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을 그냥 계속하는 것
자기계발을 할 때는 실패했다고 하지 않잖아
자기계발은 그냥 계속하는 거지
기간에 너를 가두지 마
마지막 회사가 끝난 뒤 여러 가지 시도의 끝은 행정사 시험이다. 온라인 셀러, 온오프라인 모임, 컨설팅, 홍보기획 등을 해보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 사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회사 다닐 때와 견주어 실무자 입장에서 일처리를 할 뿐, 경영자 마인드로 내 일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9년 가까이 일했지만 중간관리자나 관리자로 일한 경력은 사실상 1년밖에 안된다. 나는 실무자로서 주어진 상황과 그 주변의 나무들은 잘 보더라도 숲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니 결과가 빈약할 수밖에.
사업가는 경영의 마인드는 물론 그에 맞는 성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사업가보다는 일 잘하는 실무자일 뿐이었다. 현 상황을 처절하게 깨닫고 혼자 일을 할 때 어떤 분야로 했으면 좋겠는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했다.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노후까지 생각해서 할 수 있는 분야는 과연 무엇일까. 남들이 성공한 분야가 아닌 닌 내가 잘 시작할 수 있는 분야 또는 구체화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일까.
우연히 이전의 공공기관 동기를 통해 행정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행정사는 행정기관의 대리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음식점을 차리든, 제품을 만들든 제품을 만들든 어떤 걸 하기 위해 허가를 받고 신고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각각의 법적 기준에 맞춰 행정기관에 등록, 승인, 허가를 받아야 하는 데 그 일을 대신해 주고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도와주는 일을 한다. 즉 행정청을 상대로 의뢰자의 업무를 대행해 준다.
대학교 졸업 후부터 9년 가까이 홍보 쪽으로 쭉 커리어를 쌓아왔다. 커리어의 시선을 바꿔봤다. 홍보직무에 중심을 두지 않고, 회사 또는 분야를 기준으로 두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공공기관, 정부부처에서 일하며 행정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격이다. 나름 일 할 때 계획서나 보고처리에 있어서 잘한 다는 소리를 들은 분야다. 잘할 수 있고 또 계속해보고 싶기도 해서 행정사를 획득하여 또 다른 길을 만들어보려고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올해 6월에 1차(객관식) 합격 후, 2차 논술(주관식)을 보기 위해 일을 하면서 평균 7시간 이상씩 공부했다. 8월~9월은 류마티스로 왼손의 통증을 느끼면서도 약을 먹고 평균 9~10시간씩 공부하며 막판 스퍼트를 올렸다. 이러한 내 노력을 알아주듯 1교시 파본 검사를 하며 문제를 사르륵 넘기는데 공부한 문제들만 나왔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흥분하고 떨었던 탓인지 아는 것에서 많은 실수를 하였다.
시험이 끝난 당일, 집으로 귀가하여 드는 생각은 잘 봤다 못 봤다를 넘어서서 나 스스로한테 화가 났다.
혼자 흥분하고 덜덜 떨면서 시험을 본 나에게, 차분에게 문제의 논점을 깊이 파악 못한 나에게. 이에 그 전날 회독한 문제조차 결론을 틀린 나에게.
아팠다고 핑계 댈 것도 없고 책상 앞에서 오래 책을 봤다고 홀로 외칠 필요도 없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차치하고 나는 주어진 시간과 상황 안에서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넘도록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결과는 따라오지 못했다. 정확히 따라오지 못했다기보다는 시험날에 그간의 시간과 노력을 다 쏟아내지 못했다.
누군가는 그 상황에 최선을 다했으면 결과가 어떻더라도 후회가 없다 말한다. 그러나 나는 후회로 가득했다.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12월 초 발표), 계속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지난날의 시간들이 안타깝게만 여겨졌다. 단순히 시험을 시험으로 보지 않았다. 지나온 시간들과 내 선택들이 맞물려 올해 하나 남은 유일한 시험이라는 결과물에 집착하고 있었다. 이것마저 떨어지면 올해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시험이 끝난 마당에 다 후련하게 잊어버리라는 말들이 무색하게 지독하게 마음속 감기를 앓았다.
"시험 끝났지. 맛있는 거 사줄게 기분전환이나 하자"
시험이 끝난 후 학교 선배언니를 만났다. 광교 사는 언니는 동생 기분을 풀어주겠다며 성수까지 먼 길을 올라왔다. 이날도 우리의 메뉴인 숯불곱창에 한 잔 하기로 했다. 같은 성수동인데 모던하고 화려한 핫플과는 상반되는 뚝도시장은 시장 중에 핫플 같았다. 아픈 뒤로 술을 입에 안대는 나는 사이다로 짠하며 그간의 마음앓이를 쏟아냈다.
"언니, 시험을 망치고 나니 올해 무엇을 한 것인가 생각이 들어요. 이룬 것이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행정일을 잘할 수 있다 해서 이 시험과 맞는 건 아닌 거 같고..."
"너가 많은 시간을 들였으니 당연히 그 결과로 상심할만하지. 근데 너 어차피 시험 끝나고 이와 별개로 일을 다시 하려고 했잖아. 그럼 행정사 시험은 너에게 취업시험처럼 바로 직업적으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과도 같은 거라 생각하면 어떨까. 길게 생각하면 우리는 계속 자기계발을 해야 해. 그게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든 노후를 위한 것이든 성장을 위해 하는 거잖아. 세상에 자기계발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데 너는 그렇지 않잖아. 매번 무언가를 하려고 하잖아."라고 말해주며 언니는 말을 이었다.
"너 벨리 배우는 거 잘 못한다고 해서 크게 낙담하면서 마음 아프지 않잖아. 책 보다가 내용이 어렵다고 크게 낙담하면서 울지 않잖아. 자기계발을 중간에 잘 못했다고 해서 그걸 실패라고 하지 않아. 자기계발은 그냥 계속하면 되는 거야. 넌 꾸준히 자기계발 잘하고 있어. 그것을 잘 못 봤다고 실패라는 둥, 반드시 올해 성공해야 한다는 둥 그 기간에 너를 가두지는 마."
언니와 짠 하고 마신 사이다 때문인지, 언니의 담담한 조언 때문인지 마음앓이로 꽉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 어떤 위로보다 더 와닿았다. 나 보다 몇 년 앞서 있다고 이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 가정, 육아와 함께 자기를 들여다보고 틈틈이 내면을 채운 사람이 우러나온 경험에서 할 수 있는 조언이었다. 거기에 오랫동안 나를 지켜본 사람만이 보듬어 줄 수 있는 말이었다.
늘 오는 연말병이 있다. 시간의 흐름에,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불안함과 초초함이 오는 병이다. 연말이 다가오면 나는 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왜 이룬 것이 없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해진다. 이대로라면 40대, 50대가 다가오면 연말병은 더 심해질 것이다. 몸도 병이 들 텐데 연말병까지 안고 살아야 한다니.
30대부터 시간과 함께 조금씩 커져온 마음의 병이라 당장 없앨 수는 없더라도 언니의 말을 되새기며 생각에 환기를 해나가려 한다. 스스로 기간에 나를 가두지 말자. 자기계발을 할 때는 실패했다고 하지 않는다. 그냥 계속하면 된다. 내 활동들은 실패가 아니라 그 활동들을 해왔다는 결과를 얻은 거다. 실패가 아닌 하나를 얻은 거다. 그러니 계속 꾸준히 해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