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의 육체는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하다. 이들은 다르게 듣고 다르게 느끼며 다르게 생각한다.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고 마냥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아마추어의 정의다. - <건반 위의 철학자> 프랑수아 누델만
비가 오다 햇볕이 쬐다 종잡을 수 없는 날
근 2주동안 틈나는 대로 연습한 모차르트 k333을 쳐본다.
호로비츠의 연주가 가장 맘에 들었기에 그의 표현방식을 따라 연습해왔지만
오늘 나의 연주는 제맘대로였다.
그런데 그게 맘에 들었다. 힘을 빼고 내 느낌대로 쳐보니 그 나름대로 괜찮았다.
호로비츠가 집에서 연주를 해도 항상 똑같이 칠까?
아니면 연주회에서처럼 이 곡의 종지부를 찍어버리겠다는 듯이 완성된 연주를 할까.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연주 버전이라도 그때그때 나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리기도 하니까
어느게 옳다고 할 수 있을지..
나는 생각하는 데 지쳐버렸나
온전히 곡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만 열중했다.
아마추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좋아하는 마음으로 그냥 가는 것
꼭 어떤 것의 완결을 보겠다고, 완성된 무엇을 만들어내겠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 안에서 기쁨을 찾고 자기 생각대로 완성해가고자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렇다면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내가 경쟁하려는 대상이 호로비츠나 조성진이 되면 곤란하다.
소질도 소질이지만 나는 그들보다 더 그일을 진지하게 대할 수 없다.
그들 그림자도 못쫓아갈 연주라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연습은 나에게 다른 효용을 주기 때문이다.
직접 악보를 더듬어가며 치는 행위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냥 느긋하게 치자.
쓰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냥 그 순간을 즐기고
자기가 완성하려는 걸 향해 노력해가면 되는 것이다.
그게 아마추어의 특권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다양성을 확보해주고
뜻밖의 것을 발견하게 해줄수도 있다.
그리고 자유롭다.
괜찮다. 어제보다 오늘 잘치면 되고, 오늘보다 내일 잘치면 되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철학자 사르트르의 연주를 보자. (<건반 위의 철학자>책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https://youtu.be/twzqvIHtVqU?si=L8ayYA1OVfi5E_7J
...사르트르는 악보를 주의 깊게 읽지 않는다. 음표 하나하나 공들여 치지도 않는다. 음표들을 은근슬쩍 건너뛰기도 하고, 뻣뻣한 자세로 수줍은 듯 연주한다. 아니,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연주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런 연주 스타일은 그가 말했던 실존주의적 삶의 방식 자체이며, 시간성과 육체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 <건반 위의 철학자> 프랑수아 누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