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람, 하지만 큰 존재
학교에서 정기적인 연주를 하거나 연주들을 꾸준히 참석하다 보면 관객분들 중 꼭 눈에 띄는 분이 몇몇 있었다.
'어? 또 오셨네?', '어? 저번에도 오셨었는데!'
자주 오시는 분들은 말도 나눠보지 않았는데도 괜히 내적인 친밀감이 생긴다.
그러다가 말을 트기도 해서 어떤 분은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분들은 그냥 클래식에 관심이 많은 지역 주민들.
참 부러운 점 중 하나였다.
지역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성장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는 것.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내 연주를 계속 보러 온다는 건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했던 학내 위클리를 떠올리며, '지역 주민들에게 오픈되면 어떨까' 상상해봤었다. 음악으로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 입장에선 내적 동기부여가 생긴다. (사실 유럽에선 관객들이 연주가 끝나고 나가면서 후원금을 내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물론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지만, 그래도 그 주변이 충분히 음악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음악이 과연 쓸모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작년 7월 독일에선 100년 사이 유례가 없는 수준으로 폭우가 내렸었다. 이로 인해 주요 강 중에 하나인 라인강이 범람하면서 1300여 명이 실종되고 엄청난 이재민이 생겼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11월에 작은 바이올린 클래스 학생들 연주회에 반주자로 참여하게 되었었다. 바이올린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꼬꼬마 학생부터 곧 잘 연주하는 학생까지 다양했는데, 아이들도 무대를 경험하고, 관객들이 걷은 후원금으로 이재민도 돕자는 취지에서 열렸다.
그 자리에서 학생들은 무대 경험은 물론이고, 자신의 연주를 통해 작게나마 사회에 작은 도움을 보태는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다.
음악과 연주의 의미를 생각하다 보면, 관객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는 것 같다. 관객 입장에서는 ‘나는 수많은 관객 중에 하나’ 일뿐이겠지만, 작은 하나, 하나가 모여서 작지 않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하나의 관객은 결코 작지 않다, 하나의 작은 연주도 결코 작지 않다. 작은 연주라도 의미 있는 자리가 많아진다면, 세상은 더 따듯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