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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북 Oct 13. 2024

커피 유감(有感)

커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예가체프. 현지어로 이그라짜페.

내가 좋아하는 커피다.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커피다.


단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고급 커피이다. 

고급 커피여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큼한 시큼함을 좋아하는 것이다.


예가체프 커피 농사를 짓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정작 그 커피를 마실 수 없다. 

슬픈 아이러니다.


커피빈을 만들 때 생기는 커피껍질(파치먼트)을  

끓여서 커피 대신 먹기도한다는데 시장에서 

커피 가격의 1/10 정도로 살 수 있다고 한다. 

카페인 양이 엄청나다고 한다. 


가격이 싸지만 그것도 살 수 없어서 산에서 구한 생강과 계피로 만든 차 '차이'를 

마신다고 한다. 


슬픈 얘기를 알고 나니 상큼 시큼한 예가체프가 왠지 쓰디쓴 커피로 느껴질 것 같다.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그러나 하루에 한잔 이상 마시는 것이 어렵다.

커피의 카페인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늦은 오후에 커피를 못 마시는 이유다. 


늦은 오후나 저녁 커피가 그리울 때는 커피물을 마신다. 

아주 적은 양의 커피에 그의 5배 이상 되는 물을 부어 커피물을 마시는 것이다.


커피와 음악, 그리고 책 한두 권, 노트 한 권이면 반나절은 쉽게 버틸 수 있다.

커피는 책을 부른다. 음악을 부른다. 

그리고 글을 부른다.


주말 늦은 오후나 저녁, 커피를 마실 순 없지만 커피가 있는 카페에서 

책을 보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한다.


유럽의 카페는 예전 문화 살롱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문인들이 토론하고 교류하고 글을 쓰기도 하는 공간이 카페였다.

내겐 커피가 있는 카페가 나의 문화살롱인 셈이다.


스타벅스, 커피 빈등 수많은 커피 체인이 있다. 

몇 미터마다 카페가 들어서 있다.

치킨집과 카페가 한국처럼 많은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나는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 체인점을 잘 가지 않는다.  

내게는 인스턴트 문화와 커피를 파는 공간 같은 느낌이 든다.


자기만의 커피, 자기만의 분위기와 감성이 있는 카페가 좋다. 

화려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맛과 색깔이 있는 카페.


부암동 산 밑의 카페가 그런 곳이다.

인왕산을 보면서 책 한 권과 함께 할 수 있는 예가체프가 맛있는 카페. 


네덜란드 라이덴 이름 모를 카페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마셨던 커피.

샌프란시스코의 잠 못 이루는 새벽, 침대를 박차고 나와 마셨던 블루바틀의 커피.

커피의 맛과 함께 내가 잠시 머물렀던 공간, 시간, 함께 했던 이들과의 추억을 소환하는 커피.


와인이 신의 물방울이라면 커피는 내게 신의 온천수가 아닐까? 

책을 부르고 음악을 부르고 나를 숨 쉬게 해주는 힐링의 열매가 내게는 커피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라테, 카푸치노. 마시고 싶은 때와 장소가 다른 커피들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아침의 몽롱함과 오후의 나른함을 깨우는 에스프레소? 


언제든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아메리카노?


허기지고 추울 때 떠오르는 라테? 


부드러움과 따뜻함, 그리고 때론 초코와 시나몬으로 다른 향기와 

맛으로 변신할 수 있는 카푸치노?


때로는 라테로,  때로는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로, 

그리고 때로는 카푸치노로 살고 싶다면 과한 욕심일까?


그때그때마다의 상황과 만남에 자기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자연스러운 스며듬으로 다가갈 수 있고

다가올 수 있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다. 


부암동의 카페가 그리워진다. 

오늘은 그곳으로 가봐야겠다.







© claybank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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