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판결

by 블랙홀

이혼소송을 시작한 지 삼 개월 만에 판결을 받았다.

이혼숙려제가 없던 때라 판결을 받으면 그대로 굳어졌었다.

시청에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야 우리는 17년 결혼생활과 3년의 별거를 마무리하고 완전 남이 되었다.


이혼 자체를 부인하고 거부했던 남편은, 반론도 변론도 하지 않아 제출했던 소송은 원하던 대로 판결을 받았다.

위자료는 요구하지 않았고, 다만 세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가져오면서 우리나라의 위자료가 그렇다는 적다는 것에 놀랐고, 양육비가 그렇게 형편없는 금액이라는 것에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판결문을 받고 호적 정리는 되었지만 이혼 후에도 생활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주말이면 시장과 정육점을 들러 트렁크에 바리바리 싣고 더 열심히 올라왔다.

아이들에겐 더 자상해졌으며, 예전과 같은 생활비도 매월 말이면 꼬박꼬박 통장으로 입금시켜 줬다.


이미 단독주택 한 채와, 40평대의 아파트 두 채에 거주하던 D시에서 제일 알토란 같은 50평 아파트가 모두 내 명의라서 재산분할을 해 달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 했다.

오히려 남편이 내게 재산분할권을 요구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판결조차 부인했으므로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


약간의 미세한 변화가 있다면

당일치기로 왔다 간다는 점

밥을 차려준다 해도 먹었다며 그냥 내려갔다는 점

끊임없이 애들에게 잔소리를 하던 게 줄어들었다는 점

오면 소파에 붙박이가 되어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내려간다는 점이었다.


독불장군처럼 모든 걸 혼자 결정하던 패기와 의욕은 어디로 사라지고, 등 뒤로 중년 남자의 외로움이 물씬 풍겼다

사실 이혼은 했어도 남편에 대한 감정은 변하지 않았다.

만나면 든든했고 헤어지면 허전하고...... love보다는 진심으로 like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사실 난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저 보고 싶고 생각나고 만나면 즐겁고 곁에 없으면 생각나는 이건 좋아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소장을 내기 전 숱한 날을 고민했었다.

주변에선 일어났던 가정폭력이나 싸움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고, 아들. 딸 정상으로 낳아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생활고에 찌들어 주변에 손 벌리고 살지도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적어도 능력 있는 남편과 아내로 부러움을 받곤 했었다.


가정을 위해 나 하나만 눈감고 지나갈까?

아이들에게 이혼가정이란 딱지가 붙어 혹여 누가 되지는 않을까?

3년을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별거를 해왔지만 막상 이혼을 하면 남편은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이혼은 결혼과 함께 예견된 것인지 모른다.

처음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하기까지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한 달만 있으면 난 유부녀가 된다.

양가부모님의 허락이 있기까지 조금씩 마찰음은 있었지만, 남편의 화끈한 일 처리로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남자가 살던 집으로 들어가면 되었으니 별다른 혼수는 필요치 않았다.

더구나 남편의 보증으로 내 3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대출금이 통장으로 들어왔지만 혼수로는 반 절도 사용치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결혼 날짜를 잡아놓고 굳이 두 집 살림을 할 필요가 없어 결혼 두 달 전부터 우린 동거부터 시작했다.

남편은 완벽하리만큼 부족한 데가 없었다.


주변에서 칭찬하는 CEO로 경제력도 있었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으며, 자격증은 없었지만 한식부터 중식까지 요리도 맛있게 했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과 훤칠한 키도 돋보였고, 조각상 같은 얼굴은 지나가던 사람들도 뒤돌아보게 했으니 갖출 건 모두 갖춘 남자였다.


흠이라면 남편의 나이만큼 살았던 지난 과거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만 일 년을 알고 지냈지만 진지한 연애 기간은 육 개월도 되지 않았고,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난 건 이 개월도 되지 않았으니 삼십 년 이상을 살아온 남편의 지난 삶을 알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돌싱이라는 타이틀은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양 어깨를 짓 눌렀지만 뒤를 돌아보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내 인생의 20여 년은 중간에 송두리 째 날아갔다.


침침한 골방에서 나와 높은 하늘과 싱그러운 바람 냄새를 맡고 싶었다.

흔히 말하는 난 돌싱이 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연녀와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