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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지금 눈을 감으면 그때 눈을 감은 나랑

명상과 시간 여행

by 김경리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책장을 사이에 두고 과거의 자신과 만난 것처럼, 호흡을 사이에 두고 시간을 굽힐 수 있다면. 참 이상하지만 아주 헛된 일은 아닐 것 같다.

고양이 기지개 변형 자세 자화상

저녁 수업 전에 명상을 하는 영상을 찍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 늦은 시각이고 다음날 또 일찍부터 수업이 있기에 마음의 여유가 가장 적은 날이라 나중에 집에서 하는 대신 밖에서 처음 해본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방석이 없을 때에는 파드마(연꽃 자세, 결가부좌)로 앉는 것이 허리를 바르게 세우는데 도움이 되어서 척추 정렬의 무너짐 없이 더 안정적으로 앉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한 시간을 앉아있는다면 다리가 저릴 수도 있겠지만 수업 전 잠깐 틈을 내어하는 거라 그건 상관없다.

좀더 어색한 다리가 위로 올라가도록 파드마로 앉아서 양손을 무릎 위에 얹고 눈을 감았다. 곧바로 이 자세의 장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견고하게 짜인 다리 모양 덕분에 허리가 기둥처럼 쫙 펴졌으며 머리와 목, 어깨가 편안했다. 안정된 하체의 기반과 상체의 안락함이 어우러져서 몸이 점차 그 존재를 지웠다. 음악 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 소음을 차단하는 이어폰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처럼, 밤에 착륙하려는 비행기를 위해 활주로 양 옆에 빛나는 유도등처럼.

몸이 잠시 그 존재를 지워 내가 지금 들어야, 보아야 할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호흡에 더 잘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제 자기 전에 집에서 명상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다. 기회가 되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거의 십 년 전에 혼자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근처 어딘가 맨바닥에서 연꽃 자세로 명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거친 바닥으로부터 맨발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앉았는데 꽤나 효과적이었다. 지금 눈을 감으면 그때 거기서 눈을 감은 나랑 만나질 것만 같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책장을 사이에 두고 과거의 자신과 만난 것처럼, 호흡을 사이에 두고 시간을 굽힐 수 있다면. 참 이상하지만 아주 헛된 일은 아닐 것 같다.


**9분 명상

#명상25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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