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능성을 단정 짓지 말자
오늘도 핸드폰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국제회의기획업 등 행사를 진행하는 법인인데, 국제회의기획업 변경 신청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국제회의기획업과 함께 종합여행업 등록 시에 자본금 동일 출자식이 가능한지 문의드립니다."
지금은 어느새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초창기에 두 가지 이상의 인허가 또는 등록이 복합적으로 진행되는 업무 문의가 오면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당황한 내색을 들켜서는 안 된다. 나를 전문가로 믿고 상담을 문의한 분이기 때문이다.
몇 번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었을 때에는 처음에 좌절감부터 밀려왔다. 행정사가 할 수 있는 일이 3,000가지가 넘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 아직 95% 이상이더라도 나는 전문가가 아니던가. 고객의 눈에 나는 그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렇기에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과 함께 모든 질문과 영역에 있어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눌렀다.
전문가의 국어사전 뜻을 살펴보면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지, '모든 지식'이 아니다. 어쩌면 전문가는 그 순간에 모든 답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상황에 맞는 해결의 실마리를 누구보다 빠르게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어느새 고객의 상담 문의에 답을 찾아가며 전문가로서의 나에 대해서도 답을 찾아나가고 있었다.
내가 처음 겪는 사례에 대해 고객의 문의를 받았을 때 당황하면서도 해결을 위해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알고, 어떤 자료를 찾아봐야 하는지 방향을 잡아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전문성이다. 단순히 '앎'이 아닌 '해결'이 중심이 된다. 초창기 내가 모르는 사례와 지식이라는 것에만 집중해서 자책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점차 여러 문의들을 정확히 알기 위해 파악하고 해결책과 대안을 찾아 고객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관점이 바뀌었다. 좌절감은 옅어지고 그 자리에 이내 호기심이 채워졌다. 지식과 경험 그리고 문제해결은 다른 문제다. 문제해결을 위해 어느 정도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건 당연하지만, 지식과 경험이 있다고 반드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 법령과 절차를 확인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제 이 말을 내뱉을 때 쭈뼛대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감으로 가득하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확한 정보를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문의가 끝나고 나면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 관련 법령을 찾아보고 선배행정사에게 물어보고, 관련 기관에 직접 질의하기도 한다. 때로는 밤늦게까지 온갖 서적과 자료를 뒤지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간다. 그렇게 하나씩 퍼즐을 맞춰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업무의 전체 그림이 보인다. 처음에는 막막하고 당황스러웠던 것들이 점점 명확해진다. 예전에 '모른다'는 것이 나의 한계처럼 느껴졌다면(물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다시 고객에게 연락을 하는 순간, 지난 시간의 나보다 조금 더 많이 알게 된 스스로에게 뿌듯하다.
"안녕하세요. 문의하신 건에 대해 정확히 확인해서 말씀드리고자 연락드렸습니다."
그 순간 나는 정말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적어도 그 고객의 문제만큼은 그 순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덕분에 조금씩 알게 되었다. 전문가는 백과사전 같은 존재가 아니라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길을 누구보다 빠르게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쌓이는 경험 하나하나가 다음 문제를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도 말이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상담을 완료했어도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용 때문에, 시기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로 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 비록 그 고객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더라도 어느덧 난 그 사례를 경험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객의 상담이 나를 무럭무럭 자라게 하고 있었다. 그들의 문의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성장의 기회다. 새로운 도전이고 새로운 배움이다. 그들이 던지는 상황에 대한 질문들이 나를 더 전문가의 세상으로 이끌어준다.
수험생일 때는 책 속의 지식만 머릿속에 담았다면, 지금은 살아있는 경험들을 쌓아가고 있다. 책이나 강의에서는 배울 수 없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노하우들이 하나씩 쌓여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마주했을 때의 당황감을 극복하는 법을 어느새 익힌 듯하다. 그 순간의 좌절을 성장의 동력으로 바꾸는 법을 익혀나가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상담 하나하나를 통해 나는 조금씩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