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의 미학 3: 아트산책 2

낯선 도시가 말을 걸어오다, ACC(아시아문화전당) 산책

by 리빙북

광주는 내게 낯선 도시였다.


광주는 빛고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도시지만 왠지 어둠과 원망과 회한의 도시처럼 느껴졌다.


5.18이란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아픔이 서려있는 도시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작년 하반기 이 땅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우리에게 위로처럼 다가왔던 한강의 노벨상 수상과 그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광주의 이야기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신문에서 광주 출신의 평론가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다가 상처의 아가리를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어 그 소설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는 기사를 보고 '소년이 온다'를 읽는다는 것에 잠시 망설임이 있었다.


핏빛으로 물들인 그 소설을 보다가 눈으로 마음으로 몰려오는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 자주 책 읽는 것을 멈추고 눈을 감고 쉬다가 또 읽다를 반복하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피로 물들여진 금남로의 전남도청과 체육관의 모습이 영화의 장면처럼 다가왔었다.


지난겨울 그 소설을 보고 얼마 후 유튜브에서 유현준이라는 건축가가 광주의 ACC(아시아문화전당)를 소개하는 영상을 아내의 권유로 보게 되었다.


핏빛으로 얼룩진 금남로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선 ACC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수식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인 공간처럼 보였다.


봄이 되면 저곳이 있는 광주에 가자고 아내와 얘기를 하였었다.

그리고 지난 봄볕이 따사로운 오후에 나와 아내는 광주로 향했다.


쉬엄쉬엄 가다 보니 광주 ACC에는 오후 3시가 넘어 도착하였다.

주차장을 나와 ACC로 진입하는 입구에서부터 남다른 아우라가 느껴졌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이 ACC를 제대로 경험하자는 취지였기에 4시부터 시작하는 ACC 건축투어를 신청하여 ACC 직원의 안내로 1시간 반 정도 건축설계 당시의 얘기부터 각 건물과 공간의 주요 특징들을 설명과 함께 상세하게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지상은 잔디광장과 문화광장 그리고 브릿지를 통해 도심과 연결되어 사람들이 생활하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지상 하단의 지하 3, 4층에 해당하는 곳에는 전시관, 창작관, 도서관, 어린이 문화공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상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소통의 공간이요 표면으로 그 지상에서 내려오면 완전히 고요한 다른 속살의 공간이 구성되어 있고 지하에서도 지상에서도 6개의 게이트를 통해 사방에서 들어가고 나오고를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의 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독립된 공간으로도 역할을 하는 마치 우리 신경망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본 어떤 건축물과 공간보다도 인상적이었고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서울에 이런 공간이 있다면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이제 건축투어를 통해 대략적인 전체의 구도는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재충전을 하고 다시 저녁에 마실 나오기 위해 예약해 두었던 근처 한옥 스테이로 이동해 짐을 풀었다.


인터넷 사이트로 2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하루 숙박을 예약하고 사진과 다르고 너무 초라하면 아내에게 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도착한 한옥 스테이는 기대 이상의 깨끗한 정원과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아직 다른 손님들이 체크인을 하지 않아 그 한옥 전체를 우리가 독채처럼 체험하는 호사도 잠시 누려 보았다.


저녁을 한 후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ACC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정육각형 형태로 지상의 공간 중간중간에 배치된 빛을 발하고 있는 '큐브'였다.


낮에는 자연광을 내부로 들어오게 하는 창의 역할을 밤에는 내부의 불빛을 외부로 드러내어 외부 조명과 조형미를 갖춘 아트 오브제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정원을 아스라이 비추는 큐브 사이를 유영하듯 거닐며 밤공기가 서늘한 ACC의 표면에서 ACC의 속살을 내려다보며 기분 좋은 밤마실을 다녀왔다.



지난겨울 '소년이 온다'로 핏빛으로 물든 공간으로 기억되던 금남로 전남도청이 이제는 그 전체가 아트 오브제와 같은 거대한 소통과 예술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작년 스웨덴 강연에서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며 가졌던 처음의 질문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로 질문을 뒤집으며 ‘소년이 온다’의

글의 방향을 잡고 나아갔다고 하는 말이 떠올랐다.


이 ACC 공간을 보고 걷고 느끼며 과거와 현재의 소통, 그리고 현재와 현재의 소통. 그리고 죽은 자와 산 자의 소통을 통해 우리의 삶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나와 같은 외지인을 광주로 오게 한 ACC가 광주에 터전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곳 분들에게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이곳과 다른 곳의 소통을 통해 한강이 얘기하고 싶어 했던 소년이 오는 빛 고을로 다시 빛을 발하길 기원해 본다.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