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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Oct 28. 2022

모든게 달라졌지만 우리는 그대로였다

친구와 함께하는 태교여행


미조씨는 스물아홉에 뭐 좋아했어요?
"친구요"

- 드라마, 서른아홉 - 




부모님의 제주 여행이 마무리되고 진정한 홀로 제주살기가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바다를 보며 집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주식 공부를 잠시한 후, 아침을 간단히 먹고 숲길을 걷기 위해 나섰다. 어느덧 나만의 루틴이 익숙해질 무렵, 평온함이 좋으면서도 나른해지기 시작한 화요일 아침에 현아한테서 연락이 왔다. 돌아오는 금요일에 퇴근 후 2박 3일 놀러 가도 되냐는 물음에 흔쾌히 친구의 여행을 반겼다. 어쩌면 내심 놀러 오겠다는 친구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제주도에서 지내면서 부럽게 바라본 장면이 있다면 나와 같은 30대 중후반의 친구들이 별거 아닌 행동에 웃으면서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우리 나이에 친구들끼리 여행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 조율과 노력이 깃드는지를 알 것이다. 친구만을 생각할 시간이 많았던 20대와 다르게 우리는 자기 시간을 할애하는데도 이제 많은 사람과 상황을 고려해야만 한다. 결혼한 친구, 특히 아이가 있는 친구들은 남편 또는 가족들에게 미리 일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때때로 나와 같은 미혼은 가족에게 허락받는 일보다 더 얽매여 있는 회사에 허락받아야 할 때가 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제주도에서 웃고 있는 내 또래의 친구들이 종종 부러웠다.


그랬는데 현아가 온다고 하니 반가웠다. 고등학교 때 친해진 친구인데 알고 보니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나왔었다. 그때는 몰랐어도 동문이 주는 유대감과 내적 친밀감은 무시할 수가 없듯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친해져서 벌써 18년 가까이를 함께 하고 있다. 올해 임신과 함께 출산까지 하는 친구는 코로나와 여러 상황으로 태교 여행은 엄두도 낼 수 없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 컨셉은 '친구와 함께 하는 태교여행'으로 삼았다.


금요일 저녁 7시쯤 도착한 친구를 부랴부랴 픽업하여 가장 가까운 바닷가가 보이는 고깃집으로 갔다. 짧은 일정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온 친구에게 제주스러운 노을을 선물해주고 제주도를 바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삼겹살이 아닌 돼지고기의 특수부위를 전문적으로 파는 고깃집이었는데, 맛은 정말 끝내주었으나 소주 한잔을 곁들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친구는 임신 중이고 나는 운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 맛있는 안주 앞에 우리는 사이다로 짠하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대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우리 만남에 술은 빠질 수 없는 존재였는데. 이렇게 조금씩 달라진 시간들에 우리는 고기 한입, 사이다 한 모금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2박 3일 중에 벌써 이튿날이 된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보말을 안 먹어 본 친구를 위해 집 근처 보말죽 맛집에서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태교 여행에 핵심인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 보롬왓으로 이동했다. 코스 선정은 이미 이전에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워낙 여러 곳을 미리 알아봤던 터라 수월하게 정하고 다닐 수 있었다. 보롬왓은 매월 볼 수 있는 꽃들이 다양한데 우리가 간 6월은 수국과 메밀꽃이 한가득이었다. 흐린 날씨가 표시된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쨍한 하늘로 인해 기분까지 맑았다. 이후 오랜만에 많이 걸은 탓에 몸이 무거운 친구와 체력이 저질인 나는 유명한 명진전복에서 음식으로 체력을 보충했다. 그리고 세화해변의 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더 젊었(?!)을 때는 제주에 오면 빈틈없이 시간에 우리 활동을 채워 넣으려 했다. 이제는 제주의 시간을 우리의 대화로 채워 넣는다. 어김없이 에메랄드 빛을 내뿜는 세화바다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우리의 모습부터 사회 초년생의 어려움, 현재 각자의 모습, 그리고는 이어지는 앞으로의 이야기까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점점 우리의 모든 것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쩌면 현재까지 과거의 동질감으로 공감의 폭을 유지했다면 미래의 이질감은 이해의 폭을 좁히지 못할 수도 있다.


미혼인 나는 사회의 보편적인 시선에 발맞춰 연애, 결혼, 출산 등 인생의 발달과업을 척척 잘 해내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내가 어김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오히려 자유롭게 자신만을 위한 커리어를 쌓아가는 내가 부럽다고 말한다. 즐길 수 있을 때 원 없이 즐기라고.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어느 것 하나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선택한 삶을 우리는 인정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서로의 삶은 달라졌지만 사실 우리는 그대로였다. 출발 전부터 친구는 제주에서의 내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내려와서는 줄 곧 운전하는 나를 옆에서 계속 챙겨줬다. 여행하는 동안 운전 때문에 맥주도 안 마시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집에 돌아와서는 맥주 한 캔을 내놓았다. 내가 가자고 하는 장소와 음식점들에 늘 좋다고 이야기하고, 돌아가는 공항에서는 모든 것이 좋았다고 말해주었다. 나 또한 친구의 컨디션을 생각하며 장소들을 조정해서 다녔고, 주차할 때도 오른쪽 공간이 좁지 않은지 늘 신경 썼다. 나와 정반대의 신체 온도를 가진 친구를 위해 에어컨과 선풍기 셋팅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이렇게 사소한 것부터 크게는 미래 여정까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과 행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어쩌면 나 혼자 모든 게 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서로의 삶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나 그 삶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더 크게 달라졌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발달과업 선을 나만 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은 자격지심이 만들어낸 시선이다. 그들 삶의 주요 소재에서 공감대보다 이해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 외로움이 쌓은 시선이다. 서로의 배려가 쌓여 오히려 나의 어려움을 토로하기 힘든 환경으로 고독이 낳은 시선이다. 결국 나의 마음이 그들과 거리두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적인 삶이 달라졌지만 우리는 그대로였는데 말이다.






<제주를 보다> 태교여행 코스란


- 1일 차 : 보롬왓 - 카페한라산 - 하도서문길 바다 - 이스트포레스트 
보롬왓


보롬왓은 예쁜 베이커리 카페와 드넓은 들판이 인상적인 곳이다. 보롬왓은 여러 재배물이 있어서 일 년 내내 예쁘기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가 간 6월은 수국과 메밀꽃이 메인이었다. 입구부터 외부 들판으로 나가기까지 일명 '비밀의 화원'인 내부 화원이 있다. 입구부터 가는 길 전부가 포토존이었다. 여름에 이토록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화원부터 내부 카페, 외부 들판에 연못까지 부지 자체가 엄청 크다. 그래서 친구랑 쉬엄쉬엄 돌고 카페에서 베이커리도 즐기며 보름왓에서만 3시간 넘게 있었다. 알록달록한 꽃들과 함께하는 색감은 물론 구석구석 마련된 포토존은 태교여행 사진으로 최고였다. 어느 계절에 가도 좋을 명소이다.



카페한라산


카페한라산은 세화해수욕장 앞에 있는 카페이다. 정말 이름과도 같이 곳곳에 여러 식물들을 배치해 놓았다. 카페한라산이 더욱 예쁜 것은 카페에서 보이는 세화바다이다. 세화바다가 보이도록 나있는 창문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한없이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카페한라산에서 유명한 것은 바로 당근케이크. 사실 구좌읍 자체가 당근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당근케이크 포함하여 당근이 들어간 디저트들이 많다. 친구는 당근케이크를 좋아하는데 나는 사실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자극하는 케이크 냄새에 자연스럽게 당근케이크를 주문했다. 꾸덕꾸덕한 케이크는 왜 내가 당근케이크를 안 좋아했나 싶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에메랄드 바다를 보며 제주의 맛있는 당근케이크를 즐기고 싶다면 추천한다.



이스트포레스트


제주 도착하면서부터 제주도 흑돼지에, 보말에, 전복에 친구가 먹고 싶던 제주도 음식은 다 섭렵한 터라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계속 고민했다. 뭔가 특별한 거를 먹고 싶어 검색하던 중 카페에서 가까운 이탈리안 음식점, 이스트포레스트가 있었다. 브런치도 되고 식사도 가능한 다이닝 카페였다. 


우리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장소도 너무 예쁘지만 문어를 이용한 파스타와 리조또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 와서 문어를 안 먹어 보기도 했고, 한식보다는 양식이 더 먹고 싶어서 찾아갔다. 문어크림파스타를 시킨 우리는 문어다리 한입 물고 박수를 쳤다. 문어가 질기지 않고 어떻게 쫄깃할 수 있을까. 둘이 개눈 감추듯 파스타를 해치웠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창문 틈 사이로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제주식 그러나 이색적인 양식을 즐기고 싶다면 추천한다. 



 

- 2일 차 : 착한갈치 - 양가형제 - 하이엔드 제주 - 도두동무지개해안도로
착한갈치


착한갈치는 서귀포 보목동에 있다. 갈치구이와 갈치조림 딱 2가지 종류를 판매한다. 여기는 정말 엄마가 한 번 더 가자고 할 정도로 맛있고 가성비도 좋았다. 제주도의 갈치조림은 물론 양도 많고 그만큼 가격도 비쌌다. 그런데 가격도 적당하고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매콤한 양념, 고사리까지 최고였다. 그래서 친구도 데려갔는데 완전 마음에 들어 했다. 매운걸 먹지 못해도 칼칼해서 맛있었다고 했다. 여기는 제주도에 가면 찾아가려고 저장해둔 곳이다. 매콤하면서도 가성비 좋은 갈치조림을 먹고 싶다면 추천한다.



양가형제


이곳은 내가 가보고 싶어서 저장해둔 곳인데, 브레이크 타임으로 2번 실패하고 친구랑 같이 가서 성공했다. 수제버거로 이미 유명한 집이다. 버거도 유명한데 어니언링도 맛있고 안 어울릴 같지만 오묘한 조화로 계속 마시게 되는 바닐라쉐이크도 맛있다. 


처음에 나는 배부를 것 같아서 어니언링은 시키지 말까 했고, 친구는 밀크쉐이크는 별로 일 것 같다고 해서 시키지 않으려 했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온 만큼 다 시켜보자 해서 주문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안 시켰으면 큰일 날 뻔했다. 버거, 어니언링, 밀크쉐이크 모두 깨끗이 비우고 나왔다. 수제버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적극 추천하는 곳이다. 



하이엔드 제주


친구가 공항 가기 전에 바다가 아쉬워서 들린 카페이다. 유명한 애월 카페거리에 위쪽에 위치해 있다. 바다가 보이는 통창이 인상적이었다. 일요일이었지만 생각보다 자리가 있었고, 바다 쪽에 별도의 공간이 있었다. 빵도 여러 종류가 진열되어 있어 맛보고 싶었지만 배가 부른 탓에 패스했다. 파란 하늘과 그 아래 비치는 윤슬을 보며 친구와 마지막 추억을 두런두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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