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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 Klarblau Jun 07. 2024

도심의 식물, 동물 그리고 도시인간

야생식물, 야생동물 그리고 (...   ) 인간

6/ 4

몇 주만에 어느 길을 가다가, 예전에는 싹둑 잘렸던 가지들에서 이렇게 푸르른 이파리를 내고 있는 나무들을 보았어요.

2024년 6월 4일
열악한 상태에서도 자기 발현하려는
절실함과 그 에너지

를 느꼈는데요,

몇 년 전부터 가지 잘린 나무들을 제 눈으로도 너무 많이 봐 왔기 때문이죠...


아래 사진은 작년 4월경에 찍어놓은 사진.

그때 이 모습을 보고 뭔가

마음이 휑~ 하더라고요.

저 뒤의 나무는 길에 그늘도 만들고 도심에 푸른빛을 더해주는데

이 나무는 뎅강 잘려서 자기 발현도 못하고 이게 뭐람~ 

2023년 4월의 어느 날

처음엔

저 나무들이 아픈가, 병충해 때문에 저렇게 시에서 관리하는 건가 했다가


도시 곳곳에서 그렇게 가지쳐지는 나무들 소식을 알게 되며 

나뭇잎의 그 푸르름을 통해 도시에서 그나마 사람들이 얼마나 숨통을 트고 사는데 그 나뭇잎들을 없애다니 속상했고, 가로수 시민연대를 응원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서양 여러 나라들의 옛날 정원들은 그렇게 모양을 내잖아요? 

베르사유궁전의 정원

정원사라는 직업도 있었을 정도로 식물을 마구 베고 꺾고 자르는 것이 당연한 문화!


그리고 또 생각해 보니 제가 20대 때에 유럽인가 여행했을 때, 어느 나라의 어느 길의 가로수는 정육면체나 공 형태로 가지치기해 놓은 것을 보고 신기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엔 그저 외국의 어느 다양한 관점 그런 생각으로 딱히 비판적 사고 없이 수용했었는데. 

심지어는 정원을 조형화한 것에 대한 아름다움, 그 정신에 대한 예찬을 공부(?) 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한국에서 그런 비슷한 일 (어떠한 시각으로 보면 완전 다른 일일수도 있지만)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제 마음이 불편한 이유가 뭘까 궁금해졌어요.


서양에서는 단순히(?) 인간의 미적욕구로 저렇게 나무를 자르고 가꾸게 된 것이라면,

한국에서는 그래도 불편함이라던지, 이유가 타당하건 아니건 간에 어떠한 필요로 인해 나무를 자르게 된 것이라면,

오히려 한국의 이런 가지치기가 수긍이 일리가 있는 행위일 텐데 하는 생각요.


단순히 익숙하지 않음에서 생기는 우려였을까요??


이런 걸 보면 서양 그 정원수에 비하면 양호한데!

이제는 뭔가 좀 익숙해졌기도 하고,

그런 서양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한국 요즘의 가로수들이 잘려지는 것이 

그저 인간이 인간을 길들이듯, 반려동물 길들이듯 식물도 같이 살려고 길들이는 어떠한 과정으로 인식하게 되더라고요.

...

저도 이 인간 사회에 이렇게 길들여져 가고 있는 걸까요?



6/5  환경의 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제환경영화제 개막작 상영이 있어서 

이대 캠퍼스를 갔어요.

대학교 캠퍼스에 들어가 보는 게 몇 년 만이냐~라는 설렘과 함께!


대강당 가는 길에

잘 다듬어진 나무들이 보이더라고요. 

어머어머 길거리 가로수 저리 가라야

이와 대비되게,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들도 있었고요.


어제 했던 생각과 함께

이걸 다듬는 건 누가 했을까라고 생각의 가지가 뻗어가면서


인간의 시간과 노동, 지구자원의 소모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효율성


이 식물들이 열심히 광합성하여 만든 이들의 노고의 결과물을 

굳이 인간의 시간과 노동을 들여 그리고 도구를 쓰기 위한 여러 지구에너지 소모를 하며 

굳이굳이 그렇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요.

... 우리 인간의 삶에 피해가 없다면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는 생각요.

 

나아가 

저걸 관리하는 비용은 모두 시민세금인데, 그 세금이 좀 더 급하고 효율적이고 절실하고 필요한 곳에 더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인간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조경을 할까?

조경은 인간이 그 안에 있기에 편하고 즐겁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그럼 지나갈 때에 다치지 않을 정도면 되는 것 아닐까요??





https://sieff.kr/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환경영화제!


영화 내용에서도 이렇게 식물에 관한 내용이 많이 와닿았는데요,

영화제의 개막작 - 와일딩 (Wilding)

https://blog.naver.com/gihurji/223470937271

많은 걸 느꼈어서 대략 후기도 블로그에 남겼어요!


이 영화에서 참나무 이야기와 함께 

나무 밑의 뿌리와 그들이 땅 속에서의 연결고리, 온갖 생물들과 다른 뿌리들과의 생태적 그물망들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었어요. 

아아 영화를 보시면 그 감동이 츄와악~ 밀려올 텐데 이 짧은 말로 그 내용을 어떻게 다 전달할 수 있을지!


이를 보고

인간이 집에서 식물을 기르는 행위에 대해 연관이 지어지더라고요.

야생식물 vs. 반려식물

화분에 키우는 식물은 그렇게 거대한 생태관계망을 지을 수 없잖아요. 


저는 신기하게도 화분을 갖거나 텃밭 가꾸는 것에 매력을 안 느끼는데, 그 이유가 뭘까 몇 년 전부터 곰곰이 생각해 오곤 했어요.

제가 식물을 싫어하는 게 절대 아니거든요~

밖에 나가면 자라는 풀과 나무, 꽃을 보면 그렇게 좋아하고, 그것들을 따다 집에 갖고 오고 싶고 그래요. 그런데 

그것들을 집에 심어 키우고 싶진 않더라고요.

 

영화의 이 식물 땅 생태계 내용을 보니,

제가 야생식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의 필요로 식물을 작은 화분에 심으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그 거대한 지구 안에서의 역동적이고 신비로운 능력발휘를 못하고,

그래서 그들은 그 작은 화분 안에 자신들의 뿌리를 뭉쳐뭉쳐 키우고, 제한된 미생물과 양분으로 자라나니 

그러니 제가 거기서 이 식물들이 할 수 있는 역량을 다 발휘 못해서 답답해하는 걸 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요.

집에서 키우면 

그 거대한 자연이 자연스럽게 엄청나게 다 해 주는 것을 인간이 챙겨주는 물과 양분으로 겨우 살아가야 하니 얼마나 답답할까요? 

산에 들에 자라나는 풀, 꽃을 보면 가슴 뛰고 웃음도 나고 오래도록 쳐다보고 계속 보며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 그런 게 집 화분에서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거든요.



이 영화에서 또한 와닿은 내용 중 하나는 

야생동물의 그 다양한 표정들에 대한 얘기였어요.

야생 동물에게서 있었던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며 집동물 '가축은 그저 껍데기만 동물'이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정확한 문구가 기억이 안 남...)

야생동물 vs. 반려동물

그걸 보니 또한 반려동물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저에 대해 왜 그럴까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어요.

제가... 동물을 싫어하는 게 절대 아니거든요?!

식물과 마찬가지로, 밖에 나가면 볼 수 있는 동물들은 얼마나 좋은지! 

야생동물은 비록 가까이에서 오래 볼 수 없지만, 

인생 몇 번은 눈앞에서 본 적이 있는데요, 그들에게서 그 짧은 순간동안 얼마나 설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 넘치는 에너지를 느꼈는지! 매일 그런 에너지를 받으면 정말 모든 병이 다 나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런 동물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물론 매일 같이 있으면... 그 에너지 감당 못해서 힘들고 지쳐 안 사랑스럽겠죠. 인간 어른들이 아기 키우면서 힘들어 지치듯이)  

그치만 인간이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에서는 그런 에너지와 사랑을 느끼지 못하더라고요. 왜일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길들여지면서 없어지는 어떤 그 야생의 힘일 것 같아요. 인간도 교육으로 사회에 순응하도록 길러지면서 없어지는 어떠한 것이 있듯이 말예요. 

이들이 원래 야생에서 살면 어떻게든 자기 좋을대로 살 애들이, 인간의 필요로 인해 길들여지고 자기 능력을 발휘 안 하게 되잖아요.


... 그렇게 집에서 기르는 동물에서 저는 힘아리 없는 존재를 느끼거든요.


야생인간 vs. 사회화된 인간

인간.

도시의 인간들은 그렇게 어떤 시스템에 의해 길러지고, 

인간에게 원래 주어진 엄청난 능력들을 (인간 스스로) 가두고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렇게 다들 힘들게 사는 것 아닌가 싶어요.


못한다, 안된다는 말을 어려서부터 수억만번 들으며 자신을 세뇌시켜 온 우리 인간들,

그래서 우리 이렇게 몸도 마음도 아픈 것 아닐까요.


한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살지 말도록

한 시스템의 일원으로 부품으로 살도록 길러진 우리들...

우리는 더 사회화되고 자연을 계속 개발하는 것이 좋을지,

조금이라도 야생의 인간의 본성을 찾아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좋을지.


아파한다면 아프지 않으려면

아픈 원인을 찾아 그것을 안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근데 그게 

안 하는 게 힘든가 봐요 인간은 바보같이

많이 먹어서 아픈 거면 안 먹으면 되는데 계속 먹으면서 아파하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우선 저는 

영화에서 본 그 야생마의 즐거운 표정이 너무 소중하고

지금 생각해도 그 표정을 떠올리면 자꾸 웃음이 나오고 행복해요. 

인간도 그럴 권리가 있다는 쪽에 한 표 던집니다.  

지구에 태어난 존재로서 그런 행복을 누리도록 태어난 것이라는 거죠. 


이만큼 우리가 사회화되었으면 이제

정도에선 그 사회화 진행을 멈춰도 충분하고, 멈추지 못할 거면 속도를 줄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6/6 현충일

화분에 심은 상추를 좀 땄는데, 

만일 이들이

내가 화분에 심은 것이 아니라 

산에 자란 것을 딴 것이라면 좀 달랐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이들을 물에 막 흔들며 괴롭혀 씻고, 손으로 막 찢어서 오일과 소금에 숨을 죽이고 여러 가지에 막 섞어 짓이겨

비빔국수라는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음...

인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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