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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쿠키 Oct 24. 2024

드라마와 다르지만 그래도,

너는 남들과 겨룰 필요가 없어



"드라마 속 인물처럼 살고 싶었다. 

동료가 잘 나가면 가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자격지심 같은 건 절대 없으며, 어떤 일에도 초라해지지 않는, 지금 이런 순간에도 큰소리로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왜 나는 괜찮지 않은 걸 늘 이렇게 들키고 마는지."


좋아하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남자 주인공의 내레이션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역으로 드라마의 인물을 동경하다니. 이러한 설정 탓인지 대사와 스토리는 더욱 현실처럼 여겨진다. 나이가 들면서 남들 하는 만큼, 남들이 가진 만큼 나도 비슷하게 소유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은 이미 30대에 접어들며 깨진 지 오래이다. 환상은 깨졌어도 무모했던 20대보다는 30대는 조금 더 안정화될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불안함,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실감과 열등감이 있더라도 '안정'으로 가는 당연한 단계로만 여기며 버텨왔다. 하지만 40대를 앞둔 시점, 품었던 희망과 현실의 갭 사이에 불안함만 가득 찰 뿐이다. 







나는야 어느덧 낀 세대


위원회에서 정책 홍보를 할 때에 매주 월요일 아침에는 한 주간의 주요 언론보도 요약본과 기관 이슈를 간부 자리에 놓는 일로 시작했다. 매달 중순에 고용부의 고용동향이 발표되는데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경제허리 40대', '낀 세대(35세~49세)'에 대한 수치들이었다. 청년도 중장년에도 끼지 못하는 세대, 정부의 어느 정책에도 해당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은 세대. 미국에서는 가족과 자녀, 부모 세대를 동시에 돌보는 '샌드위치 세대'로 불린다. 양 세대 그 애매모호한 경계선에 놓인 40대는 애매모호하다는 것만으로도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100세 시대이자 나이의 변화보다 세상의 변화가 더 빠른 시대에서는 마흔이 되어도 도전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도전을 강요받고 인생의 퀀텀점프에 대한 압박감은 나를 조여 온다. 드라마 속 인물처럼 자격지심 없이 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불안보다 자존감 높게 살고 싶지만, 그것은 나의 희망이 될 뿐이다. 나는 점점 더 커져가는 희망과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 메워나가야 하는가. 





상대적인 세상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알고 싶지 않아도 주변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집과 차 하나쯤은 기본이 되는 사람, 투자를 성공한 사람, 고연봉 이직에 성공한 사람, 가족을 이뤄 현모양처의 꿈을 이룬 사람.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마주하는 지인들의 성장스토리는 이처럼 다양하다. SNS로 인해 지인의 지인의 지인의 성장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불안과 강박이 높은 나는 이러한 누군가의 성장이 마치 따라야 하는 기준과도 같이 느껴진다. 나는 왜 저만치 이룬 것이 없을까. 지금의 나는 지난날의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다. 


'보통만 해라'라는 말은 참 어려운 말이다. 30대 후반의 미혼 여성, 안정적인 커리어보다 호기심으로 쌓은 커리어, 만족스럽게 구매한 중고차 한 대, 20대 중반부터 투자를 좋아했지만 성공은 못한 케이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회 기준 속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보통'은 어렵다. 사회적 발달단계에 발맞추지 못한 보통이하의 삶인 것만 같다. 이러한 평가와 잣대는 내가 만들어 낸 것임을 알고 내 안의 문제임을 안다. 스스로 내가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머리로는 안다. 머리로 알면서도 마음이 함께 움직이지 못하는 것 또한 삶이 아닌가. 그러한 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아닌가. 왜냐하면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이자 상대적인 공간이니까. 이러한 갖가지 이유를 붙이며 내가 만든 40대 모습의 고정관념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너는 남들과 겨룰 필요가 없어. 그냥 네가 100점 맞으면 돼."


즐겨보는 '티쳐스' 프로그램에서 일타강사인 정승재 수학강사가 한 말이다. 성적도 최상위권이고 면학 분위기도 갖춘 중학생 친구가 대치동 상위권 친구들을 경험하기 위해 대치동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지 고민을 들고 나왔다. 이 고민에 대한 답이었다. 남과 싸우는데 생각과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나의 것에 집중하라는 의미이다. 남의 꼭대기와 싸우지 말고 내 안의 바닥과 싸워서 한 단계씩 오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말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상대적인 세상과 홀로 싸우고 있던 나를 흠칫하게 한 말이었다. 자신의 속성을 들여다보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내재되어 있는 가치를 살피라고 조언하는 듯했다.





그래서 끄적여본다


나의 속성을 들여다보기 위해 유독 열심히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기록하기. 밖으로 향하는 화살표를 내 안으로 돌리고 나와 겨루기 위해 하루를 기록한다. 공부를, 회사 업무를, 누군가를 위해 잊지 않기 위해 많은 것을 기록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더욱이 요즘과 같이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부터 많은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의 끝에는 결국 올해도 별로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스스로 놓치고 있을 뿐 하루에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있을 텐데 말이다. 일주일, 한 달, 일 년의 끝에 그 기록들을 들여다보면 매년 결코 헛되이 보낸 하루는 없었다. 이러한 생각들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한 해의 이룬 '결과'에 집중하기보다는 '해온 것'에 대해 나 자신을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록 속에서 혹은 기록으로 상대적이라 여기는 세상에 나만의 '가치'를 발견하여 스스로를 절대적인 존재로 정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품었던 희망과 현실의 갭 사이에 쌓인 불안함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스스로 바라보는 자기의 가치와 정체성으로 채우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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