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치앙마이의 아침
여행지에서의 첫날 아침은 새로운 곳, 낯선 곳에 대한 설렘으로 새벽에 잠들어도 이른 아침에 눈을 뜨게 된다.
도착한 날 늦은 밤에 영역 표시를 하는 짐승처럼 동네 한 바퀴를 돌았지만 어둠에 잠들고 있는 마을을 잠시 둘러보았을 뿐 이 마을의 속살을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어느 곳에 가던 그곳의 속살 같은 모습은 새벽 산책에서 나타난다.
잠시 발걸음을 옮기자 어젯밤 지나쳤던 숙소 근처의 하얀 담벼락으로 둘러쳐진 곳이 나타났다.
그곳으로 발을 들여놓으며 앞으로 보이는 거대한 황금 사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동화책 속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나타날 것 같은 황금사원을 나무로 둘러싸인 사원을 거닐며 바라보았다. 색 바랜 황금빛이 아닌 마치 새로 금으로 칠한 듯 아침 햇살 속에 금빛 사원이 빛나고 있었다.
그 사원의 이름은 왓프라싱(Wat Phra Singh). 1300년경 린나왕국이 세운 치앙마이 올드시티 내의 대표적 사원이다. 치앙마이 올드시티를 걸어가다 보면 다양한 규모의 많은 사원들을 볼 수 있다.
대로변에 그리고 골목마다에 위치한 수많은 사원들을 보고 걸으며, 특히 새벽에 사원을 걸을 때면 고대 왕국 속으로 걸어 들어온듯한 느낌을 받는다.
경주에서 새벽이나 밤늦게 왕릉 근처를 산책하다 보면 느끼게 되는 느낌과 비슷하다.
사원 입구에는 공통적으로 이름의 앞에 왓(Wat)이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왓은 태국어로 사원을 뜻한다. 산스크리트어 Vata(수도원, 성소)에서 유래한 말로 태국뿐 아니라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 불교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새벽 예불이 진행되고 있었다. 저학년 초등학생들 또래의 앳된 동자승들이 노스님의 말씀과 예식에 따라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사원과 앳되고 조금은 남루한 동자승들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종교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예전에 출장길에 이태리 밀라노의 두오모,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에,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등 예술적인 조형미와 건축미의 절정을 보여주는 유럽의 성당들을 둘러보며 경탄에 마지않는 시선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와 동시에 교회를 짓기 위해 얼마 마한 일반 신도들의 희생이 있었을까 하는 복잡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 산책길에 마주한 왓프라싱에서 비슷한 마음을 가졌다.
누구를 위한 황금사원인지? 부처가 원했던 모습인지? 신도들이 원했던 모습인지?
휴대폰을 들고 웃으며 사원을 거닐고 친구들과 함께 떠들고 웃고 하는 여는 초등학생들과 다름없어 보이는 천진난만한 동자승의 모습과 황금사원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조금은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오니 어제 야간 근무를 했던 호텔 스텝 직원이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타이 국수로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직원인 ‘C’(다음날 통성명을 하며 알게 된 이름)에게 맛있는 국숫집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서투른 영어로 이런저런 설명을 하던 그는 자기 오토바이에 타라고 한다.
자기가 그곳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국에서도 오토바이를 탄 적이 없고 다른 사람의 오토바이 뒤에 타 본 적도 없지만 망설이지 않고 그 친구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탔다.
오토바이는 수로를 따라 올드시티 시내를 가로지르는 대로로 달렸다.
수로를 따라 바람을 가르며 오토바이는 앞으로 나아간다.
다른 세상을 보았다.
평소 자전거를 즐겨 타는 내게 오토바이는 다른 느낌, 다른 감성으로 다가왔다.
보는 위치, 시선, 그리고 속도가 가미되어 다른 세상을 나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오래된 고대 도시의 수로를 따라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달려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낯선 이를 통한 낯선 경험.
여행이 주는, 여행의 낯섦이 주는 선물 같았다.
그 친구는 무심하게 도로 옆의 국수 가게 그것도 태국 국숫집이 아닌 일본 국숫집 앞에 나를 내려 주었다.
아마 나를 일본 사람으로 생각하고 나름 신경 써서 찾아 내려준 듯하다.
국수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다.
국수 대신 오토바이로 신세계를 맛보았으니 그깟 국수는 안 먹어도 될듯했다.
길의 맞은편으로 대형 병원이 있었다.
다양한 색의 유니폼을 입은 병원 사람들이 바쁘게 출근하는 모습을 길에 서서 바라보았다.
오토바이에서 보았던 고대왕국을 건너 현재의 세계로 다시 넘어온 듯했다.
여전히 내게는 그림처럼 보이는 태국어 간판의 글씨가 이곳이 낯선 곳임을 느끼게 한다.
모닝커피를 마시려 구글을 검색하다 바로 옆의 조그마한 카페가 구글 최고 평점 5의 카페임을 알게 되었다.
'Nimman coffee'
진열된 원두에서 커피의 공력을 느낄 수 있었다.
눈앞에서 내려준 커피를 들고 카페 창가의 자그마한 공간의 의자에 앉았다.
병원으로 출근하고 또 야근 후 퇴근하는 많은 병원 사람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아! 감탄이 나오게 하는 커피 맛이다. 내가 좋아하는 산도가 가미된 깊은 내음의 커피.
카페인에 민감하여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못 이루는 내게 하루를 시작하는 하루의 단 한 잔의 커피는 내게 너무나 소중하다. 한 잔밖에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아침 커피에 나름 진심을 다한다.
낯선 곳에서 난생처음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와 문닫힌 국숫집 옆의 카페에 앉아서 기대할 수 없었던 기막힌 모닝커피를 마신다.
계획하지 않았던 낯섦과 우연히 준 선물 같은 시간이고 커피이다.
못 먹었던 아침, 타이 누들은 호텔 근처의 로컬 국숫집에서 맞이했다.
‘so good noodle.’
국숫집 이름이다. 이런 과장된 표현을 쓰는 식당의 맛을 기대하기는 보통 어렵다. 아침에 오픈하는 식당이 많지 않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제한적이었다.
4~5개의 테이블만 있고 옷 가게와 겸업하는 듯한 국숫집에 들어섰다. 테이블은 거의 차 있었고 말끔하고 담백한 외부 테라스에 있는 식당의 모습은 브런치 카페 같았다.
평소 동남아시아나 중국에 가서 아침으로 국수를 먹을 때면 의례 깨끗하고 세련된 가게보다는 오래된 로컬 시장통의 로컬 국숫집을 찾는 내겐 낯선 국숫집이었다.
매콤한 국수를 주문하고 기다렸지만 시간이 15분 이상 걸린다며 다른 메뉴를 추천하는 젊은 청년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돼지고기 베이스의 맑은 국물의 국수를 주문했다. 가격은 60바트(2500원)다
기대하지 않았다.
한 숟가락의 국물이 목구멍을 넘는 순간.
‘끝났다’
내가 애정하는 맛이다. 깔끔한 맛.
돼지고기 베이스의 따듯한 국수 국물이 평양냉면의 담백함을 구현했다면 느낌이 오는가?
아! 오늘 아침은 기대하지도 계획하지도 않았지만 낯섦이, 우연히 준 축복 같은 아침이다.
치앙마이가 진심 좋아진다.
사랑에 빠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