런 풍요 속에 나는 가끔 빈곤한 우리집 밥국을 떠올린다. 희뿌연 밥국의 김 속에서 활력을 찾고, 용기를 내고, 의지를 느끼던 옛날 그 가족들은 지금 한국,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에 흩어져 산다. 다시는 걸인의 음식을 우리 가족 밥상에 올리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열심히들 산다. 다음에 다시 모였을 때는 오랜만에 밥국을 끓여 먹어야겠다. 마늘, 콩나물, 대파, 계란, 김가루, 참기름을 모두 넣어서 끓이면 좋겠다. 고물 솥이 아직 남아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호화롭게 참치캔도 하나 까서 넣으면 화룡점정이겠다. 벌써 침이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