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위한 인내

by 블랙홀

직장이 있는 사람은 이별하기도 어렵다.


이성을 잃으면 집이고 직장이고 상관없이, 마지막 종말을 맞이한 것처럼 한바탕난리를 쳐댄다 해도 당장 출근을 해야 하니 도망갈 곳이 없다.


이혼소장을 받고 꼭지가 돌아버린 남편에게 주먹펀치를 맞은 곳이 공교롭게도 코였고, 덩어리로 쏟아지는 코피를 보고 겁이 났는지 건드리고 싶어도 더 건드리지 못했다.

어찌 보면 일을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고, 기왕 터질 일이었기에 오히려 기선을 잡을 수 있도록 말판을 놔준 건 코피였다.

그렇게 남편의 주먹은 쏙 들어가 버린 셈이다.


하지만 욱하면 언제 또 찾아올까 봐 불안해서, 머리 털나고 처음으로 사설 경호업체에 의뢰를 했다. 업체에선 의뢰자가 여자이니 여자를 보내줬다.

경호는 방어만 해줄 뿐 선제공격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여자는 출근할 때부터 퇴근까지 함께 동행해 줬다.

근무를 할 때는 주변에서 빙빙 돌았지만 직장동료들은 모르고 있었다.


코피 사건 이후 남편은 한 달 가까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건 남편이 현실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였다.


평소엔 대충 넘어가지만 한번 물고 늘어지면 끝을 보는 근성을 알고 있어서인지 남편은 일체의 무대응으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더 이상의 갈굼은 없었다.

이렇게 둥글지 못한 내 성질은 스스로를 힘들게 했고, 가끔씩은 영혼을 갉아먹었지만 그렇게 태어난 걸...... 누구를 탓할 수는 없었다.


나름 지난 3년 동안 별거라는 이름으로 예행연습도 했지만, 막상 호적정리가 되니 시원섭섭하면서도 결코 시원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넌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니?

넌 아내로서 최선은 다 했니?


난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집과 일을 병행하다 보니 가끔씩은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탄 듯 맹숭맹숭.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채 지낼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난 멀티가 아니라서 하나를 마무리해야 다른 하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사랑과 좋아하는 것에 대해 확실하게 경계를 긋기가 어려웠으니 아마도 그도 중간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우리 사이에도 많은 추억이 있었다.


발효를 하기 위한 20여 평의 작업장 동쪽과 서쪽 끝에 앉아 초저녁부터 얘기를 하다 보면 새벽 한. 두시를 훌쩍 넘겨도 졸리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매일 같은 위치에서 같이 앉아 많이 웃었고, 진지하게 들었다.


눈이 억수로 내리던 날은 라이트 불 빛을 받으며 '나 잡아봐라' 하며 유치한 잡기 놀이를 했고, 저수지 둑방에 앉아 쏟아지는 별빛을 받으며 개구리울음소리를 듣고 감정에 젖기도 했다.


청보리밭 사이의 비포장 도로를, 오토바이 꽁무니에 매달려 달릴 때는 엉덩이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지만 즐겁기만 했다.


결혼이 아니면 그날이 마지막 만남임을 일방적으로 통고하고(연애소문으로 품위유지를 못 한다며 상사가 전근압박을 줘서) 밤 열차를 탔을 때, 그 자리서 대답 못한 걸 후회했다며 열차에 매달리는 위험스러운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던 박력적인 남편이었다.


학부모 친목모임에서 노래주점의 옆 테이블 취객들과 마이크싸움이 벌어져 줄행랑을 쳤을 때도, 상대남자를 그냥 두지 않겠다며 술집으로 내 달리던 내편인 적도 있었다.


첫 딸을 낳고 아들을 낳으면 백점을 받은 거라며 좋아했고, 제조장을 돌보지 않는다고 시아버지가 닦달할 땐 애먼 며느리 잡지 말고 아들인 자기에게 말하라며 직언을 날리던 남편이었다.

외모가 닮아 오누이로 오해를 받을 땐 아예 오빠인척 하던 때도 많았다.


돌이켜보니 힘들었던 날도 있었지만 마냥 즐겁고 웃음을 터뜨리던 날도 많았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편을 정말 좋아했고, 남편과 만날 때는 아침부터 설렘으로 가득했지만 그게 사랑이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사랑은 에로스고, 좋은 감정은 아가페라지만 난 그 반대 해석이 더 쉬웠다.


사랑은 상대를 향한 조건 없는 무한정한 사랑. 즉 아가페인 부모사랑, 자식사랑, 제자사랑, 조카사랑 등처럼


이성 간에 일어나는 좋은 감정은 에로스라고 생각했다. 같이 있어야 즐겁고, 같이 있어야 설레고, 같이 있어야 행복한......


남편은 때론 오라버니 같았고, 든든한 언덕이었으며, 없어서는 안 되는 옆구리 갈비뼈 같은 존재였다.

가끔씩, 아니 자주 배우자가 아닌 친남매로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럼 정말 환상적인 오누이가 되었을 텐데


남편과 나는 아가페도 에로스도 아닌 위험한 경계선에 줄타기를 했고, 한쪽으로 치우쳐지면서 균형이 깨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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