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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Jun 05. 2020

날면서 태어나는 새는 없다

우리가 아무것도 건너뛰지 못하듯이

물에 서식하는 어류, 물과 뭍 양쪽에 서식하양서류, 기어 다니는 파충류, 날아다니는 조류까지, 그들은 모두 을 알에서 시작다. 알에서 태어나는 것들 중 가장 진화한 건 조류이다. (여기서 오리너구리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상식왕) 그런데 조류가 날 수 있을 때는 산란을 하고, 부화를 하고, 어미가 먹여 키워서 제법 몸집이 커진 다음이다. 그리고 한 과정이 더 있는데, 어미새가 높은 곳에서 슬쩍 떠밀거나 여느 사람 엄마처럼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아찔한 '자유낙하'를 시키는 것이다.


비속 살생이라 오해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사실 이것은 어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육아이자, 앞으로의 삶을 결정하는 진실의 순간, M.O.T. Moment of Truth다. 커피는 T.O.P.다. 새끼는 순간 '난 여기까진가 봐요.' 라고 생각하지만 곧바로 DNA를 통해 본능에 녹아있는 몸짓을 하게 된다. 그건 바로.


삼~육구 삼육구. 그렇게 파닥이다 보면 어느덧 날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동물의 왕국', 아 이제는 좀 업데이트해서 '국립지리지'에서 찍었다면 어미새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연출했으리라. 참 영리한 방송국 님들.


우리가 알을 바라볼 때, 어미가 알을 낳는 보다, 새끼가 알에서 나오는 것을 더 신기하게 여기는 것 같다. 예외적으로 거북의 경우 알을 낳는 장면이 유독 주목받는데, 나는 그 이유가 예의 방송국 님들이 감행한 천사의 편집 덕분이라고 생각해왔다. 항상 어미 거북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사실은 괴로워도 슬퍼도 파충류는 울지 않는다. 바닥을 기는 신체구조 때문에 같은 파충강으로 묶인 악어는 식사 중 의도치 않게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가 영원한 위선자로 낙인찍혔다. 그것만 봐도 거북의 슬픈 산란은 연출임이 분명하다.

산란 중인 동물계 척삭동물문 파충강 거북목 바다거북과 바다거북속 '올리브 바다거북'  (봄나들이 노래에 맞춰)'계문강목과속종, 종속과목강문계' 주입식 교육 만세! 제시카, 외동딸,

동양에서는 '줄탁동시'라 하여 부화의 신비를 상부상조의 철학으로 해석했고, 서양에서는 헤르만 헤세가 알이 곧 세계라며 그 세계를 파괴해야 발전이 있다는 창조적 파괴론으로 해석했다. 빗댈 것들이 세상에 널렸는데 굳이 알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걸 보면 예로부터 어지간히들 관심이 많았나 보다.


애들이 어릴 때 장수풍뎅이를 키운 적이 있다. 암수 한쌍을 들였는데 멍군이와 장군이라 이름하고 살림을 차려줬다. 나는 한글이 매우 철학적이라 생각한다. 백년가약이니 백년해로니 인륜지대사니 하는 거창한 허풍보다 훨씬 본질을 꿰뚫는 표현이다. 살 여건을 만들어 같이 살다. 살림을 차리다. 먹이로는 젤리를 줬는데 너무 한 가지만 먹는 게 불쌍해서 딸기맛, 멜론맛, 사과맛 등을 번갈아가며 줬다. 아, 바나나 맛도. 나는 애주의다.


해가 뜨면 낮이 듯 둘은 알을 낳았다. 사육통 구석구석에 많이 낳았다. 멍군이가 산란 중 눈물을 흘렸는지는 모르겠다. 거기까지는 우리가 개입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관찰을 명목으로 수시로 가택수색을 했다. 입안에서 10초 정도 녹인 맛살구 같은 하얀 알들 어느 날 부화해서 애벌레가 되더니, 어느 날 장수풍뎅이 뿔을 그대로 장착한 번데기가 되고, 어느 날 탈피를 하고 역발산기개세의 위용을 지닌 장수풍뎅이가 되었다. 그리고, 달이 뜨면 밤이 오듯 장군이와 멍군이는 죽었다.


'닐스 홀게르손의 신기한 스웨덴 여행' 짧게 '닐스의 모험'을 TV 만화영화로 보던 시절, 맘 속에 남은 장면이 있다. 가수 인순이씨가 있었다면 아마 BGM을 불렀을 것이다. 거위 모르텐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인데 그 거위의 꿈은 기러기를 따라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이었다.


우리도 자식이 둘 있다. 난생은 아니고 태생으로 낳았다. 거기까지는 아무도 개입하지 않았다. 그 이후 세상 모든 것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한 20년에 걸친 엄청난 여정이 있었다. 줄탁동시에 준하는 육아와 교육의 과정에서, 알을 깨고 나와 세상에 발을 내딛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까지, 나는 참 한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아내는 그렇지 않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에 두 아들이 서있다. 나는 당연히 그들의 비상을 응원한다. 혹 의기소침해 있다면 어느 날 호수에 비친 자신이 오리가 아니고 백조임을 알게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 있게 날갯짓을 했으면 한다. 아무것도 건너뛰지 않고 한발한발 걸어왔으니 날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날면서 태어나는 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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