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이렇다. 한 장례식에 한 조문객이 맥도널드 봉투를 들고 등장한다. 상주들이 의아해하는 중에 망자의 부인이 불현듯 뭔가를 떠올리고 그 봉투를 받아 제사상에 올린다. 망자가 SNS에 올렸던 글이 떠오른 것이다. '저에게 고맙거나 미안한 일이 생기면 맥도널드에 데려가 햄버거 두 개를 사주면 됩니다.' 망자의 부인과 조문객은 사소한 그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망자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소중히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조선시대 왕과 사대부들은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모양새 나는(뽀다구라고 쓰고 싶었는데 잘 참았다.) 나라를 만들려고 행동의 규범, 행정의 규칙, 의식의 절차 등을 체계화했다. 뭘 하면 항상 끝장을 보는 민족성은 그렇게 정한 것들을 과하게 따르게 된다. 거기에 비교와 과시를 좋아하는 기질은 '따르면 양반님, 안 따르면 상놈'이라는 논리로 그것을 변질시킨다. 차별을 전제할 때 놈보다는 님이 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님들이 놈들에게 오죽 심하게 굴었으면 그랬겠냐는 추리도 가능하다.
그들은 조상이 죽으면 죽은 날짜를 기억해서 매년 제를 올려야 한다고 정했다. 제사상을 차리는 법은 다음과 같다. 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魚東肉西), 생선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頭東尾西), 육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左脯右醯), 왼쪽부터 대추-밤-배-감(棗栗梨枾), 붉은 것은 동쪽 흰 것은 서쪽(紅東白西). '오동왼서' 이건 내가 만든 말이다. 오른쪽이 동쪽 왼쪽이 서쪽. 하도 좌우와 동서를 헷갈리게 쓰는 통에 그렇게 만들었다.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와 같은 목적이다. 기적의 암기법.
재밌고 유의한 추리가 있다. 아버지의 매관매직으로 양반이 된 김참봉은 제사상 차리기가 너무 복잡해 고민이다. 그렇다고 맘대로 차렸다가는 상놈 소리 듣기 딱 십상이다. 그의 고민을 헤아린 열세 살 난 장남이 아이디어를 하나 내는데 그 방법이 바로 '기적의 암기법'인 것이다. 어동육서, 두동미서, 좌포우혜, 조율이시, 홍동백서, 오동왼서, 얼마나 쉬운가. 거기다가 멜로디까지 넣으면 금상첨화다. '지증왕 13년 섬나라 우산국, 과선배는 김진모 그는 니 사촌~'인 것이다. 이때로부터 조선 땅에는 이런 암기법이 통용되니, 현대까지 이어져 그 유명한 '태정태세문단세', '수헤리베붕탄질', '주동, 주동보,주동목,주동간목직목,주동목목보' 등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나는 사서와 삼경을 공부한 적이 없다. 물론 그 안에 담긴 몇 개 문장을 알고 있고, 와 닿는 말들은 외워서 써 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유학자나 유교를 따르는 사람은 아니다. 이런 전차로 나에게는 조율이시가 다 필요 없다. 그중에 배는 좋아하므로 패자부활시킨다. 일단 죽은 날짜는 5년 또는 10년 단위로 한 번씩만 기억하면 좋겠다. '서거 10주년' 이 얼마나 고상한가. 맘에 쏙 든다.
매년 11월 두 번째 일요일에는 자식들이 만나서 밥을 먹으면 좋겠다. 왜냐면 1998년 11월 두 번째 일요일, 자식들이 생겨나는 원인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날짜로는 8일로서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메뉴는 우리 가족이 함께 먹었던 걸로 하면 좋겠다. 집에서 먹은 갈치구이, 캠핑하면서 먹은 삼겹살바베큐, 동경에서 먹은 통카츠, 홍콩에서 먹은 베이징카오야, 파리에서 먹은 에스까르고, 로마에서 먹은 피자, 런던에서 먹은 피쉬앤칩스, 하노이에서 먹은 분짜, 싱가포르에서 먹은 칠리크랩, 일산 아웃백에서 먹은 투움바파스타, 마카오 공항에서 먹은 치킨과 맥주, 타이페이에서 먹은 곱창국수(아들 2호만 해당), 맥도널드에서 먹은 햄버거, 뭐든 좋다.
클라우드 캘린더가 있으니 날짜를 까먹을 일은 없겠다. 그리고 제발 양력으로 부탁한다. 떠난 나도 헷갈릴 것 같아서. 같이 밥 먹는 자리에 작은 사진액자 하나만 올려줬으면 한다. 혹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한 가지씩만 말해줬으면 한다.(이건 늦기 전에 직접 해보는 게 좋다.) 형제간에 상속 다툼이 필요 없음을 감사해도 좋겠다.(이건 이 글을 빌어 사과한다.)
맥주나 소주 한잔 곁들이면 더 좋겠다. 가능하면 김광석 이문세 노래도 틀어 주고, 혹 누가 기타를 친다면 '황혼' 같은 곡도 연주해 줬으면 한다. 나랑 함께 연주했던 오카리나를 불어줘도 좋겠다.(아들 1호만 해당) 내가 욕심이 많은 편이란 걸 이 글을 쓰다가 알았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나눈 추억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랄 뿐이다. 그 조문객의 햄버거처럼. 기억만 된다면 사실 배 한 덩이 조차도 필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