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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클랑 Nov 12. 2022

불확실한 인생 속에서 언제나 확실한 것들

간증 아닌 간증문 


나는 참 겁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겁이 많은 사람이 유학을 나오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난 정말 간절했던 것 같다. 

무엇 하나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독일로 왔다. 


그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무언가를 이루고자 마음이었던 건 아니다.

그런 목표 없이 유학을 간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저 공부하길 원했고, 나의 선택이 후회로 남는 선택이 되지 않길 바랬다.


흔히 말하는 '이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요? 나에게 말씀해주세요.' 

라는 기도도 많이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게 답이야'라고 말씀해주시진 않았다. 

도리어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라고 질문을 하실 뿐. 


앞날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았고, 지금도 역시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난 지금 유학을 후회하지 않는다.  

 



현재 독일 울름 근처 하이덴하임이라는 곳에서 졸업의 필수 과정인 프락티쿰(실습)을 하고 있다.

마인츠 주변에서만 9년 정도 있었는데, 갑자기 아무도 모르는 외딴 도시로 잠시 거처를 옮겼다. 

걱정도 있었지만, 졸업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동안 관심이 있었던 공연 기획 부서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기대감이 있었다. 


프락티쿰 때문에 거처를 옮긴 것은 나의 의지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 이곳에 온 지 5주가 지났다.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지금 좋은 환경 때문에 감사하는 거야'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여기까지 이끌어 오신 게 주님이시라는 게 나의 신앙 고백이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이곳에서도

나와 공동 분모를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기 때문이다.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며, 외부인에게 열린 마음을 보여주는 이웃들. 

프랑크푸르트 같은 학교를 나온 동문을 사무실에서 동료로 만나게 된 것. 

2주 차에 열린 국제 펜싱 경기에서 한국이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것.

이웃의 제안으로 참석하게 된 발도르프 학교 첼로 공연에서 마인츠 동문을 만나게 된 것. 


누군가의 눈에는 그냥 우연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우연 이상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동네에서          

그래도 공통분모 하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9년간의 유학생활 속에서 나의 관점이나 내면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기질은 변하지 않지만, 늘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마음은 조금은 잠잠해졌다. 

저 내면 깊은 곳에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굶어 죽게 하시진 않겠지'라는 믿음이 생겼다. 


음악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돈벌이가 잘 안 되는 음악을 한다는 죄책감이 있었던 나는

독일에 있는 시간 동안 그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난 정말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실습을 하면서도 내가 들은 독일어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한 게 맞는지 수십 번 의심하고

독일어로 글을 쓸 때도 내가 읽은 내용을 맞게 이해했는지 자기 의심이 수 없이 했다. 

내가 한 선택이 옳은 선택인지 늘 자신이 없었다.


그랬던 수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지금.

내일도 불확실하고, 모레도 불확실하고,

내년에도 삶은 늘 불확실하겠지만, 확실한 거 몇 가지는 알겠다.  



음악을 관 두기엔 내가 너무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

삶은 늘 막다른 골목길 같아 보여도 어떻게든 솟아날 구멍은 있고, 굴러가게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오늘이라는 기회가 있고, 그 기회는 늘 있다는 것. 












+ 이 글은 2022년 6월 중순경에 쓰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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