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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에게 신입 요양보호사는 가장 만만하다.

by 초보 글쟁이

어르신들에게 신입 요양보호사는

먹잇감, 내 간식 배달부, 심부름꾼, 화투 상대 등등

꼬봉(?)이다.


연차가 쌓인 선생님들은 절대 들어주지 않는 명령(?)을

신입들은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뒷감당은 오로지 신입의 몫이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것이다.

것두 배가 부르게, 귀에서 피가 나도록....


우리 층에 이제 한 달 반 된 선생님이 계시는데

보고 있노라면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 선생님은 일을 1대 1로 배우고 있으니

나보다는 괜찮을지도...

내가 신입일 때는~ 자그마치 열여덟 명에게 배웠다.

혼나는 것도 열여덟 명에게 혼나는 것이다.

(혼내는 일 없이 인자한 선생님도 계시긴 하지만....)

어떤 일을 시켜서 하고 있으면 다른 선생님이 불러서

다른 일을 시킨다. 시키니까 지금 해야 되는 줄 알고

하고 있으면 먼저 일 시킨 선생님한테 혼난다.


(잠깐 삼천포로 빠진다면 난 이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을 여기저기서

불러 일을 시키면 어쩌란 말인가?

다른 선생님께 그게 힘들다 했더니 그럴 땐

'지금 저 선생님께서 시키신 일 하고 있는데요'하란다.

일 시킨 사람이 나중에 시킨 사람보다 선임이라면

아무 말 안 할 거라고...

그런데 그럴 땐 보통 '선생님 지금 하시는 거 있으세요?

나 도와줄 수 있어요?' 이러는 게 먼저 아닌가 싶다.)


아무튼 신입이 혼날 때는

어떤 일을 먼저 해야 되는지 몰라서 그렇고

선생님들이 시키는 건 다 해야 되는 줄 알아서이고

어떤 일이 중요한지 몰라서 그렇다.

그중에서도 어르신의 부탁은 다 들어드려야 되는 줄 아는 게

문제이다.


예를 들면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 설사나 구토를 하셨을 경우 정해진 식사 외에 간식은

금물이다. 몇 번을 설명해 드려도 우리에겐 씨알도 안 먹히니

낯선 얼굴이 보이면 바로 불러 말씀하신다.

"내가 오늘 밥을 조금밖에 못 먹었어 배 고픈데 내 간식 좀

갖다 줘"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신입 선생님은 우리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다들 바쁜 것 같으니 물어보기도 미안하고,

어차피 어르신 개인 간식이니 갖다 드려도 될 것 같아서

갖다 드리고, 걸리면 짧게는 욕 1분짜리지만 혹여 어르신이

다시 구토와 설사를 하면 최소 5분짜리이고, 만일 계속

구토와 설사가 이어진다면 최소 3일치 욕은 각오해야 된다.

어르신들 같은 경우 구토는 1회로 그치지만,

설사는 3일 내내 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화기관이 약해져서 일 것이다.

3일 동안 거의 한 시간 단위로 기저귀 케어를 하는

요양보호사는 누구든 욕받이를 찾게 되니까 말이다.



둘, 가끔씩 외출이나 면회를 하고 온 어르신이 같은 방에

계신 어르신께 갖고 오신 음식을 드리고 싶을 때

신입 선생님한테 부탁한다.

"슨상님, 이거 슨상님 쫌 드시고 이거는 쪼오기 할매한테

갖다 주소 딴 슨생한테도 말하지 말고, 슨상님이 이뻐서

슨상님한테만 주는것인께"

목소리도 낮춰가며, 뇌물까지 먹이면서 마치 '우리는

한 배를 탄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구슬린다.

음식 나눠먹는 게 어떻겠냐 싶어서 갖다 드리면

첫 번째와 같은 이유로 혼나지만,

외부음식은 특히 철저하게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조심해야 하는 건 신입 선생님들은 아직

어르신들의 식사 종류를 모르기 때문에

만약에 연하곤란으로 미음을 드시고 계신 어르신에게

다른 음식을 드린다면 정말 큰일이다.


세 번째는 선생님들도 간식이 나오는데

혹 롤케이크 같은 어르신들도 드실 수 있는 간식이나

맛있는 두유 같은 것이 나오면 내가 좋아하는 어르신께

드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나 역시도 그랬다.

이건 신입이 아니더라도 어느 선생님이든 다 그런 생각을

한다.

한 번은 그 어르신이 너무 안 됐어서

선임선생님께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절대 절대 안 돼!!!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카스텔라였는데

그때 어르신이 먹고 싶다고 해서 진짜 조금 아주 작게 떼서

드렸는데 기도 흡입이 돼서 어르신 기침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병원 가서 폐사진까지 찍었었어"

"그런 일이 있었어요? 무섭네요"

"그때 어르신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

'저년이 나 죽이려고 했다'였거든 그 뒤로 어떤 어르신이든

본인 간식이나 식사 외엔 절대 안 드려~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 더 큰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우리가 매정해서

안 드리는 게 아니야"


그 어르신이 아직도 계시는데 다른 어르신이 개인간식을

드실 때 나도 달라고 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못 들은 척한다. 그러면 또 말하지 않지만

만일 설명한답시고 관심을 보이면

'이거 잘 걸렸네'하시며 뭔가가 나올 때까지 소리를 지르신다.

결국엔 두유라도 드려야 하는데

다 드실 때까지 최소 10분 이상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럴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

그래서 신입 선생님이나 실습생들이 희생양이 되고 만다.

그들만이 먹을 걸 달라는 어르신에게 관심을 보이니 말이다.


넷, 이것은 다른 선생님들의 화를 불러올 수 있다.

바로 어르신의 화투 상대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심심한 어르신은 우리에게

화투상대를 해달라 하신다.

그런데 어르신과 같이 화투를 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연차가 된 선생님이라야 한다.

어르신을 상대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실력이 검증된

타짜...... 여야 되는 건 아니고,

앞서 말했듯이 그럴 시간이 없다.

연차가 된 선생님은 우리가 일을 대신해 주면서 배려해 준다.

그런데 신입이 본인 일을 안 하고 화투를 치고 있다?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 일을 다른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오신 선생님이 어르신과 화투를 치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세상에~ 1년 차 된 나도 아직 해보지 못하고

가끔씩 구경만 하는 정도였는데'라고 생각했다.

교육하는 선생님 외엔 아무 말도 하지 말래서

그 어느 선생님 하나 말하지 않았지만

그 사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아마 3개월 교육이 끝난 후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그건 최소 1년짜리 욕이다.

아마 화투 치는 선생님마다 말할 테니 말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아무튼 어르신들에게 신입요양보호사는 가장 만만한

상대이다.

실습생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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