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쿨렐레
도서관 앱에서 우쿨렐레 입문서를 발견. 거실 한 켠에 방치되어있던 우쿨렐레를 가져와 튜닝을 했다. 가장 쉬운 C코드로 strumming 하는 법이 나온다. 스트러밍이라면.. 혹시 그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로 시작하는 노래에 나온 그 strumming? 마음이 설렌다. 스트러밍을 오른손 검지로 하라는 것 같다. 불쌍한 손가락은 잘해보려하지만 자꾸 줄에 걸려서 한번에 훓어내리지 못한다. 이건 스트러밍이라 할 수도 없다. 소리도 뭉툭한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첫 발은 떼었으니 이쯤에서 만족하고 내일 다시 연습하기로.
3~4년 전 충동적으로 우쿨렐레를 들였다. 그때 나는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꿈꾸고 있었는데 문득 피아노를 갖고 다닐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어디든 갖고 다닐 수 있는 악기를 하나 장만하자고 생각했고 우쿨렐레가 낙점되었다.
비행기에 오를때도 휴대하고, 숙소에서 간단히 짐을 풀고 난 뒤 이국의 침대위에서 우쿨렐레를 뚱땅거리며 즉석에서 만든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런 시나리오였다.
이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러 나라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노마드의 꿈은 서서히 빛을 잃어갔지만..
근처 악기점에서 마음 가는대로 고른 우쿨렐레는 꽤 비쌌다. 그래도 평생을 함께할지 모르는데 아무거나 싼걸로 고르긴 싫었다. 그리고 집에 데려와 고이 모셔두게 된 것이다. 가끔 꺼내어 줄을 튕겨보면 소리가 정말 예뻤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쳐본 적이 없다.
나에게 우쿨렐레란 기타와 비슷하지만 그것보단 핸들하기 쉽고 좀 더 밝은 느낌의 소리를 내주는 긍정성의 아이콘 같은 것이었다. 하와이안 연주자가 몸집에 비해 작은 그 악기를 들고 꿈결같은 노래를 부르는 모습,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이란 영화에서 주인공이 피아노를 때려치우고 작은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행복한 삶을 찾아가는 그런 장면들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타는 지판을 제대로 누르기엔 내 손가락이 너무 짧다는 이유로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피아노 소리를 기타 소리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과 그 반대의 사람. 이러한 세계관에 의해 나는 피아노를 선택함과 동시에 기타와는 대립각을 세워야하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우쿨렐레는 이 모든 판단에서 비켜가 있다. 줄도 네 개 뿐이고 크기도 작다. 소리도 영롱한 것이 피아노와의 유사점이 있다. 애수에 찰 수는 있어도 결코 희망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는 듯한 밝은 음색과 아무래도 작은 악기라 표현의 한계가 있는 점까지 그 단순성이 맘에 든다.
다른 걸 떠나서 난 지금 태평양의 섬 뉴질랜드에 있지 않은가, 안그래도 동네에 하와이안 풍의 음악이 심심찮게 울려퍼지는 마당에 내가 살짝 우쿨렐레 소릴 얹는다고 해도 그리 해될 것은 없어보인다.
겨우 C 코드 스트러밍 몇 번 한 걸 가지고 이렇게 기나긴 썰을 풀고 있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아마도 품에 쏘옥 들어오는 이 악기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기대감 때문일거다.
그리고 이런 얘기도 하고 싶은 것일까.
'마음 속에 하나쯤 자리잡고 있는 그런 악기가 있다면 이젠 꺼내세요. 시간이 없어요. 지금 놀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