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의 하루는 크게 다르지 않다.
마흔 명의 어르신들과 열아홉 명의 요양보호사들.
우리는 매일 정해진 일정에 맞춰 움직인다.
목욕 날과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 조금 다를 뿐,
대부분의 하루는 비슷하게 흘러간다.
가끔, 아주 가끔 입퇴소가 있을 때를 제외하면
늘 보던 얼굴들이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들을
우리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클라이언트’라기보다
이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어르신들에게도 우리는
가족보다 더 자주 마주하는 사람들이라는 건 분명하다.
어느 어르신은 하루라도 얼굴을 보이지 않으면
어김없이 “어제 쉬었어?” 하고 물어보신다.
출근은 했지만 담당 방이 아니면
하루 종일 뵙지 못할 때도 있는데,
보이지 않으면 쉬는 날이라 생각하시는 듯하다.
또 어떤 어르신은
출근하자마자 방에 들어가 하루를 준비하고 있으면
“오늘 이 방 담당이야?” 하고 물으신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지신다.
그리고 어떤 어르신은 정말 귀찮을 정도로 우리를 계속
부르신다.
와상이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보니 요구사항도
많으시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자주 부르실까 싶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필요라기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더 우리를 부르시는 게
아닐까 싶었다.
자주 말벗이 되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쁜 날에는 그 부르심이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행여 시간이 되어 어르신과 대화를 나눈다면 다른 선생님의
불편함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어르신들과의 긴 대화조차 조심스러워진다.
6번 방 윤○○님은 우리 요양원에서 비교적 젊은 편이다.
그래서 ‘어르신’이 아닌 ‘님’이라고 부른다.
나이 차이가 크지 않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언니처럼,
또 어느 순간에는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젊은 만큼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대로 먹을 수도, 할 수도 없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우리에게 짜증을 내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한다.
할 수 없는 것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답답함을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흔 명의 어르신들과 함께한 1년 6개월.
그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웃는 날도 많았다.
어르신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를 찾고,
우리는 그 마음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함께 보내다 보니
이곳은 어느새 일이 아닌 관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때로는 피곤한 마음으로 출근하는 날도 있지만
방에 들어서 인사를 건네는 순간,
침대에서 무료하게 누워 계시던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으며 팔을 흔들어 반겨주실 때면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채워주는 또 다른 가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