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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하루란?

평범함의 위대함

by 리빙북 Apr 06. 2025

새벽에 일어나 옷을 입고, 하늘을 바라보며 집을 나선다. 자판기에서 뽑은 캔 커피 한 잔과 함께 차에 오른 중년의 남자 주인공은 카세트테이프를 골라 데크에 넣는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도시로 운전해 가는 모습.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이런 일상의 반복으로 채워진다.


특별한 서사나 극적인 장면 없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영화의 제목은 "퍼펙트 데이즈"다. 내용만 보면 '완전한 하루'보다는 '지루한 하루' 혹은 '루저, 패배자의 하루'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든 건 귀에 익숙한 7080 명곡 팝송들이었다.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의 루틴에 그나마 매일 달라지는 것은 차 안에서 그가 골라 플레이하는 팝송들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침마다 반복되던 그 루틴, 운전 중인 주인공의 얼굴에 태양빛이 드리우며 환한 미소가 번진다. 곧이어 그림자가 내려앉고 눈물을 머금다가 다시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변화한다. 빛과 어둠,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이 순간에 2시간 동안 느꼈던 평범함과 지루함이 깊은 감동으로 전환되었다.


우리에게 완전한 하루란 무엇일까? 온전히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주인공의 일상에도 때때로 파도처럼 밀려드는 변화와 시련이 있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루틴을 이어간다.


가출한 조카에게 방을 내어주고 다른 공간에서 잠을 자야 했고, 소중한 카세트테이프를 도둑맞았으며, 동료를 돕기 위해 남은 테이프를 팔아 돈을 빌려주었지만 결국 떼였다. 자신을 이방인처럼 대하는 여동생의 시선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루틴을 지켜나간다.


우리 대부분의 삶도 그렇다.


평범하고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 속에서 가끔 기쁨과 어려움이 찾아온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갑자기 우리 삶에 들이닥칠 때, 우리는 방향을 잃고 당황한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암 선고, 사랑하는 이를 사고로 잃은 슬픔, 예상치 못한 퇴직 통보, 지금 이 땅에 불어닥친 사회적 혼란과 자연재해 등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지루하게 느껴졌던 그 평범한 일상이다.



2016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교통사고로 다친 어머니의 수술과 재활로 가족 모두의 삶이 흔들렸다. 아내의 수술, 형제같이 여겼던 후배의 죽음까지... 그 1년 동안 내 삶의 우선순위는 완전히 바뀌었고, 일상은 사라졌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후 직장에서의 책임이 커지고, 가정과 여러 공동체에서의 역할이 늘어나면서 온전한 하루를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배운 것도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내려놓고, 남아있는 것들에 감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1년간의 재활 끝에 어머니는 다시 걷게 되셨고, 방문할 때마다 손수 된장찌개를 끓여주신다. 이런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기적인지 이제야 깨닫는다.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루틴을 지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삶을 지켜내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Feeling Good"이라는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주인공의 얼굴에서 우리는 평범함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영화를 본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여운이 남는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퍼펙트 데이'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https://youtu.be/Bn4lxodunWM?si=X30N9uzQZsLVRI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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