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임, 첫 실패, 그리고 그 후

분명 실패였지만 실패가 아닌 느낌

by 구행


지난 4화에서 첫 대면상담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매번 카카오톡 채널 또는 문자로 비용상담만 하다가 어느 날 유선상담 후 바로 대면상담까지 급진전이 있었던 사례다. 거기에다 대면상담 후 바로 첫 계약까지 이뤄졌던 잊지 못할 의뢰인에 대한 기록이었다.


04화 계약보다 떨렸던 첫 대면상담



"어떻게 알고 계약까지 진행하기로 마음먹으셨어요?"

"솔직히 축제 보조사업 검색하면 구행님의 글과 정보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나서 준비 많이 해오신 거 보고 꼼꼼하게 잘하실 것 같아서 요청했습니다."


첫 계약서 작성 후, 선입금된 수임료를 확인하고 의뢰인에게 필요서류를 안내하며 넌지시 여쭤봤다. 의뢰인의 대답에서 또 한 번 배웠다.


대면상담 시 의뢰인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내가 준비한 자료와 자료를 통한 판단에 대해 설명하기에 급급했다.(지난 4화 참고, 나는 올해는 보조사업 선정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올해 준비해서 내년에 지원하자라고 설명함) 설명 이후, 의뢰인은 앞으로 이런 보조금 지원사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계획이기 때문에 선정 가능성이 낮더라도 한 번 지원해보려고 한다고 답했고, 그렇게 계약까지 갔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시에는 내 생각과 제안을 먼저 말하기 전에, 의뢰인의 상황과 의도를 먼저 듣지 못한 것을 많이 자책했었다. '나는 초짜입니다'를 여실히 드러낸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하지만 의뢰인은 다르게 보았던 것이다. 미리 보조사업의 기준과 특성을 파악하고 작년, 재작년에 해당 보조사업에 선정된 비영리단체들과 법인들을 분석해서 선정 가능성과 향후 방안을 제시한 것을 높게 봤던 것이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미숙하다고 여겨졌던 모습이 의뢰인에게는 꼼꼼한 전문가의 모습이었다. 의뢰인의 입장에서 진짜 니즈를 파악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되, 첫 의뢰인에게 보여줬던 모습을 강점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해 준 첫 의뢰인의 업무를 밤낮없이 진행했다. 마감기간도 짧았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자료를 모으고 사업계획서의 모든 문장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았다. 나 스스로도, 그리고 의뢰인도 만족스러운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선정날만을 기다렸다.







첫 수임 그리고 첫 실패


선정 발표날, 한 없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자체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을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이내 마음이 쿵 가라앉았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조사업자 선정 명단에 의뢰인 단체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의뢰가 첫 실패가 되어버린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더 막막했던 건 의뢰인에게 결과를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가 그대로 푹 꺼져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갑자기 모든 정전사태로 컴퓨터를 볼 수도 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부질없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대표님 시간 괜찮으시면 다음 주 화요일에 사무실로 찾아뵙겠습니다."

발표 당일 결과를 대표님께 말씀드리며 다음 주에 방문 일정을 잡았다. 결과는 이미 나왔고 선정되지 못한 건 사실이다. 의뢰인과의 계약관계를 '선정되지 못했다'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위해, 의뢰인을 위해 '그리고 그 후'를 만들어야 했다.


의뢰인과 만나기 전까지 선정되지 못한 이유를 분석했다. 작년, 재작년 선정된 비영리단체들과 법인들의 설립연도와 그간 실적들을 찾아 분석했다. 그 결과, 의뢰인의 단체 설립일이 2024년 12월이어서 지원 당시 설립기간이 매우 짧은 점(2개월)과 2022년 실적은 해당 지자체 보조사업의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 선정되지 못한 요인으로 보였다. 이러한 부분을 정리하고 내년 보조사업 준비를 위한 행정적 준비와 방안, 단체의 최종 목표인 공익법인 설립 방향에 대한 자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료와 함께 의뢰인을 다시 만났다.


광화문 사거리, 의뢰인의 사무실 1층에 있는 카페에서 마주 앉은 의뢰인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준비한 자료를 전달하고 한 장 한 장 설명을 드렸다. 왜 선정되지 못했는지, 올해 어떤 부분을 보완해서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좋을지, 장기적으로 어떻게 사업방향을 나아가야 하는지 등등.


"괜찮습니다. 처음 가능성 여부를 말씀 주셨을 때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고 시작했는데요. 다 경험이죠.

이렇게 자료까지 만들어서 전달 주셔서 고맙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의뢰인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순간 살면서 처음 느껴본 감정을 가졌다. 분명 실패였지만 실패가 아닌 느낌. 계속 직장인으로 살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었다. 회사였다면 업무가 잘못 진행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실패는 실패로 두고 빠르게 다음 업무를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행정사로서 실패했다고 느낀 첫 수임이, 어쩌면 앞으로 성공의 시작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의뢰를 받을 때마다, 업무를 진행할 때마다 내 첫 계약을 떠올린다. 그 시작과 끝, 모든 지점에서 행정사로서의 성장 발판을 얻었기 때문이다.


첫 수임을 끝까지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 사실 아직도 마음한켠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실패라고 말하지 않는다.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ing, 현재진행형이다. 의뢰인과도 종종 안부를 주고받고 사업 진행에 도움이 될 만한 소식을 전달하며 내년 보조사업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의 단순한 업무처리가 아닌, 진정한 사업 파트너로서 그렇게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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