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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Oct 28. 2022

학교 선배의 전화 한 통

언제 어디서든 잘 해낼거라 믿어

당신의 밤이 편안해졌으면 해 

- 임명남, 당신의 밤이 편안해졌으면 해 - 





이날도 어김없이 숲 속을 1시간 걸은 후, 바다 앞에서 저녁까지 먹고 노을을 보다 집에 들어왔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제주도를 즐기고 들어온 날, '카톡' 메시지가 울렸다. 오랜만에 대학교 A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메시지를 본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건 선배와 친한 B선배 어머니의 부고 소식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나눈 것이어서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나중의 만남을 기약하며 연락을 마무리하였다. "그래도 저한테 알려줘서 정말 고마워요"라는 말과 함께.    


한 살씩 나이가 들수록 부고 소식에 더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쓰게 된다. 부고 소식에 있어서는 만남과 연락의 횟수나 친분의 척도를 가름하지 않으려 한다. 결혼식 청첩장을 돌릴 때도 많은 이들이 고민을 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안내하고 인사하는 게 도리일지에 대해. 연락이 중간에 끊겼는데 청첩장을 전달해도 될지, 동기이나 서먹한데 연락해도 될지 등 수많은 생각과 과정 끝에 청첩장이 나에게 오는 것일 거다. 


하물며 부고 소식은 얼마나 많은 생각 끝에 나에게 온 것일까. 요즘에는 경황이 없으면 핸드폰에 담긴 번호 전체에게 부고 문자가 전달되기도 한다. 설령 전체 문자를 받았어도 나에게까지 왔다는 것은 아직 그 번호를 저장하고 있을 만큼 우리가 인연이 있었다는 거겠지. 나와 인연이 닿은 누군가의 지인이 가시는 그 길에 나의 인사와 기도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슬픔의 기간이 짧기를, 다시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잘 살아가기를. 사실 조금 더 바란다면, 나의 이런 마음이 쌓여 우리 가족의 마지막이 편안하길 바라는 것을 보면 나를 위한 행동인 것 같기도 하다.


두 선배는 대학시절 내게 은인 같은 사람들이다. 미디어학부를 전공했는데 마지막 학기에는 팀을 이루어 졸업작품을 전시해야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당시 프로그래밍도, 영상도, 그래픽도 다 어정쩡한 실력이었던 나는 팀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만 소비하고 있던 찰나 선배들이 함께 해보자고 먼저 말해주었다. 내가 졸업시즌 이야기만 하면 다 같이 했다고 늘 말해주지만 정말 객관적으로 선배들 덕분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한 학기를 선배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과제로, 술로 밤새던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비록 사회생활을 하며 각자의 삶으로 연락이 뜸해졌지만, 졸업 이야기만 나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두 사람이기에 나는 늘 내적 친밀감을 다져왔다. 그런 선배이기에 인사를 드렸다. 첫날이라 경황이 없을 같아 전화 대신 문자로 위로를 남기조의를 표했다. 제주의 밤하늘에 있는 별을 보며 오늘 지는 별에 인사를 드렸다.






며칠이 지난 후, 부모님의 마지막 제주도 일정을 보내는 날이었다. 아빠의 짧은 1박 2일 여행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원래 MBTI의 P 무계획형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일정이지만 굵직하게 다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에 다소 빡빡하게 일정을 챙겼다.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이제 비행기 타기 전에 아빠가 드시고 싶다던 근고기와 소주만이 남았다. 하루 만에 크게 남서쪽을 한 바퀴 돌았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길었다. 이동시간이 길다는 것은 나의 운전 시간이 길었다는 것과 같다. 그탓에 조금 지쳐있었다. 또 고기를 먹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시간이 다소 촉박하여 나도 모르게 예민해져 있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도 참 융통성이 부족했다. 어쩌면 부모님한테는 고기도 좋지만 느긋하게 저녁을 드시고 편안한 비행을 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고기를 먹는 것이 하나의 미션인 것처럼 식당에 꾸역꾸역 갔다. 넉넉지 않은, 제한된 시간 안에 저녁을 먹다 보니 말도 없이 먹기만 했다. 맛있음을 느끼기보다는 불편함을 느꼈다. 나는 안 그러려고 해도 시간을 계속 보았고, 부모님은 그런 나의 눈치를 보았다. 제주에 있는 동안 하고 싶다 하신 것을 다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는 그런 딸이 되고 싶었던 내 욕심이었다.


부랴부랴 저녁을 먹고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했으나 또 하나의 실현이 닥쳤다. 보안게이트 통과 줄이 엄청 길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공항 안 전체를 빙빙 돌려 줄이 나있는 듯했다. 비행시간이 30분 남았는데 20분이 지나도 줄이 줄어들 생각을 안 했다. 나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짧은 게이트를 찾아 부모님을 모시고 초조한 마음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람이 많아서인지 비행기가 조금 지연되었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밥도 빨리 드시고 바로 뛰어다녔는데, 두 분 나이에 체하지 않으신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들어간 두 분을 배웅하고 혹시나 못 탔을까 봐 공항을 서성였다. 이윽고 잘 탔다는 카톡을 받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달 동안 써야 할 체력을 하루 만에 다 소진했다. 차에 시동을 켜고 잠시 멍 때리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B선배였다. 잘 지내냐며 문자보고 연락했다고 했다. 발인까지 잘 마무리하고 이제 쉬려고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선배는 자기가 연락도 잘 못했는데 이렇게 인사해주고 한 것이 정말 고맙다며 덕분에 잘 보내드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배의 말에 나는 울컥해서 잠시 말을 잃었다. 


"살다 보니 각자 삶에 치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락하지 못하는 지인들이 생기더라. 나는 빈말 못하니 기약 없는 조만간 보자라는 이야기는 안 할게. 다만 이렇게 우리는 또 자연스럽게 연락할 거야. 그렇게 안부 전하면 되고. 그리고 기연아, 내가 아는 너는 언제 어디서든 잘 지내고 잘 해내고 있을 거라 믿어. 늘 응원하고 있어. 부모님한테 잘하고. 고마워."


위로를 해줘야 하는 선배에게 내가 위로를 받았다. 몇 년간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선배이지만, 언제 어디서든 잘 해낼 거라는 응원은 그 누구보다 진실한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 오는 행운들은 선배가 마음으로 늘 응원해준 덕분이라고 생각이 들 만큼. 부모님한테 잘하라는 말 또한, 방금 나의 상황을 본 것 마냥 와닿은 조언이었다. 서로 고맙다고 그리고 잘 지내라는 말과 함께 담백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시동을 잠시 끄고 펑펑 울었다. 선배의 힘없는 목소리가 안타까워서인지, 뜻밖에 들은 응원 때문인지, 방금 정신없이 짜증 내며 배웅했던 탓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모님은 아직 비행 중이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면 볼 수 있게 문자를 보내 놓았다. 그리고 다시 시동을 켜고 어두운 밤안개가 자욱한 한라산 중턱 1118번 국도를 달려 집으로 갔다.


'1박 2일 동안 잔소리 들으며 여행한다고 두 분 고생 많았어~ 마지막에 너무 급박하게 보내서 미안해. 그래도 두 분한테 좋은 추억이기를 바래~ 백수인 딸 쉬는 거 이해해주고 응원해줘서 늘 고마워! 잘 지내다 올라갈게!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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