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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해후
by
블랙홀
Oct 12. 2023
그동안 난 우물 안개구리처럼 남편이 골라주는 것을 입고, 쓰고, 사용했다.
하지만 이젠 스스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미고 가꾼다.
노티 나는 겨자색에 허리라인이 없는 노땅 재킷을 벗어버리고
,
굽 낮은 할머니구두에서 하이힐로 갈아 신었다.
흰 바탕에 붉은 목련이 왕창 핀 어찌 보면 굉장히 촌스럽고, 어찌 보면 엄청 세련된 타이트한 쟈켓과 통 넓은 바지를 세트로 입었다.
그때는 5월이 막 시작되어 화창한 날씨가 질투 나는 날,
낯설지
않은 전화번호가 떴다.
대학 때 좋아죽는다고 쫓아다니던 첫
미팅이자 마지막 미팅
상대 남자였다.
당시엔 너무 수줍어 손가락 끝만 잡고 다녔는데 서로 연락이 없다가 졸업한 지 10년 만에 한번, 그리고 10년이 흐른 후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인근 모 대학에서 열리는 유도대회 심판으로 와 있으니 아이들과 구경하러 오란다.
아들보고 같이 가자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20여분 거리에 있는 ㄱ대학교 체육관으로 혼자 갔다.
남자는 관중석에 있는 날 알아보고 손을 번쩍 들어 보이고 빙긋 웃었다.
주변 심판들처럼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가 깔끔하게 잘 어울렸다.
본인 타임만 끝내고 빠져나와 인근 레스토랑으로 갔다.
여드름 듬성거리던 모습에서 중후한 멋이 무르익어 보기 좋았고, 바람결에 몸에서 나는 비누냄새는 싱그럽기까지 했다.
학창 시절 얘기를 필두로 직장 그리고 가족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남자도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아내는 유치원을 한다고 했다.
와이프를, 남편을 흉보는 것으로도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같이 있다 보면 한두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화제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돌파구였다.
공통분모가 없다면 대화가 아닌 단답형으로
끝났을 텐데.
그렇게 첫 미팅남자는 잊을만하면 연락이 와서 만났다.
주로 내 거주지 외곽에서 만나 맛집을 찾았다.
운동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먹는 것에 신경을 썼고, 보양식에는 진심 애착까지 있었다.
하지만 남자가 와이프와의 불화로 이혼을 암시했고, 정말 도장을 찍었다고 했을 때는 왠지 부담스러웠다.
가정이 있으면 신경 쓰지 않아도 제 자리로 갈 수 있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건 주변에 머물 수도 있으니 내겐 위험부담률이 높아 차단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이후 몇 번 연락이 왔지만 더 이상의 만남은 없었다.
학창 시절의 남자를 성인이 되어 만나면 실망이 크다고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설익은 풋풋함에서 적당한 중후함과 적당한 세련됨으로, 솔직히 더 멋있었다.
때로는 대학, 아니면 직장 관련 거래업체의 사람들과 만날 일이 있었지만 일단 싱글이거나 돌싱인 경우엔
경계를 했다.
나이가 들어 만나는 돌싱은 솔직히 더 위험하다.
뉴스에서 보는 스토킹 관련 사고나 데이트 폭력, 동거하다가 돌아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대부분 중
연령대가 높을수록 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나이가 들면 그만큼 만나는 이성의 폭도 좁아지고 쉽게 만나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믿었다.
돌아갈 곳이 없는 막다른
길목에서는 상대방에게 집착과 병적인 소유욕으로 변하는 것 같다.
문제를 차단하려면 적어도 가정은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밥도 먹고 술을 마셔도 뒤탈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동안 쌓아온 위치에서 나락에 떨어질 일을 함부로 할 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내 판단은
옳았다.
가정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고, 신경 쓸 일도
만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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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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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하는 여자(개정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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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25년. 계약직 5년. 현재는 자영업을 합니다. 힘들고 화가나면 글을 씁니다. 좋아도 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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