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음대 입시 이야기
예중, 예고, 예대 또는 음대로 이어지는 흔한 엘리트 코스를 받지 않은 나는 경쟁에 대해 굉장히 무딘 편이다. (승부욕은 좀 있는 것 같다.) 연주를 하고, 평가를 하고, 점수를 받고 등수가 매겨지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처음 독일에 왔을 때 느낀 그 낯선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내가 처음 머물렀던 도시는 한국 입시생들이 매우 많았던 도시로, 그 도시에 있는 음대를 지원하면 일부 학교 건물에 한해서 공식적으로 연습이 가능한 도시였다. 그래서 학교와 집을 오가며 다른 입시생들도 볼 수 있었다.
타지에서 만나는 한국인, 경쟁자이지만,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말을 붙이고 친해졌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나보다 한 살 많은 오빠와 한 살 어린 동생을 알게 되어 나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입시를 준비했었다.
한 살 많은 오빠는 학사과정부터 시작하려고 독일에 왔고, 그래서 어찌 보면 견제 의식이 덜 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스스로가 잘하고 있는지 불안할 땐 연습실에서 서로의 연주를 들어주며 피드백해주기도 했다. 연습실에 박혀서 연습하는 동안 나의 연주를 객관적으로 스스로 판단하기엔 어렵기 때문에 그런 과정은 매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한 살 어린 동생은 하필 준비하는 곡 하나가 같기도 했고, 같은 과정을 준비하는 탓에 서로 예민한 부분이 있어서 서로 피드백해주는 일은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연습뿐만 아니라 원서를 쓰고 학교에 지원하는 과정에서도 정보들을 공유했다. 학교마다 지원기간과 방법이 달라서 애먹을 수 있었지만, 함께 궁금한 것들을 서로 물어보면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특별히 독일에선 교수님께 연락드려 한 번 찾아뵙고 앞에서 연주하고 피드백받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과정은 '모' 아니면 '도'라서 신중해야 하지만, 잘 어필하면 유리한 부분들도 있기 때문에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을 공유하며 입시라는 여정을 같이 헤쳐나갔다.
음악이란 것은 지식과는 다르게 굉장히 직관과 감각이 필요한 분야이다. 테크닉을 논하기 이전에 자신만의 무언가를 음악을 통해 보여줄 수 있고, 설득력을 갖는다면, 합격이 가능하다. 그래서 한 번의 미스터치가 한국에 비해 비교적 결과에 영향을 덜 미친다.
이런 점들을 알고 있어서 난 입시를 치르는 동안 오히려 경쟁의식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입시라는 상황이 마음 편하지 않지만, 오롯이 나의 연주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면, '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간절함이 있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독일의 유서 깊은 학교를 가볼 수 있으며, 교수님들 앞에서 연주해볼 수 있을까’ 하는 설레임도 조금 있었다.
자리는 제한적이고, 그 자리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은 많기에 경쟁은 필연적이지만, '너'도 '나'도 자기가 가진 것을 다 보여줄 수 있다면, '어디든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나와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은 같은 학교지만, 다른 교수님과 컨텍했고, 둘 다 무사히 합격하여 2년 동안 유익한 유학생활을 했다. 낯선 외국에서 함께 입시부터 유학생활까지, 우리가 함께 나눈 우정은 나의 유학생활의 가장 큰 선물이자, 열매이다.
학교 안에서 다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도 느꼈던 것들이 있다. 학교 다닐 때는 상대평가가 아니기 때문에 내 점수만 생각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졸업하고 그다음 과정을 위한 입시라는 과정이 다시 찾아오면,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 된다. 경쟁자라는 것을 의식하기 이전에 동료라고 생각한다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서라도 조심하는 면들이 생길 텐데… 내가 얻을 무언가만 생각하는 바람에 관계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못해 버리는 게 안타까울 때가 있었다. 같은 분야여도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많아진다면, 좋지 않을까. 이런 소망은 너무 허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