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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마주하는 자세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 후기

by 첫매듭

※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사진출처: <collateral beauty>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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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작에 윌스미스가 던지는 대사가 있습니다.

'사랑, 시간, 죽음. 이 세 개의 추상은 세상 모두를 이어줘요.'


물론 저기서 던진 대사의 의미는 철학적인 말이 아닌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적절히 광고카피라이터로 만들어 던진 대사이지만 어쩌면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며 가족이건, 친구건, 연인이건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삶에 대한 만족감을 충족하고 또 한정된 '시간'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야 되는지 늘 고민하죠.

그건 아마 인간이라면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있기에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 시간, 죽음'이라는 것에 커다란 가치를 두고 살아가진 않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않고, 삶을 연명하듯이 살아가며, 또 죽음이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받아들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를 받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밑바닥에 도달했을 때, 다신 일어설 수 없다고 느낄 때 더러 그렇게 행동하게 됩니다.


그런 상실감에 대해, 도저히 일어설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일어서야 하는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래는 전반적인 스토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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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승승장구를 하는 하워드(윌스미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그건 초반 찰나의 장면이고, 아이를 잃은 하워드가 어떻게 무너지고 일어서지 않으려는 그를 지켜보며 계속 지켜볼 수만은 없던 친구들의 기막힌(?) 계획(하워드만을 위한 한 편의 연극)을 꾸밉니다.


딸을 잃은 반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하워드로 인해 하워드를 주축으로 돌아가던 회사는 부도의 위기를 겪게 되고 대주주인 하워드의 의결권을 정지시키려는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로 인해 친구들은 이러한 계획을 꾸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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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가 딸을 잃어버린 슬픔에 자신이 평소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랑, 시간, 죽음'에게 돌아오지 않을 원망과 슬픔을 담아 수없이 썼던 편지를 알게 되고 그것을 토대로 친구들이 3명의 연극배우들을 고용하여 각각 '사랑(키이라 나이틀리), 시간(제이콥 라티모어), 죽음(헬렌 미렌)' 캐릭터를 맡아 하워드에게만 보이는 존재로 연극하며 하워드에게 가슴속에서 딸을 놓아줄 수 있도록 답장을 줍니다. (의결권 해지가 주목적이지만)


이러한 연극이 얼마나 위험하고, 또 당사자가 알게 되면 얼마나 상처받게 될지 감히 상상도 못 할 작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전은 시행되고 하워드는 이러한 상황을 처음엔 의심을 하지만 불면증과 엄청난 상실감으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이 힘든 그는 반쯤은 의심하면서도 이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점차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하워드를 위한 계획이 아닌 대주주인 그가 '의결권을 행사할 상태가 아니다'는 핑계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이는 성공하여 하워드를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입증했죠.

그 과정에서 하워드는 친구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또 친구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들은 벼랑 끝에 서있는 그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뒤돌아서는 대신에 그는 친구들을 포용하는 선택을 합니다.


하워드를 밀어내기 위해 시작했던 사건이 관계자(친구들과 연기자 3명)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는 계기가 되고, 조금 더 나아가 삶의 선택의 기로에서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중반에 '자녀를 잃은 자들의 모임'에서 상담사(나오미 해리스)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아픔에 수반하는 아름다움도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Collateral Beauty)

삶을 살아가며 겪었던 이런 일들이 괜찮아지지는 않겠지만(중략) 뭐든 해봐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대사가 주는 의미는


'삶을 살아가는 필연적인 것들은 찾아오고 또 지나가지만,

다시금 찾아오기에 그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삶을 살라고.'


그런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자체의 러닝타임이 짧기에 많은 내용을 담기는 힘들지만, 복선 회수도 잘하고

생각할 여지를 주는 정말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되기에 추후에 시간이 되신다면 감상을 추천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늦은 포스팅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람이 만나면 그들은 서로의 조각을 나눠갖는다. 그러다 네 사랑이 죽으면 네 조각이 그들과 함께 죽는단다. 그래서 네 맘이 아픈 거야 하지만 내 안에 그의 조각은 남아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는 내 눈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다. (어퍼컷tube의 드라마 '1883'-대사 발췌)


인디언 속담을 인용한 대사라고 합니다.


영화를 보며 문득 이 대사가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상실과 이별을 겪은 모든 분들에게 극복하라는 말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일부는 가슴속에 있으니 슬퍼하고만 살지 말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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