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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Jun 06. 2020

박씨전

고전소설의 기억에서 그녀를 그리워하다.

슬기로운 흥부는 제비의 Vital이 정상임을 확인하고 Fracture에 FA해 준다. 제비는 119를 타고 ER로 가는 대신 강남으로 날아간다. 한강의 남쪽 대치동이 아니라 양자강의 남쪽 월남이다. 나는 지금 월남에 살고 있다. 아내와 아이들은 대치동에 살고 있다. 이런 행태를 '역기러기'라고 부른다. 그 제비가 강남을 갔다가 돌아올 때 물어온 것이 박씨다. 지금 같으면 외래종 씨앗류 밀반입이다. 문익점도 딱 걸린다. '흥부전'은 '박씨전' 다른 얘기다. 박씨전은 '박씨부인전'이다.


아내는 반남 박씨다. 베트남 축구 영웅 박항서 감독이 반남 박씨다. 박 감독의 고향은 경남 산청 생초다. TV에도 나왔다. 아내 일가는 경남 산청 생초에서 부산으로 옮겨 왔다. 장모님의 산소가 생초에 있다. 베트남 있어서 못 가본 지 오래다. 귀국하면 가봐야겠다. 처삼촌은 박 감독과 어릴 때 친구라고 나와 고스톱을 칠 때 항상 말했다. 축구도 본인이 더 잘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제일 잘하는 건 고스톱 같았다. 내가 아버지에게 배운 고스톱과는 약간 결이 다른 강호의 최강 검파다. 처가의 추억이다.


나는 안동 권가다. 권가는 본이 하나다. 어릴 때 제사를 엄청 지냈다. 양반이라고 자정 넘어서 지냈다. 벌초도 매년 다녔다. 우리 일가는 할아버지 때 경북 안강 두류에서 부산으로 옮겨 왔다. 그래서 벌초는 항상 경주를 지나 경북 안강 두류에 간다. 거기에 오촌과 육촌이 있다. 군대 가면 5.56mm 총알 뒤에 PSD라고 찍혀있다. 풍(P)산(S)금속에서 동(D)합금으로 만든 것이다. 그 공장이 안강에 있다. 거기 가면 '~니더' '~시더' 같은 방언을 쓴다. 동쪽으로 더 가면 포항이다. 육촌은 포항제철, POSCO에 종사한다.


반남 박씨 부인과 안동 권가 남편은 19세에 처음 만났다. 1991년의 일이다. 대학교 학년으로는 1학년 때다. 박씨 부인은 여드름이 었고 권가 남편은 뿔테 안경에 까까머리였다. 학교 앞 지하 주점에서 두부김치 청하를 즐겨 마셨다. 서로 남한테 별로 안 했을 얘기들을 자주 나눴다. 그 공식 커플이 되었다. 셀 수 없는 횟수로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1998년에 결혼했다. 권가는 그해 1월 취직하고, 2월 졸업하고, 11월 결혼하면서 남들은 몇 년에 걸쳐서 순차적으로 하는 것들을 한꺼번에 해치운다. 그의 단순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부산에 신혼집을 전세 낸 지 한 달만에 남편은 경기도 고양시 회사 연수원으로 발령이 난다. 남편이 먼저 올라가고 아내는 그다음 해 초에 다. 그렇게 고양시 파주시 등에서 살게 된다. 남편은 2년 후 서울 본사로 가게 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집은 서울로 옮기지 못한다. 그의 딱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래도 아들 둘 낳고 20여 년을 키우는 동안 분유값 기저귀값, 생활비 교육비, 부모님 봉양까지 꼬박꼬박 벌어온다. 이런 남편의 딱함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도망가지 않고 버틴다. 그녀의 의리가 빛나는 부분이다.


소설에서 박씨부인은 처음에 박색했다. 남녀간 서로 얼굴도 모르고 부친간 취중 합의로 맺어지던 때다. 그런 전근대적 관습에 힘입어 '여보야' 가입도 없이 결혼에 성공한다. 이후 액운이 다해, 요즘 말로 저주가 풀려 미색으로 전향한다. 기다렸다는 듯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캡틴 마블 급 박씨부인만 실존했다면 병자호란 전문 배우 박해일이 최종병기 활을 열나게 쏘지 않아도, 남한산성에서 기어나와 삼전도 흙바닥머리를 찧지 않아도, 쥬신타, 홍타이지, 용골대를 물리칠 수 있었을 거다. 그녀는 알고 보니 팔방미인이었다.


문무, 두 가지만 겸비하면 인싸이던 시대가 있었다. 요건은 점점 까다로워져서 지덕체 3, 지덕체노 또는 신언서판 4, 인의예지신 5, 꿈끼깡꼴끈, 아 이건 아닌가? 그리고 팔방미인 8까지. 요즘은 핵인싸가 되려면 가짓수를 따질 거 없이 모든 걸 잘해야 하는 멀티의 시대다. 세상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하여간 박씨부인, 하늘에 별은 빛났고 그녀는 너무 예뻤다. 그래서 더 슬펐다.


19살에 만난 박과 권은 48살이 된다. 힘들고 지겨워서 많이 다툰다.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다. 그래도 권의 요로에 결석이 생겼을 때, 박의 침샘에 타석이 생겼을 때 서로 병상 을 지킨다. 신혼여행 때도 못 갔던 해외여행을 간다. 박씨 부인은 2015년에 월남에 온다. 수애 같이 남편 따라 월남왔는데 고생은 수애보다 좀 덜. 호칭은 마담이 된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하다가  2020년 1월 30일 조선땅으로 돌아간다. 씨 대신 월남산 마카다미아를 좀 가져갔다. 꼭 마이크로웨이브에 데워 드시길. 권가 남편은 계속 월남에서 일한다.


박씨 부인 자식들과 조선땅으로 돌아간 지 5개월째다. 그 간 역병이 창궐하여 난리가 나고 오갈 수가 없다. 꼴이 병자호란 저리 가라다. 임진왜란도 문제없다. 권이 박에게 술 지게미나 쌀겨를 먹인 적은 없다. 술을 먹인 적은 있다. 그래도 누가 버리라고 하면 버리지 않을 거다. 여기는 그의 의리가 빛나는 부분이다. 한번 더! 하늘의 별은 빛났고 그들의 의리도 빛났다. 박씨부인이 보고 싶다. 역병이 종식되어 어서 만나러 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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