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기록
사원, 전문연구원, 주무관, 사무관 그리고 온라인 셀러이자 프리랜서
대학교 휴학 후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 해외봉사 이후로 각종 대외활동에 빠져 졸업도 늦고 취업도 늦게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후에 10년 동안 명함이 5번은 바뀌었다. 어느 모임에서 변화를 어려워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나는 지난 10년 동안 계속 환경을 변화시켰다.
개인적으로 한 곳에서 10년 이상 일한 사람을 존경한다. 사람, 업무, 스트레스, 월급 등 모든 환경적 요소를 무던하게 버텨냈기 때문이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나갈 용기가 없으니까"
지인들에게 존경한다는 말을 하면 쑥스러운 탓인지, 정말 그런 것인지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 또한 나를 위한 용기이다. 박차고 나갈 수 있음에도 미래의 나를 위해 조금 더 고민하고 버티는 용기. 나의 경우에는 그 버티는 힘을 기르는 용기보다 상황을 바꾸는 용기를 택했을 뿐이다.
마흔을 앞두고 있다 보니 '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후회와 불안히 같이 찾아오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시간을 솔직히 털어놓으면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게 내가 속한 사회의 당연한 절차라 여겨졌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기보다는 내가 속한 과, 배운 과목, 그 카테고리에 속하는 직업군을 찾아 지원했다. 그리고는 남들처럼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일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부터는 자기소개를 할 때 직업은 항상 세트였다. 내가 하는 일은 그러한 자기소개에 적절한 수식어가 되는 정도였다. 지금에서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일에 대한 열정은 없었다. 명암이 곧 나인 거처럼 그럴듯한 수식어를 찾아다녔고 어떻게든 일은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 있었다.
처음부터 첫 직장을 계약직으로 선택할 마음은 없었다. 내 또래 같은 졸업생처럼 평범하게 학점관리, 대외활동, 영어점수를 쌓았기 때문에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목표로 지원했다. 결과는 모두 낙방. 당시에 소위 100군데는 지원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고 나 또한 그렇게 지원했었다. 100군데 가까이를 채울 무렵 가고 싶었던 기업의 최종면접 탈락문자를 받고는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언제까지 취준생으로 남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이지만 기업의 특수성이 있고, 계약직이 많은 부서의 홍보 직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계약직이지만 기업의 크기에 비례하여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았고, 기업의 특수성(업무)에 의해 정규직과의 차별이 비교적 적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언론사의 온라인 계열사에서 홍보팀 TF의 계약직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빠르게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인가요, 느리지만 꼼꼼하게 처리하는 스타일인가요"
"저는 업무처리가 느린 편에 속합니다."
첫 계약직 면접에서 부장님의 질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원자 중에 나 혼자만 느리게 처리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나는 배움이나 처리에 느린 편에 속한다.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시간 투자를 초반에 많이 하는 편이다. 사실 계약직 면접이라는 생각에 진짜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뿐이다.
다만, 어느 정도의 포장은 필요한 자리이기에, 업무를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시간에 비례하여 가속도가 붙는 스타일이라고 덧붙였다. 그 답변이 마음에 드셨는지 나는 부장님의 직속 신생 TF 팀으로 배치되었다. 계약기간인 1년 반 동안 부장님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부장님 또한 계속 함께할 애정 어린 직원으로 그녀만의 노하우를 많이 전수해 주셨다.
"한 달 뒤에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연장 없이 그만두겠습니다."
"지금까지 성과가 뚜렷하니까 계약기간을 한번 더 연장하면 내가 정규직 명단에 올려줄 거야.
요즘 일이 많아서 힘들었을 테니까 다음 주에 전체 휴가를 다녀와. 리프레쉬 좀 하고 와"
부장님은 한 번도 내가 그만둘 거라는 생각을 못하신 듯했다. '정규직'이라는 단어를 내가 반겨할 줄 아셨던 것 같다. 성과급과 1달의 휴직기간까지 말씀하시며 그만두는 그날까지 회유하셨다.
첫 직장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건 '받은 만큼 일한다'이다. 나의 직급에 상관없이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으면 그 순간은 그만큼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감사하게도 계약직이었지만 월급을 제외한 업무, 관계 등에서 정규직과 동일하게 대우해 주셨다. 가령 업체와의 큰 미팅에 함께 동행하게 했고,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관계자 앞에서 직접 발표하고 계약을 완료하도록 이끄셨다. 그 덕분에 처리할 수 있는 업무 범주와 사회적 네트워크가 넓어졌다. 당시에 나와 동시에 들어온 동기가 있었는데 같은 부장님 소속이었지만 팀이 달랐다. 그 동기의 불만은 팀장의 지시적이고 차별적인 자세였는데, 이와 비교해 보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회사를 나온 건 다른 경험이 하고 싶어서였다. 애초에 첫 회사에 들어갈 때부터 정규직이 목표는 아니었다. 사회의 일원으로 일을 한다는 것, 그뿐이었다. 그리고 정규직을 내 삶의 목표로 한다는 게 썩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계약기간이 종료되기 6개월 전에 우연히 국가에서 전액 지원해 주는 해외 인턴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 직무도 홍보여서 바로 지원을 했고 최종합격까지 한 후에 부장님께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말씀드린 것이다. 부장님을 포함하여 퇴사 이유를 들은 모든 사람이 무모하다고 했다. 가장 친한 친구들도 부러움 반을 보태어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다녀온 뒤에 어떡할 거냐고 앞날을 걱정해 주었다.
모든 이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떠났다. 필리핀 관광청 한국사무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했다. 해외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고 퇴근 후에 영어를 배우고 주말에는 지역 곳곳을 여행했다. 아무리 단 초콜릿도 입안에서 금세 녹기 마련. 인턴의 달콤함은 3개월로 짧았고 한국에 돌아온 뒤 취업준비생이라는 꼬리표가 다시 붙었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계약직으로서의 첫 직장생활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움이 없었다. 아직 20대여서 그런지 직업의 불안정함은 문제 되지 않았다. 계약직이더라도 홍보직무로 계속 일한다면 그것 또한 커리어가 될 것이라 믿었다. 홍보업무의 특성상 오히려 여러 분야의 홍보를 한 경험이 실보다 득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때까지도 근거 없는 자신감이 뒷받치고 있었다.
연구원이란 타이틀을 안겨준 곳은 환경부 산하의 공공기관이었다. 그 분야에서 큰 기관이어서인지 모두가 안정적인 공공기관을 원해서인지 서류, 필기, 면접(보도자료 테스트, 토론, 다대다 면접)까지 전형이 까다로웠다. 모든 전형을 거쳐 홍보팀에 합격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 첫 교육 때 나는 홍보팀이 아닌 한 사업부서의 홍보자리로 배치되었다. 몇 달이 지나고 우연히 알게 된 사실로, 내가 뽑힌 그 자리는 원래 석사나 대기업 출신의 인재를 원했다고 한다. 발령받은 사업부서에서도 홍보를 할 줄 아는 사람의 자리가 비었기 때문에 나를 사업부서로 발령내고 홍보팀 인원을 다시 뽑기로 했다고. 이 사실을 들었을 때는 섭섭했지만 그 마음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미 다니기로 결정했고 홍보와 함께 환경사업을 배우는 과정이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 들어올 때만 해도 다시는 취업준비생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해외 인턴 이후 8개월의 공백기간을 가진 끝에 긴 전형과정을 거쳐 어렵게 입사했기 때문이다. 계약직 신분이니 나가라 할 때까지 열심히 다니겠다고, 오래 일하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결과적으로 다른 회사들에 비해 오래 일한 것은 맞으나 나는 또다시 내 발로 기어 나왔다.
3년 반, 모든 직장인들에게 퇴사생각이 찾아오는 시기이다. 그동안 처음 발령받은 부서에서 계속 같은 업무를 하며 계약직의 위치가 무기계약직으로 바뀌었고 중간관리자의 위치에 있었다.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느꼈던 환경사업에 흥미를 잃었고 하고자 했던 홍보업무의 비중은 점차 축소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불만은 커져갔다. '받은 만큼 일한다'라는 생각이 무너지면서부터이다.
같은 업무를 하던 직원이 그만두면서 모든 업무를 맡게 되었다. 매일 늦게 퇴근하고 택시에 몸을 싣는 생활이 버거웠다. 사수의 토닥임, 점심멤버들과의 매운 떡볶이 타임, 동기들과의 수다가 있어서 버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와 함께 추가되는 부서장의 비현실적인 지시, 알 수 없는 보고에 결국 무너졌다. 모든 회사생활이 그러할 텐데, 끝끝내 그곳을 버티지 못하고 나는 환경을 변화시키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