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서울가는 무궁화호 열차에 타고 있다.
유명하지 않은 처음 보는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를 보면서 저 회사 사장은 이 걸 지어서 얼마를 벌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더 많은 아파트를 지은 회사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 돈으로 도대체 뭘 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돈은 무색무취하다. 나같은 경우 월급이란 무덤덤한 꼬리표를 달고 들어와 식비, 교통비, 학비, 주거비 대충 통틀어 생활비란 이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 약간씩 모자라기 때문에 삶의 긴장도 불러일으켜 준다.
그러나, 의식주를 해결하고도 남음이 있어 그 의식주의 수준을 최고급으로 끌어올려 소진함에도 큰 잉여가 있을 때 그 돈은 기괴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배우자를 점점 싫어지게 만드는 능력, 법이 우스워지게 만드는 능력, 삶이 무의미하여 궁극의 쾌락을 쫓게 만드는 능력, 사람을 마소부리듯 부리고 싶어지게 만드는 능력 등은 모두 돈이 가진 능력이다.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악의 충만한 조직폭력배와 선을 목적으로 사는 개척 목회자 앞에 뚝 떨어진 100억원은 다르게 쓰여질 것인가? 많이 배운 대학 교수와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산골 농부의 경우는 어떨까? 내 예상은 시작점에서 다를 수 있지만 종국에는 같은 모습으로 귀결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로수길#맛집#랍스터파스타, 울아기 첫 나들이 #ㅇㅇ유모차#짱편해, 두번째 찾은 #파리#에펠탑, 정신을 차려보니 얘들이 날 따라왔네#샤넬#LV. SNS에서 흔히 보는 말들이다. 모두 본질은 돈과 소비에 대한 이야기다. 고상함과 자존감에도 돈이 든다. 행복한 가정 존경받는 부모도 돈이 만든다.
나 어릴 적엔 학교에서도 충효를 배웠다. 좀 쎄게 가르쳤던 것 같다. 신체발부와 낳으시고 기르시는 모든 걸 은혜로 배웠다. 그런 우리 나라는 동방의 예의가 넘치는 나라라고 자랑했다. 그런 건 옳지도 않고 필요도 없지만 부모를 공개적으로 원망하는 세상을 살기는 참 쉽지 않고, 그걸 아는 사람들은 이제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흙수저. '우리 부모는 능력도 없고 노력도 안 해서 돈이 없는 상태로 나를 낳아 가지고 내가 세상 힘들게 살게 되었다.'는 뜻이리라. 예전에 용이 나던 개천은 보통사람의 주거지를 특권계층의 그것과 상반되게 표현하기 위한 이원적 비유였다면, 금은동흙 재질의 수저는 사회를 돈으로 극명하게 계층화하고 계층간 상향이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신분제를 모방한 은유인 것이다.
어머니께서 싸주신 유부초밥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봄햇살 비춰진 창가를 보며 낮잠을 청해본다. 이틀 뒤면 돌아가야 하는데 생각하며.
[Epilogue] 나는 베트남에서 일한다. 행정상으로는 출국이지만 정황상으로는 귀국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인천공항에 앉아 있다. 정기 건강검진도 잘 마치고, 반갑게 만난 가족, 동료, 친구들과 회포도 풀 수 있었던 알찬 시간이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을 가지고 일터로 향한다. 목적과 수단을 혼돈하지 않고, 본질과 외양을 분별하며 살기. 잘 되리라 무작정 자신해 본다. 각오와 자신감 외에 특별한 수단을 소유해 본 적도 별로 없었으니 이번에도 거기에 걸어 본다. 책 한권을 사 놓고 펼치지를 못 한다. 다 읽어 버리면 아쉬울까봐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다. 시간도 그렇게 다 써버리기 전에 아끼고 아껴야 할 터이다. 맥주 한잔, 와인 한잔이 다 싫으니 변화가 다가오긴 했나보다. 사향노루같이 암내를 풍기는 면세점들을 비웃어 준 나에게, 세상 사치에 무심한 고마운 아내에게 찬사를 보낸다. 마중나온다는 그녀에게 건낼 명품 대사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