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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Aug 16. 2023

어느 졸린 날

아침이 가기전에 졸음이 가시기 전에 서둘러 쓰고자 한다. 아보카도와 식빵으로 먹은 아침이 가시기 전에 커피가 식기 전에 피아노의 음률이 사라지기 전에.

책이 뇌리에서 떠나기 전에 그 감상이 사라지기 전에, 골드베르크 아리아와 슈만의 버터플라이 음률이 사라지기 전에.


슈만의 곡을 이해해보려 적어도 느껴보려 악보 앱에서 슈만의 곡을 펼친다. 예전에는 버터플라이가 동요같다고 느꼈다. 이제는 독일적인 악상이 느껴진다. 예전보단 그 아름다움을 알 것 같다. 슈만에 대해 미셸 슈나이더가 쓴 책을 이북으로 읽고 있다. 그것은 잠들기전에 편안하고 아름다운 환상을 제공한다.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슈만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슈만의 글 조각들이 그의 음악을 궁금하게 한다. 그런 감성을 가진 사람, 그런 고통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곡을 쓸까. 말로 표현할수 없었던 것을 음악으로 만들때 어떤 음악이 탄생할까. 글로 표현할수 없는 것은 음악이 필요하다.


피아노를 치는 동안 아들은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고 남편은 내려와 간단히 무언가를 먹는다. 나는 그를 쳐다볼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긴 한다. 아침에 다시 눈을 떠 저 사람의 얼굴을 마주볼수 있는것에 대해 어떤 고마움의 표시라도 해야할 것 같지만 나는 피아노에 집중하고 싶다. 아침의 고요와 아름다움, 그 속에서 혼자됨을 놓치고 싶지 않다. 결코 끊을 수 없는 이어짐을 지속하고 싶다. 그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갔다오고 온 집의 블라인드를 걷는다. 배려인지 내 옆의 블라인드는 걷지 않았다. 화분들은 빛을 받는다. 나는 남는 방이 하나 있으면 하고 생각한다. 아니면 파티션을 사면에 설치하고 싶다는 생각. 하지만 곧 그것이 얼마나 귀찮음을 불러올지 생각한다. 나는 이제 파티션을 치우고 나가서 인사해야 하는 것이다.


아침은 거의 항상 같은 패턴으로 돌아간다. 밖에서는 새소리, 차소리다. 차가움이 섞인 공기가 이제 활동할 시간이라고 넌지시 부추긴다. 활동할 시간, 오늘은 잠이 쉬이 깨지 않는다. 아들의 아침을 일찍 준비하느라 알람을 맞춰두고 일어났다. 재료준비는 이미 해놓았다. 채소를 볶고, 고기나 베이컨을 굽는다. 밥과 함께 서빙한다. 매일 같은 아침을 잘 먹어주니 고맙다. 아이들이 커나가는 것을 보는 것은 특권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너무 빤히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침을 가족들의 얼굴에 대한 외면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외면, 자리 비워줌, 떠남, 나는 그저 항상 거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 되려한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배려일뿐 아니라 나에 대한 보호이다. 나는 말을 최소한으로 아낀다. 아이들이 뭔가를 먹으며 아이패드를 쳐다볼때 나는 방해하지 않기위해 자리를 뜬다. 나를 위해서일까. 아무 목적 없이 같은 공간에 있는 어색함을 피하려고?


혹사한 덕분에 팔과 손목은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한지 한참 되었다. 다리도 불편한데 이젠 팔과 손, 손목까지다. 사지가 왜 그럴까. 돌보지 않은 탓이다. 돌보지 않았지만 또 무리는 했다. 그러니 할말이 없다. 지금은 무리하지 않을수 없는 시기이다. 나는 여러가지 일을 해내야 한다. 좀 불쌍한 마음이 든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버텨줄래. 너희는 할수 있어. 팔다리에 말을 걸어본다. 팔다리를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다. 누워있기와 명상, 잠자기 정도다. 그럴수 있는 시간은 무덤에 예약되어있다. 아니 나는 무덤을 만들고싶지 않으므로 그저 죽음 이후라고 하자. 죽음이 찾아오기 전엔 움직여야한다. 아무리 기능이 좋지 않더라도 그것들을 사용해야한다. 피아노 연습이 손에 독이 될지 득이 될지 나는 잘 모른다. 어떤 힘든 노동을 시작할때 사람들은 한두달 더 하면 인이 박혀서 괜찮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니까.


쓰다보니 명상의 상태로 자연스레 빠져들어가는 느낌이다. 졸린 기분이다. 모든 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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