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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기다리며

실패를 실패라 부르지 못 하고

by 멧별

실패를 기다리며 '나도 작가다 2차 공모전'을 지나치고 말았다. 공모전 공지 첫 날, 주제가 '실패'라는 것까지 머리에 넣고 마감일은 간과했다. 거의 매일 브런치를 방문하며 공모전이 달아오르고 있음을 체감했지만 나는 실패담을 쓰지 않았다. 아니, 쓰지 못 했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항상 괴로운 일이다. 부담스럽고 창피하다. 누군가의 지도와 교육을 받아야 할 성장기에는 실패의 판정권이 타인에게 있다. 실패의 인정도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알아서 살아야 할 때가 오면 실패의 판단은 본인이 직접 하게 된다. 실패의 인정도 자기 맘대로다.


나는 지금도 실패하고 있을지 모른다. 저걸 해야 할 때 이걸 하고 있다면 저건 실패할 것이다. 저렇게 해야 할 때 이렇게 하고 있다면 그 일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실패는 도처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실패에 물리지 않고 정글을 빠져 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패에 심하게 물어 뜯기면 사람은 만신창이가 된다.


나는 실패담을 쓰려고 부러 실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실패는 계속되고 있었을 터인데. 그러다 7월 12일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날도 3번 홀 세컨드 샷을 실패해서 공이 벙커에 빠졌는데 난 얘기를 쓸 생각을 못 했다. 무수한 미스샷과 퍼팅 실수를 하면서도 장황하고 논리 없는 변명만 늘어 놓았을 뿐 그 실패를 글로 쓰지 않았다. 그날은 '나도 작가다 공모전' 응모 마감일이었다.


내가 기다린 실패는 거창한 것이었다. '거창한 실패'라는 말 자체가 꽤나 역설적이다. 무수히 험한 작은 실패들은 외면하거나 무시해왔다. 인생에 끼어든 실패는 기관지에 침입한 먼지같다. 크게 재채기를 하듯 실패를 밀어내고 부정한다.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쓸 실패담을 못 찾았다. 실패가 없으니 성공처럼 보일 수도 있다. 작위적 성공으로 값싼 위로를 받고 있을 뿐인데. 공모전 공지를 본 그날 작고 큰 그 간의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펜을 들었다면 대작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공모전 응모 조차도 실패했다. 이번엔 정말이지 꼭 붙을 것 같았는데 아쉽다. 난 꽤 천진난만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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