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등하원은 꼭 함께

바깥은 여름 中 입동을 다시 읽으며

by 클라우드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무더운 여름, 약간은 서늘한 반지하의 어느 골방에 불이란 불은 다 끄고 혼자 쭈그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어딘가 찝찝하고 불편하지만 약간은 안심이랄까 아늑함이랄까 그런 것도 느껴지는 복합적인 감정이다.


밀리의 서재에 바깥은 여름이 등록되어서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이 단편집을 처음 읽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이나 7년쯤 전일까, 군대에는 진중문고라는 게 있다. 월마다 사회에서 나온 베스트셀러들이 건빵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자그마한 사이즈로 편집되어서 진중문고라는 큰 띠를 두르고 각 부대로 지급된다. 김애란 작가는 박근혜 정부시절에는 세월호 비판 관련으로 문학 블랙리스트에 지정되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군대를 일찍 갔더라면 그녀의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나이가 한창 차서 문재인 정부 시절에 들어간 덕분에 그 책을 읽을 수 있었으니, 이게 바로 운명적인 만남이었을까?


서른 명 남짓한 부대원중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는 다섯명이 채 되지 않았다. 행정병이었던터라 진중문고 관리도 내 담당이어서 읽을만한 책들은 미리 빼놓고 배포를 했었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처럼, 내가 책을 읽은 것도 아마 여름이었던 것 같다. 바깥은 여름이라니, 뭔가 여름의 푸르름과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일 것이라 생각하며 책을 읽었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뭔가 찝찝하고 쿰쿰한 매력에 빠져서 그 이후에 비행운도 읽어보고 이것저것 읽어보았다. 무슨 내용인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책 안에 들어있던 것은 푸르른 녹빛의 풍경이나 시원한 바람이 아닌 땀에 절은 겨드랑이 냄새같은 것이었다는 감각만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이 책을 다시 읽을 때까지, 7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전역을 하고, 회사생활을 시작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기르고 사람들이 으레 어른으로의 통과의례라고 부르는 것들이 공과금 청구서처럼 하나하나 날아오면 받는대로 꾸역꾸역 처리해왔다.


돌아보면 쓱쓱 해낸 것 같지만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나 싶은 일들을 지나쳐오고 다시 읽게된 단편집 바깥은 여름의 첫 작품 ‘입동’은 내게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어 있었다.


‘입동’은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은 한 부부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단편집 같은 경우는 이야기의 내러티브보다 그 상황을 표현하는 문장 하나하나에 대해 음미하는 것이 더 작품의 역할에 부합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주인공과 비슷한 점이 열가지는 더 생긴 나에게, 이 소설의 구절 하나하나가 이제는 정말 절절히 와닿았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보지 못하고 였다. 가끔은 열불이 날 정도로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웠지만 딱 그또래만큼 그랬다.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제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저볼 수도 없는 아이였다.”


책을 읽고 정말 대성통곡을 했다. 주인공 부부의 마음이 마치 나에게 일어나기라도 한 양 실감나게 와닿아서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클라이맥스 부분을 점심시간에 회사 탕비실에서 읽었는데, 혹시나 누군가 봤다면 굉장히 이상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웃긴 것은 이렇게 소설을 읽고나서 눈물을 훔치며 내가 하게 된 가장 큰 결심은 "나는 아이 등하원은 꼭 같이 시켜야지"였다는 것이다. 부부가 아이를 잃게된 것이 차사고니까 우리 아들은 정말 조심시켜야지.


아이를 길러보기 전까지는 초등학교 2학년만 넘으면 그냥 혼자 등하교를 시켜야지 생각했었다. 우리때는 그렇게 하는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데, 요즘 부모들은 너무나 아이들 껴안고 기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아직 그 때가 오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할 생각을 하니 만에 하나라는 말이 계속 와닿으며 걱정이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은 엄청나게 안전해졌다. 통계들을 보면 우리 인류의 역사에서 지금보다 안전한 세대는 없었다. 이제 가정에서는 알약하나면 치료할 수 있는 간단한 병때문에 아이 둘 중하나가 죽는 비극을 겪지 않아도 되고, 길가다 재수없게 만난 사무라이에게 맞아 죽을 위험도 없다. 노역에 끌려가 보를 쌓다가 죽을 일도 없고, 먹을 것이 부족해 굶주림에 시달리며 죽을 위험이란 더더욱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안전하다는 기분을 느끼지는 못한다.


파란 점 효과(Blue dot effect)라는 것이 있다. 이 실험은 참가자에게 파란색과 보라색 점이 가득한 화면을 보게하고 파란색 점을 찾게 한다. 그리고 실험을 진행하면서 점점 파란색 점의 비율을 줄인다. 그러면 당연히 더 적은 파란색 점을 찾을 것 같지만 참가자들은 어떤 화면에서도 동일하거나 더 많은 파란색을 찾았다. 우리가 아무리 안전해 졌다고 해도 우리는 언제나 만에 하나를 찾고 확률이 적은 위험을 확대해서 바라보게 된다.


그러니까 결국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고, 현대인의 가장 큰 미덕은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받아들임일 따름라는 것이 내 결론인데, 원래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다른 길로 좀 세고 말았다.


아무튼 내가 이번 경험을 통해 제대로 느끼게 된 것은 도리스 레싱의 이 말이었다.

Understanding Something You've Understood All Your Life, in a New Way. “That is what learning is.
당신이 일생동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배움이다.


어릴때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다. 하지만 다시 읽지는 않았다. 몇개 무한히 반복해 읽는 책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말하고 싶은 것 같이)이 한 두세권 있기는 하지만 다른 책들을 다시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책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책들은 이제 나에게 얼마나 와닿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계엄을 통해서 생각해보는 한국의 정치체계