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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 Klarblau Apr 03. 2024

선물에 대하여

그것으로 인해 서로가 풍요로워지는 그런 선물

나로부터 선물을 받는 모든 사람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주었는지 그도 그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반대로,

내게 선물을 주는 이들은 모두,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처럼 자신의 마음을 담뿍 담아 줄까?


나는 선물을 구색맞춰 주지 않는다... 라고 감히 말하고자 한다.

누구에게 무언가를 줄 때엔 나 나름 길게 혹은 짧은 순간에도 깊은 고민을 한다. 그에게 맞는 것이 무엇일까를 초집중하여 내가 아는 정보를 총동원하여 종합정리한다. 어쩔 수 없이 아무거나라도 주어야 하는 경우 외에는 누구에게 무언가 줄 때에는 내가 표현을 다 못해서 그렇지 그 사람에게 내가 이걸 얼마나 신경써서 골랐고 꾸몄는지를 알아주기를, 구체적으로 어디를 신경썼는지를 모르더라도 그 무게를 알기를 간절히 바라며 준다. 상대에게 이것이 정말 필요한 것이기를 바라며 실질적으로 사용하면 더욱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심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를 바란다.


그와 반대로 선물을 구색맞춰 받는 경우가 있다.

'생일이니까', '방문하는데 빈손으로 못오니까' 등등...

보편적 선물들을 받는 경우나 혹은 정말 주는사람 위주의 생각으로 선물하고 포장한 것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참 난감한 경우가 많다. 이걸 어디에 쓰지, 어떻게 보관하지, 누구에게 줘야하나....

물건이 귀했던 시절에는 모래알 한 알이라도 더 받는 것이 좋은 때였다면, 요즈음은 물건이 많아서 처리곤란한 때 아닌가. 줄 마음이 딱히 없으면 안 줘도 되는데. 물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히 격식을 차리는 물질이 아니라, 챙겨주고자 하는 마음 말이다.


선물의 형식이 달라졌어야 한 지는 오래 되었는데...



누구에게 선물을 줄 때, 선물 내용과 함께 자연스레 포장도 생각한다. 무언가를 조합하는 것은 항상 설레는 일이다. 그 사람과 이 물건, 포장의 조합은 또한 의미와 모양과 색깔까지 잘 섞어야 하고 마치 게임같이도 하다. 어떠한 이유로든 선물을 주어야 하는 상황은 내게 내가 할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 덕업일치라는 단어와도 연결된다.


그래서 나도 포장을 겹겹겹이 해서 주고 싶다!


단지 그 포장재가 그에게 필요없는 것이 될까봐 미안하고 그에개도 미안하고 포장재에게도 지구에게도 미안해서 그렇게 못하는 것이다.

상황이 된다면 포장을 풀러 그 포장재를 도로 받아오고 싶다!


당연히 알맹이도 그에게 쓸모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물건이 귀했던 시절, 쓸모없는 물건을 주어도 귀하게 받았고, 포장재도 간직하거나 다시 쓰고 그랬던 것 같다. 빨강머리앤에 보면 앤이 옷 선물을 받고 그 박스와 포장재도 고이간직하고 있었다.



피천득이 선물포장을 바리바리바리 했다는 문장에서, 오늘날의 상황과 연결해보게 되었다.


요즘 용어로 '언박싱'

당연히 숨겨져있는 것을 풀러보는 그 기대와 흥분은 행복의 시간이어야 하는데


피천득  수필집, 인연 중 <선물>

요즈음은 포장재를 다 버리므로 포장쓰레기를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언박싱 문화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래저래 나는 언젠가부터 포장 없이 선물을 주거나 계속 쓸 수 있는 포장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 몇 겹씩 그렇게 포장에도 마음을 담아 해 주고 싶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선물을 받아서 매우 기쁘고 한 겹 한 겹 풀면서 설레는 시간들을 갖고 싶다.

...하지만 그걸 풀르면서 아마 계속 나오는 포장재에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선물을 받는다는것도 벌써 무서울때도 많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매우 내가 쓸만한 것을 주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내게 어찌보면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마음을 써서 선물을 마련하는 많은 경우에, 받는 사람이 이걸 보관하는 것을 고민할까봐 차라리 안 하고 말게 될 때도 많다.

기꺼이 쓸만한 것을 선물하고 싶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내가 얼마나 신경써서 주는것인지를 알면 못버릴텐데, 안타깝게도 매번 그걸 설명하거나 표현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 그러면 그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면 그 물건 자체는 그에게 별 의미가 없어진다면 그냥 버릴테니 차라리 선물 안하는 게 나을 것 이라는 그런 생각.


이런 나를 알고, 조금이라도 내가 좋아할만한것을 고민하여 선물해주는 이들을 보면 매우 고맙다. 그런 경우는 내 필요물건을 딱 맞추지는 못하더라도 심적으로 풍성한 선물이다.


포장도 다 쓸만한것이고 알맹이도 쓸만한 것을 내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건을 통해 서로의 마음이 전달되고 우리의 삶이 순환한다.

그 마음이 알맹이라면 물건은 우리의 순환을 위한 윤활유다.

물건이 많으면 서로의 마음이 더욱 잘 전달되고 우리의 삶이 더욱 많이 순환하고 윤택해져야 하는데, 너무 많아서 우리의 마음, 알맹이가 물건에 파묻혀 버렸다...



그런데

예전에는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마음이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좀 안 그런 것 같다.


요즈음은 무엇으로 서로가 풍요로워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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