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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4. 2023

집, 미라클 모닝

아침에 나는 보통 늦게 일어나곤 했다. 여기서 늦게란 다른 가족들이 다 일어나고 나서다. 물론 학기 도중엔 일찍 일어나 아이들의 식사를 챙겨주고 도시락을 싸준다. 그래도 아침형 인간인 남편이나 딸이 먼저 일어났다. 애들 방학때는 더욱더 늘어져서 느지막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그 잠은 어찌나 달콤하던지.

 

이 모든게 바뀐 것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다. 지금까지 뉴질랜드에서 얻었던 집들과 달리 아침에 안방으로 무지막지한 빛이 창밖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온다. 블라인드로 가려놓아도 옆 틈새로 파고들어오는 빛에 나는 저절로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애써도 안되던 미라클 모닝이 바로 실현됐다. 집이 사람을 이렇게 바꿀 수 있는지 몰랐다.

 

빛이 너무 강해서 처음 이사왔을땐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아프고 건조했다.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팠다. 하필 여름이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강한 햇빛에 눈이 부셨다. 절대 적응될 것 같지 않았지만 이제 나름 요령이 생기고 눈이 적응을 해서 견딜만하다. 

 

일찍 일어나게 된 데에는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 시끄럽다. 집 앞에 작은 도로가 있는데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고 차들이 많이 다닌다. 새소리에 깨는 일은 줄었다. 새들은 한적한 곳을 좋아하나보다.

 

아무튼 너무 밝고 시끄러워서 일찍 깨게 된다. 예전에 새벽이라고 불렀던 시간에 눈을 뜨면 남편이 옆에서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좀 더 잠을 청한다. 남편의 알람이 울리면 그가 뒤척이는 틈에 일어나 나온다.

 

불 꺼진 1층은 나에게는 약간 공포다. 지금은 귀뚜라미 등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곤충들이 집에 들어올 수 있는 계절.. 아무도 없는 어둑어둑한 공간에서 무언가를 처음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가능하면 이 모든 소요들이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고 가라앉은 후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저 습관이 나를 그 미지의 상태에 발 딛게 한다. 계단을 다 내려오고 대충 둘러봤을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으면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ㅡ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연다. 

 

예전과 다른 점은 내가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것을 약간의 특권으로 여기게 된 점과, 다른 가족을 배려하여 그들이 내려오기 전에 먼저 일어나 집을 준비시켜놓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 점이다. 블라인드를 걷어 빛을 들이고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들인다. 간단히 커피와 먹을 것을 준비해 놓는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금이나마 내가 먼저 일찍 일어나는 것에 대해 약간의 자부심과 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그동안 남보다 덜 가졌던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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