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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의 화려함
by
블랙홀
Oct 12. 2023
주변지인과 친인척에게 돌싱이라는 것을 광고는 하지 않았지만,
알게 된 사람에겐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이혼은 잘한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회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돌싱은 가정이 있을 때보다 더조심하고, 더 경계를 해야 함부로 휘둘리지 않았다.
남자들은 유부녀라고 하면 남편과 비교해서 더 잘하고 싶어 하고 더 매너 있게 행동하지만, 돌싱인 것을 알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당연한 듯 행동하고 판단한다.
아니 적선하듯 베푸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돌싱일수록 사람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하고, 선택을 당하지 말고 내가 선택한 사람과 만나며, 혹여 상대가 허점을 보이면 과감히 돌아설 수 있을 정도의 결단력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인 앞에 혼인서약을 하고 애를 낳고도 이혼을 하는 판에, 상대가 아무리 멋있고 유능하고 정이 많다 해도 질질 끌려다니는 순간부터 인생은 종 쳤다고 보면 된다.
같은 직종에서 일을 하다가 직장 내 이성문제로 그렇게 인생이 빠그라지는
사람도 봤다.
대장에게 결재를 받으려 올라 간 자리에서 외부 손님과 함께 있는 걸 봤다.
흔히 있는 일이라 결재만 받고 후다닥 내려오려는데 웬일로 손님을 소개해 줬다. 인사나 하라고.
손님은 000도에서 문화체험프로그램으로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동남아를 중심으로 청소년을 모집해서 해외 문화역사 프로그램, 홈스테이 등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조직의 회장이란다.
당시 부대장의 승진점수가 필요했는데 그 단체의 프로그램 중 성인인 우리에게도 승진 관련 점수를 주는 교육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날이후 부대장은 틈만 나면 다른 후배와 함께 날 보고 함께 교육을 받으러 가자고 꼬셔댔다.
주말을 맞아 인근 리조트에서 1박 2일이지만 힘들지 않으니 그냥
바람 쐰다고 생각하라면서. 나중에 나도 점수가 필요하면 그 교육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도 했다.
처음엔 교육은 재미가 없었고 더구나 주말에 참여해야 하니 싫다고 딱 잘랐지만, 회의 때마다 지나가는 말투로 언질을 줬고,
후배는 "누님 같이 가자"라며 졸라대는 통에...... 선배라면 모를까 후배가 "누님~"하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데는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선배에겐 응석을 부릴 수도 있지만 후배에겐 내가 보듬어줘야 하는 위치니 선배노릇은 쉽지 않았다.
교육을 며칠 앞두고 후배는 그 회장이 저녁을 사준다며 같이 가자고 아침부터 쫓아다녔다.
능력 있는 사람을 알아두면 손해 될 것 없고, 매너 역시 끝내주는데 밥 한 끼 갖고 뭘
걱정이
냐며 자기가 그 회장을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참으로 좋은 분이라고 추켜세웠다.
같은 부서의 일 년 여자후배도 같이 가기로 했다며......
단둘이 도 아니고 여럿이 가서 밥 한 끼 먹는 것도 사회생활이라고 했다. 짜식이 ㅎ
그렇게 저녁자리에 이어 폭탄주(소주+맥주)가 오고 갔지만 사실 주량이 고무줄인 내게 폭탄주 몇 잔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를 닮아 여러 잔을 마셔도 혀가 꼬부라지지 않았고, 걸음걸이도 흔들리지 않았지만, 일정 수량이 넘어가면 단 한 잔에도 식탁에 코를 박고 자는 스타일이라 누가 물으면 고무줄 주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화기애애한 속에 저녁자리는 마무리되었고, 며칠 뒤 부대장과 함께 후배 녀석의 차를 타고 교육장으로 갔다.
그날은 축구결승전이라서 교육은 뒷 전에 두고 대형 TV앞에서 열렬하게 응원을 하는 걸로 저녁 이후는 마무리 지어졌다.
부대장의 말처럼 그냥 콧바람 쐬러 나온 것 같아 희한했고, 그런 속에서 승진 관련 점수를 주는 교육이라니
세상은 편하게 살려면 한없이 편하고, 힘들게 살면 한없이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암암리에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막상 겪어 보니 굳이 FM대로 살아갈 이유가 없는 듯했다. 편하게 이끌어주겠다는데 굳이 먼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그날 밤, 모두 축구결승전에 목숨 걸고 응원했지만 워낙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숙소로 돌아가 쉬려고 먼저 강당을 나섰다.
하지만 어느 틈에 쫓아왔는지 회장은 인근에 찻집이 있다며 잡아끌었고, 실랑이하는 그 모습을 주변인들이 볼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숫자적으로 우세한 그 교육장에서...... 회장 아래 교육 부장 이하 대부분이 여자였으며 모두 현직에 있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오해를 받아 입방아 오르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뒤, 정식공문이 와서 나는 그 해외체험단의 서포트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해외체험단을 꾸리려면 사전에 여러 번의 미팅이 필요했다.
그렇게 모인 자리에는 지역신문사 사장이 함께 있었고, 지역국회의원의 동생도 왔고, 중앙본부의 간부는 물론 대학교수도 왔다.
모두 그 단체와 거미줄처럼 연결고리로 되어 있어 한 사람을 알게 되니 그다음엔 줄줄이 엮이고 설켜 알게 되었다. 직장 동료들만 알고 있던 세계에서 다른 직업, 다른 일을 하는 주변인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다만 그 모임을 가장 반대한 이는
암으로 사망한 남사친이었지만 내가 남사친의 일에 관여치 않듯 그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매번 잔소리를 해댔지만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냈다.
만약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남사친이 만류한다면
그만둘 수도 있었지만,
돌싱이 된 마당에 남사친이란 이유만으로 이러쿵저러쿵 끼어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되어 무시했다.
훗날 암에 걸린 건 스트레스를 받게 한 내 탓이라며 원망을 하기도 했지만 천방지축으로 물 흐르듯 살았다.
그때부터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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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하는 여자(개정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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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25년. 계약직 5년. 현재는 자영업을 합니다. 힘들고 화가나면 글을 씁니다. 좋아도 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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