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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매듭 Jun 13. 2022

외로움 그리고 채워짐에 관하여.

<Her> 영화를 보고 느낀 점.

어느 주말 오후 늦은 잠을 자고 깨어나 문득 고르던 영화 중 예전에 봐야지 하고 묻어두었던 영화

<Her>가 문득 생각나서 영화를 시청하게 되었다.


소개를 하자면 이렇다. "한 대필작가(테오도르)가 어떤 계기로 생각하고 학습이 가능한 운영체제를 만나고 그 운영체제(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


줄거리 소개를 본 나는 이러한 내용이 예전 당시 내가 묻어두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인공지능과의 사랑이라.. 너무 이상한 건 아닐까?' 라는 선입견으로 묻어두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생각을 접어두고 최근에 이 영화를 접했을 때 내 판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을 하였다.

아마 과거의 내가 보았다면 음악이나 영상미는 인상에는 남되 그저 독특한 영화로 기억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아마 이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파악하고 피부로 느낄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은 틀리다고 한 것은 지금은 조금이나마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엿봤지만 그건 온전히 내 생각이고 모두를 엿본 게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게 어쩌면 다행이다'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현재 봤을 땐 내게 여러 면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될 듯 싶다.


모든 것이 처음 볼 때 느낌과 다시 봤을 때 느낌이 달라지는 것처럼

캐릭터의 시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것처럼

상황과 대입하여 작품을 감상함에 따라 와닿는 느낌이 다른 것처럼


내가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랄까, 주인공 '테오도르'의 상실감 그리고 공허함, 그걸 채우기 위한 여러 방면의 몸부림들. 그러한 것들은 단지 순간뿐이라는 것.


벗어날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아야 되는 것


그게 바로 이 영화가 아니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본질적인 고충, 그리고 외로움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한테도 온전히 표현할 수 없고 모든 부분을 이해받기도 힘들다고' 말이다.


'테오도르'는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거라고 믿었고 그 믿음이 너무나 컸기에 더욱 더 나락으로 빠진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하고 또 관계가 깊어지려는 걸 스스로가 막았던 '테오도르'

주고받는 관계가 아닌, 현실 속의 존재가 아닌 '사만다'에게 점차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고 또 위로받으면서

온전히 자신을 이해해주는 그런 '사만다'에게 빠지는 과정이 너무 와닿았다.


어느 누구도 나를 저렇게 온전히 이해해 주는 상황에서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하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살짝 소름이 돋기도 했다. '인공지능이 나중엔 저 정도 단계까지 올 수도 있겠구나' 라고 말이다.


이 영화가 개봉한 2014년에는 신선한 소재였다고 하지만 지금 내가 본 시점에는 머지않은 미래에는 이러한 것들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내게 감동을 주었던 부분은 '노래'이다.


가사가 있는 노래가 나온 건 극히 드물지만 가사가 없는 ost 같은 경우 상황과 굉장히 잘 어울리면서 상황을 더 돋보이게 해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러한 느낌의 음악이 적재적소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영화의 감동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두 번째로 감동을 주었던 부분은 '영상미'였다.

영화의 색감이나 연기자들의 감정을 잘 살릴 수 있었던 장면들, (특히 추억할 때의 따뜻한 느낌의 색감)

들이 더욱 '테오도르'에게 이입할 수 있도록 해줬다.

남자는 헤어지고 나면 좋은 기억만 남는다고 했는데 추억하는 대부분의 장면이 다 "좋은 기억" 뿐이었다.

(뭔가 그래서 더욱 안타깝기도 했고....)


세 번째는 '목소리'부분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면 다 아는 여자 주인공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인공지능이라기 보다는 진짜 사랑에 빠진 한 여자 같은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톡톡 튀는 느낌으로 연기해서 사람과 인공지능의 사랑이라는 어색한 부분을 좀 더 완화시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는 마무리가 되면서 보여준 장면은  "인간은 아픔을 딛고 다시 살아간다."라는 걸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주저리 주저리)


일단 영화를 보면서 남자 주인공이 '조커'의 그분(호아킨 피닉스)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체격이 달라서가 아니라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서 못 느끼다가 영화 중간에 남자 배우가 누군지 궁금해서 검색해보곤 깜짝 놀람.. (이렇게 배역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다니... 대단하다)


영화가 흘러가는 도중에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캐서린에겐 단지 종이(이혼 서류) 일뿐."

(혼자만 힘들어하고 전 부인은 자신에게 감정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그리고 영화 중반부가 살짝 넘어갔을 때 '테오도르'가 이혼 서류를 건네기 위해 만난 전부인 '캐서린'에게 서류를 넘겨줄 때 멈칫하는 '캐서린'의 모습이 와닿았던 장면인데 내 생각엔 아마 캐서린도 분명 '테오도르'를 잊고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덤덤한 척하는 것일 뿐..


영화에서 '캐서린'이 이혼 서류에 싸인을 망설일 때 '테오도르'가 손을 잡아줬다면, 현재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아직 많이 힘들다고 말했다면 영화의 흐름은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현재의 상황 (사만다와의 연애)에 만족했고 괜찮아진 척하려 했기 때문에

다시 영화는 본래의 흐름(사람과 인공지능의 사랑)으로 돌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마무리될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끝무렵에 보여줬던 장면(호아킨 피닉스가 눈물을 흘릴 때)을 보며 든 생각이 예전에 들었던 말인데

"사랑이란 게 원한다고 잡히는 것도 아니고 싫다고 버둥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여야 된다" 고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테오도르'는 놓아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였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시간이 얼마나 흐르건 아픔을 딛고 일어날 것 같은 그 장면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는 게

꽤나 긍정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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