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나라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이유로 타국에서 삶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내가 살고 있는 시애틀에서 한국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가 서로에게 관심사이고 그 사연들이 매우 다양하고 재미있어서 곧잘 서로 묻고 답하곤 한다. 미국인들과 하는 모임에 가도, 그리고 내 요가 학생들도 내가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가 궁금한 지 만나서 좀 친해진다 싶으면 질문을 하곤 한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을 와서 정착한 사람, 학위를 받으러 공부하러 왔다가 결혼이나 job을 갖게 되어 미국에서 살게 된 사람, 자녀들이 초청하여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서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 형제 초청, 배우자 초청, 비즈니스 비자를 받아 살고 있는 사람 등등 각자의 사연들이 유니크하고 거기에 담긴 스토리들도 너무나 다양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시애틀 한국 노인회에서 한 달에 두 번 요가를 가르치는데 모두들 요가하는 시간을 많이 기다리고 좋아들 하신다. 이 곳에 오는 한국 분들은 대부분 70, 80 대 어르신들로 본인의 의지로 일찍 미국에 와서 오랫동안 사신 분들도 있고, 자녀들이 초청하여 늦게 미국에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한국 노인회에 오시는 분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외롭다는 것이다.
MDLinx라는 내과 의사들이 보는 뉴스 서비스에 의하면 미국에서 외로움은 마치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으며, 이 외로움으로 인한 조기 죽음에 대한 위험성은 과체중으로 인해 얻게 되는 질병과 하루에 담배 15개 를 피우는 정도와 같다고 한다.
외로움은 분리되고(Separate), 고립된(Disconnected) 감정적 고통(Emotional pain)을 수반하는데 마음 깊숙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Bond)이 끊어진듯한 깊은 두려움(Fear)이 자리 잡고 있어서 매우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퇴직하면 외국에 가서 남은 인생을 지내고 싶다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또한 많은 블로그나 카페 글에서 외국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의 근사한 집이나 아름다운 주변 환경, 여유 있는 모습, 여행 사진들, 그리고 성공 사례의 글을 볼 때면 부럽기도 하고, 한 번쯤 가서 살아보고도 싶고, 심지어는 질투의 감정까지도 유발되는 게 사실이다.
물론 타국에서 성공 일화를 만들어내는 모범적이고 대단한 한국인들도 많이 있지만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타국 문화에 적응하고 다른 인종들과 섞여 살아간다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멋진 모습과는 달리 긴장과 억제된 감정들로 인해 힘들어하며 진한 외로움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 속에서 살고 있어도 나이 들면 자녀들이 독립하여 떠나고, 일에서 물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싶지만 특히 타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 노인들의 정신건강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심각한 수준에 있다고 한다.
지난주 이곳 시애틀에 있는 큰 한인단체인 대한부인회에서 “미주 한인사회 노년층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세미나가 있어 참석하여 들은 내용을 아래에 간단히 간추려 보고자 한다.
미주 한인사회 노년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살펴보면,
(1) 자신의 어려움을 터 놓고 얘기하고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 모욕감, 창피함 때문에 상담받기를 거부하고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음으로 인해 감정들이 바깥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속으로 쌓여 있게 되어 싸움과 갈등,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2) 베트남을 비롯 다른 국가에서 이민 온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자신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현지의 문화와 언어에 적응하려고 적극 노력하는 반면에 한국인들은 한국인 특유의 고국, 모국, 고향에 대한 강한 연결과 유대감으로 인해 나이가 들수록 현지 생활에 안착하지 못하고 고향을 그리워한다. 한인들은 한국 드라마와 Youtube, 한국 신문, 한국 방송을 즐겨 보며 한국에 있는 친, 인척들과 수시로 문자와 전화를 하며 지낸다.
(3) 특히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국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을 보면 집을 팔고 온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하고, 한국에서 살던 생활수준과 비교했을 때 삶의 질이 오히려 떨어졌다고 느껴질 때는 심한 허탈감을 느낀다.
(4)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사회복지 체계, 가장 복잡한 의료체계, 가장 복잡한 연금체계를 가진 나라로 미국에 사는 어느 누구도 이런 복잡한 사회제도를 전부 이해하고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여기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미국인들조차도 이런 복잡한 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상황에서 얻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들만 이해하고 살아간다고 보면 된다.
한 번 예를 들어 보자.
밤에 운전하다가 어지럽고 혈압이 갑자기 올라 응급실에 간 친구가 있었다. 응급실에서 혈액 검사에, CT SCAN 하고 몇 가지 약을 먹고 혈압이 좀 내려갔으나 병원에서 하룻밤 더 지내면서 추이를 살펴보자 해서 1박을 하고 이튿날 아무 이상이 없어 퇴원을 했단다.
3주 후에 병원비가 날아왔는데 병원비가 $15,000(약 천팔백만 원) 닥터비가 $1500(약 백팔십만 원)가 적혀 있었다. 일주일 후에 또 하나의 청구서가 날아왔는데 검사비 $2000 (약 이백 사십만 원) 이 적혀 있었다. 여기에 약을 먹게 되면 약값을 별도로 또 내야 한다. 처음 이 일을 경험한 친구는 이 어마어마한 금액에 또 한 번 가슴이 뛰고 혈압이 올라 병원신세를 질 뻔했단다. 이 비용이 자신이 가입한 보험회사로 가서 몇 주 후에 다시 삭감된 최종 병원비가 날아왔는데 다행히 좋은 조건의 비싼 보험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내야 할 병원비가 약 500만 원으로 내려와 계산되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또 경제 사정이 어려워 다 낼 수 없다면 병원이랑 네고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보통 절차가 복잡한 게 아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의료 체계는 매우 비싸고, 복잡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5) 미국은 모든 것들이 문서로 표현된다고 볼 수 있다. 끊임없이 날아드는 청구서와 편지, 통지서들은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노년층들을 지치게 하고 괴롭힌다. 특히 영어가 불편한 노년층들은 편지가 날아들 때마다 자녀나 이웃, 한인 기관에 있는 누군가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며 그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6) 최근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차별이나 이민자 차별 등으로 인해 많은 혜택이 삭감되고, 긴장감 있는 사회를 느낀다.
(7) 무엇보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불편한 것은 언어 장벽이다.
이중언어가 완벽하게 되지 않는 한국인들이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언어장벽이라는 절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할 때 느끼는 좌절감이나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 오해가 발생했을 때, 특히 불편한 언어소통으로 손해를 보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낭패감 등은 정신건강을 해친다.
그러므로 미주 한인 사회 노년층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자세로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개인 상담이나 가족 상담, 그룹 상담을 통해 해결점을 스스로 찾아 나가며,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들은 가까운 이웃들과 비상연락망을 만들어 위급한 상황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인 단체들이 서로 협조하고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혼자 지내기보다는 운동 모임이나 취미활동 등을 함께하며 Community 안에서 생활하는 것을 권한다. 미국에 와서 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열심히 일하여 정착하고 삶을 일궈내고 자식들을 잘 키워냈지만 자신의 행복(Happiness)을 언제나 가장 뒷전으로 미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해야 했기에 나이가 들어 건강이 나빠지고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는 노년을 맞게 된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노년의 그룹에 속해 살아야 할 날이 올 것이므로 건강하고 밝은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 하루도 열심히 요가를 가르치고 수련하며 배우고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또한 우리 한인 노년층을 위해 많이 웃고, 사랑을 표현하며, 정신적, 육체적 건강의 발란스를 되찾는 요가를 가르치기 위해 오늘도 자동차를 달려 한인회관으로 휘파람을 불며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