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것
카톡이 쌓이는 숫자가 적어지고, 문자는 어느덧 스팸만 가득하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시간마다 연락이 와서 핸드폰 배터리가 닳기 일쑤였다. 2년 반 가까이 혼자 일을 해왔기 때문에 사회생활 때보다 관계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30대 후반이 되니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결혼을 한 친구, 출산을 한 친구, 나와 같은 솔로인 친구.
가정을 이루어 인생의 발달과업을 척척 잘 해내는 친구들이 종종 부러웠다. 어떨 때는 우리의 대화에서 과거의 추억을 곱씹는 비중이 줄어들 때면 내 자리도 줄어드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어김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오히려 자유롭게 자신만을 위한 커리어를 쌓아가는 내가 부럽다고 말한다. 즐길 수 있을 때 원 없이 즐기라는 말을 덧붙이며.
주고받는 에너지가 감소한 것이다.
물론 지금의 시기는 각자의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는 시기로 자연스럽게 관계가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상황의 변화로 인하여 단단하게 늘어나던 연결고리는 줄어들어 갈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럴 때일수록 에너지를 잘 분산하고 서로 주고받는 노력이 채워져야 유지된다. 하지만 나는 어느덧 주고받는 에너지가 감소하고 있었다.
원래 내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로서 고민이 있을 때마다, 몸의 아픔에 대하여 잘 털어놓지 못한다. 막 이야기하고 싶어도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삶도 팍팍하기 그지없다. 그 팍팍함에 물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더 목이 메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들어주지 않을 지인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 앉을 거라는 것 또한 잘 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한다고 해결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답답함이 가시는 것은 잠시 뿐이다. 그 잠시를 위해 부정적인 마음을 상대방에게 지우는 것이 내심 부담스럽기도 하다. MBTI에서 완전 F인데 이럴 때만 T가 된다.
친구나 지인의 관계에서만 이러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관계 형성에서도 같다. 일단 새로운 관계 형성부터가 많이 축소되었다. 원래 내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모임에 잘 나갔고 사람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즐겨했다. 사람을 통해서 배우는 게 때로는 책을 통해 얻는 인사이트보다 몇 배 이상 강할 때가 많았다. 어느덧 이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새로운 관계에서 얻는 활력이나 신뢰가 불편하고 귀찮아졌다. 환경 때문인지 감정 때문이지 나도 모르게 관계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점차 관계의 축소로 인해 공백의 시간이 늘어간다. 내가 들여다보는 방향에 따라 '외로움'이 될 수도 있고 '고독'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외로움'은 나를 움츠려 들게 하지만, '고독'은 축적의 시간이 된다. 살아가며 놓쳐왔던 나를 다시 채우기 위한 시간이 된다.
친구들, 특히 기혼인 친구들이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항상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 시간을 귀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은 소홀하게 보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혼자 있는 시간이 당연한 것이 되어, 관계의 축소로 인한 감정에 치중했다. 감정에 치우쳐 스스로가 확장할 수 있는 고독의 시간으로 보지 못했다.
마흔을 넘어서서 그 지나가는 시기에 주변 환경에 따라 관계도 또다시 변화할 것이다. 관계의 축소와 개인의 축적 사이에 적절한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의 주고받는 에너지를 적절히 유지하는 힘이 있어야 하고 향후 10년을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잘 채우는 힘이 있어야 한다. 아직은 시소처럼 양쪽을 오가고 있다. 마흔에 삶도, 관계도, 사랑도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밸런스 게임을 잘 풀어나가기 위해 지금부터 워밍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